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라, 달콤한 죽음이여'와 함께 생각하는 인간의 경계
우리는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지만, 때때로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감정을 품고 살아간다. 아무리 가까운 사람과 함께 있어도 알 수 없는 벽이 존재하는 듯한 기분이 들 때가 있다. 그런 벽이 정말 존재하는 것일까? 아니면 그것은 단지 마음속에서 만들어낸 허상일까? 애니메이션 '신세기 에반게리온'에서 등장하는 AT필드는 이 질문을 철학적으로 탐구할 기회를 제공한다. 강력한 방어막처럼 보이는 이 개념은 사실 인간의 내면을 반영하는 심리적 장벽이기도 하다.
AT필드는 '신세기 에반게리온'에서 등장하는 중요한 개념으로, 'Absolute Terror Field'의 약자다. 이는 작품 속에서 사도와 에반게리온이 생성하는 강력한 방어막으로 묘사된다. 일반적인 공격으로는 절대 뚫을 수 없으며, AT필드를 무너뜨려야만 상대를 공격할 수 있다. 하지만 단순한 물리적 방어막이 아니라, 모든 인간이 각자의 마음속에 가지고 있는 심리적 장벽을 의미하기도 한다. 이는 인간이 타인과의 관계에서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본능적으로 만들어내는 보이지 않는 벽이다. AT필드는 개별성을 유지하게 도와주지만, 동시에 타인과의 소통을 방해하는 요소로 작용하기도 한다. 결국, 작품은 이를 통해 인간의 내면과 관계에 대한 철학적인 질문을 던진다.
AT필드는 단순한 SF 설정이 아니다. 작품 속에서 모든 인간은 자신의 AT필드를 가지고 있으며, 이는 개인을 보호하는 동시에 타인과 완전히 소통하지 못하도록 하는 보이지 않는 장벽으로 작용한다. 타인과의 관계에서 상처받고 싶지 않은 마음이 이 필드를 두껍게 만들고, 그 결과 인간은 더욱 고립된다. 하지만 그 벽이 없다면 우리는 존재 자체를 유지할 수 있을까? 개별적인 자아가 사라지고 모두가 하나로 융합된다면, 그것이 과연 행복일까?
에반게리온의 결말부에서 신지는 모든 AT필드가 해제되는 순간을 경험한다. 모든 존재가 하나로 융합되어 서로를 완전히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세계. 그것은 겉으로는 이상적인 모습처럼 보이지만, 동시에 개별성이 사라진 무의 상태이기도 하다. 신지는 결국 그 세계를 거부하고 다시 개별적인 존재로 살아가기를 선택한다. 이 과정에서 '오라, 달콤한 죽음이여'라는 노래가 흐른다. 이 노래는 마치 모든 것을 포기하고 벽 너머로 나아가고 싶은 인간의 충동을 대변하는 듯하다. 하지만 신지가 다시 현실을 선택한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https://youtu.be/qXtQPRdHNdA?si=D1ZUABd072OBOTFf
우리는 살아가면서 많은 순간 벽을 허물고 싶어 한다. 완전히 타인과 하나가 되어 이해받고 싶고, 외로움을 잊고 싶다. 하지만 동시에 나 자신을 잃는 것이 두렵다. 인간관계에서 너무 가까워지면 상처를 받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벽을 치고 살아갈 수도 없다. AT필드는 결국 이 모순적인 감정을 시각적으로 형상화한 개념이다. 현실에서도 우리는 심리적인 AT필드를 가지고 있다. 누군가는 쉽게 다가오는 사람을 경계하고, 누군가는 거리를 두는 방식으로 스스로를 보호한다. 하지만 그러한 방어막이 너무 강하면 결국 타인과 단절될 수밖에 없다. 반대로, 그 벽이 완전히 사라지면 자신만의 정체성이 희미해진다.
에반게리온은 우리에게 질문을 던진다. 과연 벽을 허무는 것이 해답일까? 아니면 벽을 조절하며 살아가는 것이 더 나은 선택일까? 신지가 보여준 선택은 완전한 융합보다는 개별적 존재로서 살아가기를 선택하는 것이었다. 벽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적절히 조절하며 타인과의 관계를 형성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오라, 달콤한 죽음이여'라는 노래가 울려 퍼지는 순간, 우리는 각자의 AT필드를 떠올리게 된다. 그것은 우리를 가두는 감옥일 수도 있지만, 우리가 세상 속에서 독립적으로 존재할 수 있도록 해주는 방패이기도 하다. 중요한 것은 그 균형을 찾는 것이다. 우리가 벽을 쌓고도 소통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할 때, 비로소 인간관계의 진정한 의미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