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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me, from us 20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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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onymous Apr 18. 2017

감정

인간의 존재를 가장 확실하게 규명할 수 있는 근거 중 하나가 바로 ‘감정’과 그것의 ‘표현’이다.


인간이 사색하고 탐구하는 동물임은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사실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이성과 감성의 적절한 조화, 균형을 토대로 TPO에 맞는 대화와 특정한 행위를 한다. 의식과 무의식의 세계가 함께 내재되어 있는 이토록 신비로운 생명체를 아직 우리는 발견하지 못했다. 단순히 살아있다는 것과 존재한다는 것은 큰 차이가 있다. 전자가 생리적으로 유기체의 특성을 가지고 있는 것이라면, ‘존재’는 훨씬 더 고차원적인 상위 개념이라고 생각한다. 가령 ‘무엇 때문에 살아가는지’ 혹은 ‘어떠한 궁극적 이상을 추구하고 있는지’와 같이 근원적으로 접근해야만 하는 굉장히 심오하고 복잡한 세계다.


드레이크 도리머스 감독의 <이퀄스>는 철저히 감정을 통제하는 미래사회를 무대로 한 남녀의 위험한 사랑과 존재를 다룬 작품인데, 앞서 언급한 내용과 같이 감정이 존재하지 않는 비극적 상황을 굉장히 효과적으로 표현한다. 흰색으로 통일된 복장과 구조물들을 보고 있으면 정확히 어디서 기인한 것인지 알 수 없는 답답함을 느끼게 되는데, 이는 곧 인간의 감정을 보다 풍요롭게 해주는 ‘색채’에 대한 미학적 즐거움의 결핍이 얼마나 부정적인 결과를 양산하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포인트라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영화 속 배경인 ‘선진국’은 인간의 존재 이유를 미지의 세계, 인간의 손이 닿을 수 없는 무궁한 에너지의 원천지 ‘우주’에 대한 동경과 탐사로 치환하여 타인과의 교감과 감정적 공유를 배제시키고 철저히 산업적인, 사회 구조적인 관점에서 관계를 규정한다. 그리고 그 규정을 어기는 자들에겐 가혹한 형벌을 내린다.


다소 극단적으로 보이기도 하는 작품 속 설정은 근본적으로 현대사회와 크게 다를 바가 없다. 대중매체는 하나같이 진실과 괴리된 자극적인 이슈 메이킹에만 전념하고 있으며 가정과 직장, 나아가 사회 공동체로부터 받은 스트레스는 도통 해소할 창구가 없다. 오죽하면 ‘감정소비’라는 신조어가 그렇게나 무던히 사회 곳곳에서 한풀이처럼 통용되고 있을까. 갈수록 '인간적인' 감정이 소멸하는 현 세태가 안타깝고 아쉬울 뿐이다.


다행인 것은, 기술 발전에만 목을 매는 편중된 사회 풍조에 맞서기라도 하듯 점차 ‘슬로 라이프’, ‘아날로그 감성’과 같이 감정 지수와 관계의 질을 향상하여주는 희소하고 가치주의적인 삶의 유형이 반대급부로 떠오르고 있다. 삶의 속도가 느려질수록 반복적으로 돌아보게 되고 곳곳을 살피게 된다. 그러면서 누군가에게 내면 깊숙이 자리한 응어리들을 쏟아내게 되고 상대방 역시 정제되지 않은 진심을 내놓는다. 감정의 공유란 사실 별 것이 아니다. 별 것은 아니지만 확실히 그것은 ‘살아있다’는 증거이자 존재의 이유다. 질서화, 구조화, 획일화는 사회를 안전하게 만들었지만 이것은 결코 인간의 본능인 ‘자유 의지’를 실현시키는 기반이 될 수 없다.


영화의 결론대로라면 우리가 탐구해야 할 우주는 지구 밖 미지의 대상이 아니라 지금 바로 내 옆에 있는 '그 사람'과의 깊이 있는 소통이다. 조금 더 정확히 표현하자면, 그 사람과의 관계에서 느껴지는 무수히 영롱한 감정들의 공유이다. 가끔씩 잊고 살아가기도 하지만, 인간의 내면은 정말로 신비롭고 불가사의한 영역이며 각자가 느낀 순수한 감정들을 오롯이 기억하고 있다. 그 속에서 남자와 여자는, 처음에는 동형이었다가 마침내 ‘동질’의 관계로 나아가게 된다.


마치 ‘사랑’이 가장 포괄적인 감정의 그릇임을 토로하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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