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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me, from us 05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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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onymous Aug 08. 2017

도시인

누가 그들, 아니 우리를 탓하겠는가.


사람이 어떻게 그리도 가식적이냐고, 언제부터 그렇게 감정이 메말랐냐고, 질타할 자격을 가진 사람은 아무도 없다. 우리는 도시 생활이 가져다주는 편익들이 많다고 생각한다. 딱히 틀린 말은 아니다. 그 ‘편익’이라는 것이 반경 몇 킬로미터 내에 위치한 대중교통 시설과 종합병원, 각종 공공기관과 동네마다 하나씩 자리 잡은 대형마트를 의미하는 바라면,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런데 왜 가장 중요 시 해야 할 인간적 유대와 진정성 있는 관계 같은 것들이 갈수록 버거운 짐처럼 느껴지는지 도통 알 수가 없다. 문제가 없어 보이는 거대한 공동체의 내부는 실로 헤아릴 수조차 없는 억제된 감정과 부풀려진 허영으로 가득 찬 것이다. 그러다 보니 누군가와 진지한 소통을 한다는 것이 영 쉬운 일은 아니다.


가끔씩 나는 이 도시의 부조리함에 환멸을 느끼곤 한다. 좀처럼 사그라지지 않는 번화가의 불빛 아래를 걷다 보면 땅바닥에 버려진 퇴폐업소 광고 전단지들이 아무렇지 않게 눈에 들어온다. 그 순간 내 옆을 쌩 하고 지나가는 독일 산 스포츠카가 뿜어대는 전자음악을 동시에 체감하는 때가 되면 체통 없는 금수저 이리라 판단되는 그 차 속의 운전자가 거듭 밟히고 밟혀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뭉개진 전단지 속 여자를 무시하고 학대할 것만 같은 기묘한 상상에 빠져드는 것이다.


그러면 안 되는 것 아닌가. 그 사람들을 그리 방치하면 안 되는 것 아닌가 싶은 찰나의 책임감에 고무되다가도 이내 그 스포츠카를 한 번쯤 몰아보고 싶은 원초적인 욕망에 사로잡힌다. 참 알다가도 모를 ‘도시인’, 아니 ‘인간’이다.


마틴 스콜세지 감독의 <택시 드라이버> 속 주인공, 트래비스 버클이 떠오른다. 뉴욕의 화려함, 그 이면에 감춰진 더럽고 추악한 모습들을 차마 견디지 못해 자신이 그 모든 부조리함을 심판해야 한다고 여겼던 어설픈 영웅. 사회 부적응자의 위치에서 의도치 않게 시민영웅이 된 트래비스가 어두운 뉴욕의 밤거리를 향해 사라지며 백미러를 훔쳐보는 마지막 장면의 그 눈빛은, 우리들의 시선과 일맥상통한다. 정확한 대상은 없지만 무언가 바로잡고 싶은 수동적 정의감 같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진 이 도시가 좋다. 자유주의는 이곳을 누구나 도전할 수 있는 꿈의 무대로 조성해 놓았다. 그 꿈의 무대를 종횡무진 뛰어다니는 사람들 중에는 인간미 넘치고 건강한 정신을 가진 분도 분명 많을 것이다. 그런 사람들이 더 넘쳐나기를 희망한다. 그리하여 우리들이 ‘도시인’으로서의 삶에 더 이상 어떠한 환멸을 느끼지 않도록, 스스로 영웅이 되어야겠다는 헛된 망상에 사로잡힐 필요가 없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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