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막 솟아오른 연하디 연한 꽃봉오리
태어나 맘껏 피어 뽐내 보기도 전에
한 남자의 아내가 된 16살 산골 소녀
자식만 열한 명인 시부모님 끼니에
농사짓는 일꾼만 다섯 남짓
보드랍고 고운 손마디 마디마다
보리 찧고 쌀 찧는 절구질 사이로
터지고 터져 피로 물든 손과 어깨
눈을 떠서부터 눈을 감을 때까지
숨 한 번 쉴 틈 없이 움직여야 했던 여린 몸
두 살 어린 꼬마 신랑 세상없이 순진 무정
4년의 세월이 흐르고 흐르도록
따뜻한 말 한마디 온 데 간데없고
그저 차가운 시선과 서린 눈총뿐
잔인하게 밝은 둥그런 달빛 아래
서러움과 서글픔이 이슬처럼 맺혔겠지
고단한 하루와 사늘한 관심이
죽도록 그립고 그립게 만들었겠지
이제 갓 열리던 수줍은 꽃봉오리
시집와 신랑이랑 사랑도 해 보기 전에
한쪽 빛을 잃어버린 19살 어린 신부
한쪽 눈이 빠질 듯한 고통과 아픔을
그저 시집살이 참고 또 참아
결국 영원토록 가려진 세월
반쪽짜리 세상이 얼마나 두려웠을까
깜깜한 암흑이 얼마나 무서웠을까
그런데도 암흑보다 더 무서웠던 건
여전히 차가운 신랑의 눈빛
하얗게 서리 내린 딸의 눈보다
서방에게 소박맞고 쫓겨날까 두려운 어머니 심정
찢어지고 해어지고 닳아 없어지도록
쓸어내리고 토닥였던 두 모녀 가슴
외눈박이 어린 신부의 외마디 외침
첩첩 산골 어디론가 사라졌다가
조롱과 근심 싣고 세차게 불어오니
심장이 딱딱해져 죽을 것만 같았었지
청춘의 뜨거운 피 위에 피어난 꽃
5년의 세월을 서약에 메여 살면서도
손 끝 한번 닿지 못한 부부의 인연
얼마나 아리고 힘겨웠을까
얼마나 무안하고 맘 상했을까
시삼촌 제삿날 고모들의 계략으로
가까스로 마주한 수줍은 첫날밤
묵묵히 앉아만 있는 어린 신랑과
우두커니 서서만 있는 외눈박이 신부
우주가 멈춘 듯 한참을 그렇게
한 공간 안에서 배경이 된 두 사람
결국 조금 더 용기 있던 신부가
다소곳이 다가가 옆에 누워버리자
천천히 옷을 벗고 다가온 신랑
그렇게 결혼한 지 5년이 흐른 뒤에
마침내 살과 마음이 섞인 두 사람
5년을 참고 견딘 그들의 열망이
화산처럼 폭발해 터져 나갔겠지
생기로 가득 찼던 꽃잎도 줄기도
휘몰아치는 바람과 잔인한 눈과 비에
흔들리고 꺾이고 찢기고 날리고
바싹 말라 구부러진 줄기와 앙상한 잎새 몇 개
이제는 찬찬히 죽음을 기다리는
아흔일곱의 외눈박이 소녀
그 긴 세월 동안 피고 지고 피고 지고
세상의 온갖 고난과 슬픔을
답답한 외눈으로 살며시 감아 넘기며
여덟 개의 다른 생명을 맺고 길렀지
평생 사랑했던 반쪽과 이별을 할 때도
정다운 동무들을 먼저 보낼 때도
한쪽 눈 지그시 감고 뜨며
올올이 맺힌 차디찬 슬픔과 아픔을
가슴속 소박한 주머니에 담아냈지
왜 이렇게 안 죽어지냐며 투정을 부리면서도
증손자의 재롱에 아이처럼 까르르
앙상한 줄기에 맺히는 반짝이는 진액
시할머니는 가끔 만나 뵐 때마다
얼마 남지 않은 얇은 머리카락을 가지런히 빗어 쪽을 지고 다소곳이 앉아 계셨다.
그전까지
90년을 산 사람을 가까이에서 보는 일이 없었던 나는
근육과 물기가 사라지고 뼈에 근접하게 잔뜩 쪼그라든 육체를 대면하며
일종의 경외심과 서늘함을 느꼈다.
세월의 풍파를 온몸으로 맞고도 살아남은 그 강인함에 경외심이 들었고
죽음의 그림자가 깊게 드리운 음영에 서늘함을 느꼈다.
팔십이 넘게 홀로 시골 본가를 지켰던 그녀는
자식들의 성화에 못 이겨 큰 아들집에 살게 되었고
행동파 셋째 딸에 의해 가끔 딸 집에 모셔졌다.
