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움직임으로 배우는 삶의 지혜_2

안으로 모이는 에너지

by 쓱쓱

# 꼭 안고 뒤뚱뒤뚱


고작 팔뚝만 했던 아이는 이제 어깨선을 나란히 하면 조금 아래정도까지 자랐다.

걸음마를 시작하기 전부터 아이의 두 팔을 잡고 발등 위에 올린 뒤 한발 한발 뒤뚱거리며 걸었는데, 이제 아이는 내 품 안을 가득 채운 채 몸을 기댄다.


두 팔을 벌려 포근히 아이를 감싸 안으면 따뜻한 체온과 편안한 느낌이 피부로 전해진다.

팔을 살포시 둘러 어느새 듬직해진 아이의 등을 안고 제자리에 서서 오른쪽 다리를 들었다 내릴 때 왼쪽 다리를 들었다 내리면서 함께 옆으로 뒤뚱뒤뚱 걷는다.


특정한 방향 없이 그저 제자리에서 꼭 안은 채 뒤뚱거리다 보면 어느새 원을 만들며 한 몸처럼 함께 움직이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나와는 완전히 분리된 개별적인 존재를 온몸으로 끌어안고 거창하진 않지만 조금씩 같은 방향으로 몸을 흔들며 움직이면 그 순간만큼은 인간의 본연적 외로움이 완전히 제거된 듯 충만해진다.


몸을 가지고 있기에 필연적인 외로움은 사랑하는 다른 이의 몸을 통해 잠시나마 잊힌다.

몸이 부드러운 반동을 일으키며 양옆으로 흔들리는 동안 마음은 흔들리는 요람처럼 편안함과 안정감을 느낀다.

짧지만 강렬한 힐링의 시간이다.



# 아빠다리하고 흔들흔들


뛰고 구르고 딛고 점프하고 매달리고 달리고 숨고 잡고

저녁노을이 하늘을 붉게 물들일 때까지 쉼 없이 뛰어놀던 유년시절 나의 몸은 그야말로 무한한 에너지의 창고 같았다.


하루 종일 밖에서 친구들과 놀아도 지치지 않던 시절,

밥맛은 언제나 좋았고 몸과 마음은 그야말로 유기적으로 연동되어 있었다.

하지만 그 수많은 역동적인 놀이의 추억 속에서 유난히 선명하고 뚜렷하게 남아 있는 기억이 있다.

그 기억이 다른 유년시절의 기억과 선명하게 구별되는 이유는 아마도 전혀 다른 에너지의 파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절간을 사 집으로 만들었다는 친할아버지 댁은 대나무 숲이 우거진 산 아래 커다란 한옥 집이었다.

나는 그 집을 무척 사랑했는데 마당에 있던 온갖 종류의 나무와 풀, 꽃들과 곤충들은 동화 속 세계처럼 환상적이었다.


특히 할아버지 댁의 대청마루는 앞뒤가 뚫려 있었고 마루에 앉아 잘 조경된 나무와 풍경들을 바라보고 있으면 뒤쪽 대나무 숲 사이를 헤집고 다니던 바람이 내 몸을 그대로 관통해 눈앞의 나뭇가지와 나뭇잎, 풀들과 꽃들을 흔들어댔다.


시원한 대청마루에서 아빠다리를 하고 앉아 바람의 불어오는 방향대로 몸을 흔들기도 하고 나뭇잎이 바람에 나부끼는 방향대로 몸을 흔들 때면 저절로 눈이 감기며 온몸이 이완되는 느낌이 들었다.


열렬하고 강한 움직임이 주는 신나는 에너지도 좋았지만 잔잔하게 고요한 심연을 울리는 느리고 부드러운 움직임은 그에 못지않게 행복감을 느끼게 해 주었다.


무엇이든 어느 한 방향으로만 흐른다면 인생은 반쪽뿐일 것이다.

오른쪽이 있으면 왼쪽이 있고, 위가 있으면 아래가 있듯이 모든 것은 양면으로 이루어져 있다.


민첩하고 가볍고 신속한 움직임이 많던 시절 조용하고 느리고 중심이 느껴지는 움직임이 함께 있었기에 나는 그 시절 어렴풋이나마 균형감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아주 조금은 느낄 수 있었던 것 같다.

앞으로 나아가는 때와 내 안에서 에너지를 모으는 때의 균형감을 잘 유지하는 일.

요즘은 내 안에 있는 에너지의 결핍과 과잉을 잘 알아차릴 수 있는 깨어있음이 훨씬 더 많이 필요한 때인 것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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