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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 나는 내가 누구라고 생각한 걸까?

거대해진 내에게

by 쓱쓱

알게 된 지 1년 남짓 된 한 친구는 종종 내게 전화를 걸어왔다.


그녀는 스스로 자신을 불안이 심한 사람이라고 표현할 정도로 매 순간 예민하고 걱정과 생각이 많았다.

물론 그녀는 그런 자신이 스스로를 힘들게 만든다는 것도 잘 알고 있었지만 오랜 시간을 거쳐 지금껏 그녀가 처한 환경에서 나름대로 적응하며 살아가기 위해 취할 수밖에 없었던 그녀만의 대처 방식은 말처럼 그렇게 쉽게 극복되지 못했다.


매번 불편하고 힘들어하고, 바꾸고 싶은 마음이 강렬해도 불안과 열등감, 비교의식은 불쑥불쑥 그녀를 사로잡았다.

그리고 그럴 때마다 그녀는 나에게 전화를 했다.

처음 나는 그런 그녀에 대한 연민과 안쓰러움으로 어떤 식으로든 도움을 주고 싶었다.

그래서 그녀가 불안과 자책을 토해낼 때마다 그녀의 감정과 느낌을 온전히 인정해 주려 노력했고 그녀 스스로 그러한 감정과 생각에서 조금씩 거리를 두고 객관적으로 자신을 바라볼 수 있도록 여러 측면으로 이야기를 해 주었다.


막연한 위로는 사실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나는 나름 그녀가 가진 그러한 민감성과 예민함 그리고 완벽주의가 가질 수 있는 장점을 좀 더 긍정적으로 인식할 수 있게 해 주고 싶었고 그런 나에게 그녀는 매번 이야기를 하고 나면 마음이 훨씬 편해진다며 만족스럽게 전화를 끊었다.

그렇게 전화가 거듭될수록 나는 그녀의 심리적 상태에 대해 더 많이 알게 되었고 그녀 주변의 인물들과 성장배경을 추가적으로 알게 되면서 그녀가 겪고 있는 불안의 형태와 윤각을 조금 더 선명하게 그려 볼 수 있게 되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나름 순수하게 그녀를 돕고 싶다는 마음과 나로 인해 그녀가 조금이라도 마음의 안정과 그토록 원하는 변화를 시도해 볼 수 있게 된다면 무척이나 보람 있고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녀와의 단선적인 관계가 거듭될수록 나에게는 아주 조금씩 그녀와의 관계에 대한 질문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관계란 일방적일 수 없고 쌍방으로 흘러야 하는 것인데, 심적인 어려움을 느낄 때마다 먼저 연락해 오는 그녀가 차츰 부담스럽게 느껴지게 되었다.

좀 더 솔직하게 말하자면, 1년이 넘도록 매번 똑같은 어려움을 토로하면서도 매번 같은 자리에 머물면서 스스로의 가능성을 견고하게 제한하며 고통스러워하는 그녀를 대하려니 사적 관계 안에서 좀 지쳤다는 표현이 더 맞을지도 모르겠다.

결국 그 답답함을 이기지 못하고 나는 직면이라고 생각했지만, 그녀는 판단이라고 느꼈다는 그‘위험한 조언’을 해버렸다. 그리고 그녀가 내 말이‘판단’처럼 느껴졌다는 말을 들으며 마음에 불편감이 일었다.

그렇게 약간은 당황스럽고 억울한(?) 감정이 지나간 한 참 후에야 나는 그녀와 나 사이에서 형성된 관계를 가만히 들여다볼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거기에는 나의 기여가 상당 부분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비록 처음에는 힘들어하는 그녀를 돕고 싶다는 순수한 마음으로 대했겠지만, 점점 내 안에서는 자신의 내면의 어려움을 털어놓는 그녀를 통해 내가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고 또 어떤 식으로든 영향력을 미칠 수도 있다는 일종의 우월감과 오만한 착각이 매우 은밀하게 작동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렇게 어느새 커져버린 ‘나’는 결국 그녀에게 조언이라는 형태의 충고와 판단을 해버린 것이다. 물론 기저에는 언제나 그렇듯 ‘이게 다 당신을 위한’것이라는 가난한 이유가 존재한다.

‘대체 나는 내가 누구라고 생각한 걸까?’


그녀와의 관계 안에서‘나’는 필요 이상으로 크고 진했고, 이제껏 살아오면서 만들어진 나만의 이론과 공식을 가지고 그녀를‘판단’하면서 아무도 원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삶을 일종의 관리 대상으로 바라보고 있던 것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에 얼굴이 달아올랐다.

참 부끄럽고 민망하고 미안했다.

어쩌면 그녀는 그저 나와 함께 있다는 느낌만을 원했는지도 모르겠다.

자연스럽게 자신의 감정을 흐르는 대로 느끼면서 이야기를 털어놓고 싶었는지도.

무언가를 바꾸려고 하지 않는 누군가에게서 이 세상에 홀로 버려졌다는 느낌이 희미해지는 순간을 경험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우리를 계속 같은 자리에 묶어놓는 그 대단한 삶의 이론들을 움켜쥐고 내 삶에 대해, 다른 누군가에 대한 판단을 멈추지 못하면 삶이 얼마나 경직되고 어려워지는지, 무엇보다 얼마나 스스로 답답하고 여유가 없어지는지 다시 한번 깊게 깨닫게 되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무엇보다 보이지 않는 잉크로 먼저‘나’를 써야 한다는 것을 아는 지혜로부터 시작할 수 있다는 것도 잊지 않으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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