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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me, from us 06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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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onymous Aug 16. 2017

비보잉

“엄마, 나 춤으로 진로를 정하고 싶어.”


중학교 3학년 여름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한창 ‘비보잉’에 빠져 친구들끼리 몰려다니며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춤 연습을 했었다. 연습을 하지 않는 시간에는 온라인으로 영상을 찾아보거나 스포츠 채널에서 간혹 방영하는 프로 선수들의 대회를 홀린 듯 몰입해서 보곤 했다. 그러다가 따라 할 수 있을 것만 같은 기술이 나오면, 그 날은 종일 방에서 구르고, 떨어지고, 부딪히고 하는 것이다.


스스로가 진정으로 원하여 땀에 흥건히 적셔진 적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매 순간 잠자리에 들 때면 얼른 내일이 오기를, 미친듯이 바랐다. 우리는 마치 록 스타처럼 교내에서는 이미 특별한 그룹으로 여겨졌다. 남녀 할 것 없이 어떠한 동경 혹은 부러움의 대상으로 바라보았으며, 배우고 싶다며 불쑥 찾아오는 친구들도 많았다. 정말 신기했다. 다 같이 숙고하여 고른 음악 위에 몇 달을 고생해서 만든 단체 안무를 보여줄 때면, 바로 삼 미터 정도 떨어진 앞에서 터질 것 같은 환호 소리가 났고, 그러면 더욱 자신감이 생겨 동작에 절도가 더해지는 것이다. 창작과 협업의 과정에서 느낀 원초적 즐거움은 지루하기 그지없는 학교생활로부터 나를 구제해주는 것만 같았다.


우리는 지역에서 주최하는 작은 댄스 대회에 참가했고, 어느 순간 나는 춤을 필연적 운명으로 받아들인 것 마냥 ‘이게 진정 내 길’이라고 여기며 매 순간 사뭇 진지한 태도로 임했다. 그러던 어느 날, 집에 돌아와 한껏 부푼 목소리로 어머니에게 '충격적인' 결심을 내뱉은 것이다.


당연히 어머니는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단칼에 반대하셨다. 순간, 나는 몹시 화가 났다. 처음으로 무게감 있게 피력한 내 꿈이 너무나 쉽게 짓밟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번만큼은 쉽게 수그러들면 안 되겠다는 생각에 반항하듯 춤에 대한 열정을 목청 세워가며 거듭 강조하기 시작했다.


그제야 어머니는 ‘재능’과 ‘현실’ 두 가지 이유를 들며 천천히 회유하였는데, 그다음 내 차례가 왔을 때, 나는 더 이상 이성적인 반박을 할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정말로 나는 내가 재능이 있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고, 춤을 업으로 삼은 사람들 중 대부분이 고달픈 현실에 빠져있다는 사실을 쉽게 부인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실로, 나는 그저 잠깐 동안 겪은 풋풋한 ‘인기’와 ‘열정’에만 도취된 귀여운 중학생이었다. 그것 말고는 내가 춤을 운명으로 생각하는 적절한 이유를 찾을 수가 없었다. 뭔가 감정적으로 분하긴 했지만, 듣고 보니 또 맞는 말 같아서 정말 간신히 화가 치밀어 오름을 꾹꾹 눌렀다.


가끔씩 바쁜 일상을 살아가다, 순진했던 그때를 떠올리면 나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가 번진다. 비록 춤꾼이 되진 못했지만, 여전히 또 다른 예술의 한 종류인 '영화'를 사랑하며 관련된 글을 쓰고 있다. 조그마한 디자인 조명을 직접 제작하여 팔아보기도 했다. 대다수가 생각하는 순수하고 위대한 예술은 아닐지도 모른다. 상관없다. 나는 내가 진지하게 공들여 작업한 결과물들을 다양한 경로를 통해 세상에 내놓고 있다.


‘누구나 예술가가 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처음 심어줬던 중학교 3학년의 추억들은 지금의 내가 일련의 프로젝트들을 진행하는데 정말 소중한 원동력이 되고 있다. 일반인 혹은 비전문가라고 해서 예술가가 되지 말라는 법은 없다. 각자의 상황과 여건에 맞춰, 자신만이 표현할 수 있는 방식으로, 계속해서 세상에 소리치다 보면 분명 누군가가 당신의 열정에 이끌려 마치 억눌린 자아가 폭발하듯 자신만의 꿈들을 또 다른 누군가에게 쏟아낼지도 모르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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