평생 시부모와 남편, 자식들을 건사하고 돌보느라 눈치가 몸에 밴 그녀는
그 작고 가벼운 몸에 걸맞게 매사 조용하고 조심스러웠으며
자식을 포함한 그 누구에게도 폐가 되거나 부담이 되지 않으려 부단히 애를 썼다.
딸 집에 와서도 식구들보다 한참 먼저 일어나면
불도 켜지 않은 채 우두커니 않아
식구들이 깰 때까지 그렇게 조용히 새벽을 맞았다.
손자며느리를 대할 때조차 그녀는 당신이 원하는 것을 편하게 말씀하시지 못했고
손자며느리가 하는 모든 것들에 그저 사람 좋게 웃기만 하셨다.
아흔이 넘었지만 동그란 이마에는 지혜가 빛났고
축 처진 눈에는 한결같음이 깊이 새겨져 있었으며
종이 인형처럼 하늘거리는 몸을 가졌음에도
누구에게도 부담되는 존재가 되지 않아야 한다는 무겁고 강한 신념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다 어느 날 문득 나는
90년을 살아낸 사람의 지난 시간이 몹시 궁금해졌고
그날 그녀가 한쪽 눈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으며,
그녀의 실명이 단순한 노안에 의한 것이 아니었음을,
한쪽 눈으로 살아야 했던 그녀의 삶이 얼마나 혹독 했을지를 가늠하며
가만히 차오르는 슬픔이 느꼈다.
가난한 것이 당연했던 시절
16살의 그녀는 얼굴 한번 보지 못한 남자에게 시집보내졌다.
어처구니없게도 그녀의 남편은 그녀보다 두 살이 아래였고
결혼은 했지만 정식으로 부부가 되기엔 너무나 어리고 설익었기에
그녀는 며느리라는 감투를 쓰고 일꾼으로 시집에서 자라게 되었다.
시부모님을 포함해 형제가 11명. 농사일을 돕던 일꾼 5명.
16살 여리고 작은 여자아이는 밤낮으로 일하며 부엌과 논을 오가야 했고
살과 뼈에는 노동의 고단함이 차근차근 쌓여갔다.
어린 신부가 감당하기에 쉽지 않았던 것은 비단 노동만이 아니었다.
어머니와 친정에 대한 그리움과 더불어
신랑의 무관심과 냉담함은 그녀의 마음을 항상 무겁게 찍어 눌렀다.
어쩌면 어린 신랑이 감당하기에 남편과 가장이라는 무게는 너무나 무겁고 두려웠을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식구가 되었지만
식구로 받아들여지지 않는 아픔과 고역의 시간을 견디던 그녀에게 찾아온 것은
얄궂게도 더 험한 시련이었다.
어느 날부터 한쪽 눈에 아프기 시작했지만 딱히 내색할 수는 없었다.
항상 손이 부족한 외지 가난한 농가에서 병에 걸린 사람은 가중의 부담이 되었다.
낯선 시집에서 그녀가 의지할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시부모님은 어렵기만 했으며 시동생들은 종일 무언가를 요구하기만 했고
가장 의지할 수 있어야 남편은 눈도 마주치려 하지 않았다.
엄마를 잃고도 남편을 얻지 못한 그녀는
눈알이 빠질 것 같은 고통에 생사를 오갔고
그러다 결국 한쪽 시력을 잃었다.
그녀의 나이 겨우 19살이었다.
한쪽 시력을 잃은 외눈박이 소녀는 시력을 잃은 상실보다
온전치 못한 몸 때문에 남편에게 소박맞고 쫓겨날까 봐 두려웠다고 한다.
쳐다도 보지 않는 서방님의 마음이 전보다 더 차갑게 식어버릴까 봐 불안했다고.
불안과 두려움을 매일매일 잠재우며 버티고 버티던 그녀에게
시집에 온 지 5년 만에 드디어 진짜 결합의 순간이 다가왔고
마침내 외눈박이 소녀는 한쪽 눈만으로도 충분한 자신이 되었다.
그래서 그렇게 애달프던 첫날밤이 어땠냐는 짖꿎은 질문에
90년이 넘은 그녀는 당차게 말했다.
"신랑이 꼼짝도 안 하고 있으니 어쩌? 내가 가서 옆에 그냥 누었지."
동그란 이마를 반짝이며 90세 외눈박이 소녀가 환하게 웃었다.
그녀의 입관식에서 나는
숨이 거두어진 사람을 처음으로 가까이에서 보았다.
동그란 이마는 더 이상 반짝이지 않았지만
그녀는 더 이상 외눈박이가 아니었다.
고요히 감긴 두 눈은 그녀가 태어날 때와 똑같이 새롭게 꼬옥 감겨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