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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me, from us 22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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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onymous Apr 18. 2017

자연스러움

갓 성인이 되었을 때만 해도 화려하게 꾸며진 것들이 좋았다.


덩달아 감정과 물질적 소비 역시 과잉의 상태가 되어야만 비로소 무언가 채워지는 것 같은 안락함에 빠져들곤 했다.


단순히 시각적으로 예쁜 여자를 만나고 싶었고, 온갖 반짝이는 불빛과 귀를 찌르는 강렬한 음악으로 가득 채워진 공간에 머무르려 했고, 더 이상 이래선 안 되겠다 싶어 뒤늦게 아르바이트라도 할라치면 럭셔리의 대표 격인 백화점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학창 시절 억눌려 있던 다양한 제한적 욕구들이 자유와 만나면서 화산 터지듯 일시에 분출된 것이라 생각한다.


이 세상에 ‘영원’이란 없듯이, 무의미한 이미지의 향연이 지속되는 생활이 점점 지겨워지기 시작할 때 반대로 그동안 일말의 관심조차 없었던 ‘자연’이 하나 둘 눈에 들어오는 것이다. 사전적 정의 그 자체로의 자연과 특정한 사람, 사물이 가진 ‘자연스러운’ 분위기, 두 가지 모두 시선 속에서 부각되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스며드는 데서 그치지 않고 가슴까지 천천히 도달하여 뚫려 있던 구멍들을 새 살 돋듯 메워주었다. 부드러운 쿨 재즈 음악이 흘러나오는 바닷가 근처 어느 골목 귀퉁이에 위치한 작은 카페에서 마음 맞는 누군가와 편안한 대화를 나누는 것처럼 파도가 으르렁대다 소멸하는 소리, 톤이 감미로운 사람들의 음성, 공간을 조용히 울리는 사물들의 백색소음이 한 데 어우러져 적당한 풍요로움을 선사하는 그런 순간. 그리고는 고요히 안으로 침잠한다. 과거와 미래의 모습을 대비하며 ‘나는 어찌하여 이까지 오게 되었는지, 앞으로 또 어떻게 나아가게 될 것인지’를 그토록 ‘자연스러운’ 분위기에 젖어 생각하다 보면 답은 구하지 못할지언정 오랫동안 마음 한구석에서 꿈틀대던 의구심, 불안감이 싹 사라지면서 다시 한번 여유를 가져보자고 조용히 다짐하게 되는 것이다.


마지막에는 여태 만났던 사람 중 가장 자연스러웠던 그 사람과의 추억들을 필름처럼 반추해본다. 아침에 일어났을 때, 헝클어진 머리와 화장을 하지 않은 수수한 얼굴로 흘러내릴 듯 펑퍼짐한 모노톤 파자마를 아무렇지 않게 걸쳐 입은 다음 간단한 토스트와 커피를 나지막이 준비하는 모습들이 눈앞에 펼쳐지면 ‘아, 나는 원래 이렇게 꾸며지지 않은 순간들도 좋아하는 사람이었구나.’ 새삼 깨닫게 되는 것이다. 마침내, 조그만 테이블에 앉아 함께 찍었던 사진들을 차례대로 들춰보며 웃고 떠들다 커피를 후릅- 마시는 순간에 이르면,


무릇 ‘자연스러움’이란 어떤 것인지를 완벽하게 이해한 것만 같은 행복한 착각에 빠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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