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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me, from us 07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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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onymous Aug 13. 2017

각위최

대학 졸업 후에 서울로 올라가,


패션전문학교를 다니고 디자이너 브랜드의 스튜디오실을 거친 다음 친구들과 함께 도메스틱 브랜드 론칭을 준비 중인 친구가 있다.


초등학교 때부터 많은 시간을 함께 보냈었기에 친구의 성격과 성향은 이미 전부 파악된 것이라 생각했다. 서울로 올라가기 직전까지만 해도 여전히 자존심과 고집이 세고, 의외로 깊이 있는 인정을 지녔으며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반드시 밖으로 뱉아야만 직성이 풀리는 유형이었다. 하지만 그 자존심과 고집이 겸손과 오기, 근성 같은 것으로 바뀌게 될지는 전혀 몰랐다.


서울이라는 공간은 꽤 복잡다단한 곳이다. 저마다의 목표와 꿈을 좇아 치열하게 살아가는 욕망들이 얼키설키 뒤섞여있다. 개 중에는 본질적으로 비슷한 것들도 많아서 당장 내 옆의 누군가를 밟고 일어서야 본인의 안정과 성공이 보장되는 경우도 빈번하다. 친구가 속한 패션 업계는 더욱이 그 산업 규모가 크지 않을뿐더러 시장에 공급되는 인력은 적정 수준 이상으로 많아 불가피한 경쟁과 임금 저하가 당연시 여겨지고 있었다.


이전 학부 전공과 전혀 다른 분야에서의 새로운 시작이었기에 2년 동안 학교에서 밤을 지새우며 열심히 이론과 실기 실력을 닦았다. 어느 정도 기초가 탄탄해졌다고 느낄 때쯤 소박한 꿈을 안고 나온 사회는 생각보다 냉소적이었다. 도대체 줄어들지 않는 과로의 연속에 피골이 상접해가고 그에 반해 임금은 턱 없이 부족했다. 나는 친구가 몇 개월 안에 그만둘 것이라 예단했다. 그때까지 내가 알고 있었던 친구는 분명 그런 결정을 할만했다. 


그런데 그만두지 않았다. 한 달이 두 달이 되고 두 달이 네 달, 여섯 달 계속해서 길어졌고 초반의 불평불만은 더 이상 타인을 향하지 않고 자신의 내부로 수렴했다. 부족함과 무지를 인정하고, 이전 학교에 있을 때처럼 다시 밤을 지새우기 시작했다. 부족분을 채우기 위해 지속적으로 자료를 수집하고 포트폴리오를 만들고 잡지와 서적을 뒤졌다. 그 인고의 노력들이 이행될 수 있었던 기저에는 분명 친구의 자존심이 존재한다. 그러나 이번에는 조금 달랐던 것이 자존심의 일부가 오기와 근성으로 바뀌었다는 점이다. 그것들은 친구가 천천히 발전할 수 있도록 보이지 않는 곳에서 잠을 자는 혹은 스마트폰 보는 시간을 줄였고, 대신 노트북과 서적, 재봉틀과 같은 것들을 가까이하게 만들었다.


하루 평균 열두 시간이 넘고 주말도 없는 직장생활을, 친구는 꼬박 1년을 채우고 나왔다. 그 사이에 많은 사람들이 들어왔고, 또 나갔다. 지적과 무시를 일삼던 브랜드 실장은 친구의 잠재력과 끈기를 확인하고는 계약기간 연장과 임금 상승을 제안했다. 하지만 친구는 더 이상 그곳에 머물러 있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지금부터는 온전히 자신만의 꿈을 위해 준비할 타이밍이라고 결단한 것이다. 퇴사하고 나와 평소 알던 지인들과 팀을 꾸렸고, 사무실을 계약하고 시즌에 맞춰 콘셉트를 짜고 샘플을 만들면서 더 나은 내일이 될 그 날을 위해 약진하고 있다.


며칠 전, 잠들기 전 친구와 잠시 통화를 했다. 사람인지라 힘든 것, 고민거리, 대인관계에서 오는 피로감 같은 것들이 전혀 없지는 않았다. 짜증과 분노와 험담으로 점철되던 통화는 이제 한숨과 받아들임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 노력하자는 다짐으로 진일보했다. 그리고 친구는 ‘각위최’라는 말을 덧붙였다. 나는 무엇을 뜻하는 것인지 몰라 되물었다.


‘각자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자.’


이토록 간결하고 명확한 진리 앞에서 나는 살짝 감동을 받았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우리는 휩쓸려 다니며 하루 종일 놀 궁리만 하는 철부지들이었다. 전체 인생으로 보면 그리 길지도 않은, 약간의 시간이 흘렀고 이제 각자의 업과 비전, 궁극적 이상 같은 것들을 진지하게 나누는 정도가 되었다. 서로 간의 쓸데없는 자존심과 자격지심들은 모두 사라졌고 상대의 현재 상황을 이해하고 응원하기 시작했다. 다가 올 미래도 희망적일 것이라 말하며 다시 한번 기운을 복 돋았다. 그러니까 다소 감격스러울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 말을 듣는 순간 과거로 회귀하였고, 현재까지 함께 했던 시간들이 떠올랐다. 코 묻히던 우리가 이다지도 컸구나 싶어, 또 나름의 가치관을 고수하면서, 본인의 개성과 자아를 잃지 않으면서 천천히 잘 헤쳐 나가고 있구나 싶어 대견스러워졌다.


사실 나는 친구들에게 나의 고민과 걱정거리들을 늘어놓는 편이 아니었다. 마치 그것들이 내게 있어서 큰 결핍인 양 혹은 어떠한 치부인 것처럼 여겨 노출하기 싫어하는 경향이 있었는데, 그것을 나의 일부로 받아들이고 난 이후에는 오히려 대화가 한결 편안하고 깊어짐을 느꼈다. 통화를 할 때도 고민, 예를 들어 꿈과 현실의 괴리와 같은 결정하기 어려운 문제들을 서슴없이 꺼내놓았고, 그러면 실제로 해결되는 것이 전혀 없어도 마음은 한결 가벼워지곤 한다. 아마도 나는 ‘각위최’를 알게 해 준 친구로부터 한 가지 깨달음을 더 얻은 것 같다.


‘행복은 나누면 배가 되고, 슬픔을 나누면 감해진다.’는 이 어설픈 희망고문 조의 격언은 때로 그 문장 그대로 의미를 가진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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