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기댄다는 것

그것을 배우지 못한 채 자라 버린 아이

by 명표윤 Feb 10. 2025





 사면초가라는 사자상어가 있다. 정확한 뜻은 모르지만 사방이(사면이) 막혀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 처해있다는 뜻인 줄로 안다. 내 기억으로는 어릴 적 내가 딱 그 상황이었던 것 같다. 물론 불행하기만 했던 것은 아니다. 행복한 기억이 많다. 정성과 사랑이 가득 담긴 음식을 먹었던 기억, 함께 좋은 자연 풍경 속에서 캠핑을 했던 기억, 마주 보며 행복하게 웃었던 기억, 같은 마음으로 좋아하는 일을 했던 기억. 떠올려보면 아주 행복한 때가 있다.


 그런데, 그렇게 행복한 때가 있었음에도 내게 그늘이 있는 것은(다른 사람들도 각자의 아픔이 있겠지만) 아주 예민할 시기부터 내 세상이 아팠기 때문이다. 내 세상이 무너지려 했기 때문이다. 날 감싸주어야 할 내 세상이, 내게 감싸달라 도움을 청했기 때문이다. 애석하게도 아이의 세상은 엄마다. 아이의 세상은 부모다. 부모 역시 어떤 부모의 자식일 뿐인데. 생명의 세계가 되어주어야 한다니 잔인하지 않은가.


 아버지는 우리 가족을 부양하고 어머니 대신 집안일도 하며 동시에 어머니를 케어해야 했고, 그것을 벅차하셨다. 당연했다. 그게 힘들지 않을 사람은 없다. 어머니는 우울증이 심해 한동안 침실에서 나오기조차 힘들어하셨다. 딸인 나를 많이 의지하셨다. 그때 내 나이는 고작 초등학교 고학년이었다. 그래봤자 막 10대가 된 어린아이였다. 오빠 역시 나와 겨우 2살 차이가 나는 아이였기에 어렸고, 여렸고, 힘들어 보였다. 그래서 의지할 대상으로 볼 수 없었다.


 어머니는 아프실 때 누워계시는 시간이 많았다. 원래 그런 분이 아니었는데. 누구보다 성실하고 바쁘고 환하고 발랄하고 사랑이 많은 분이었다. 그런데 마음이 아파 앓아누우시게 되니까 사람이 완전히 변하게 되는 것이었다. 침울하고, 비관적이고, 게으르며, 자기중심적이고, 타인을 향한 원망이 가득해졌다. 그때의 내가 보기엔 그랬다. 그때는 몰랐으니까. 애석하게도 사람은 겪어보지 않으면 정말로 알 수가 없다. 나는 달라진 어머니 곁에 머무르며 안아드리고 타인을 향한 원망 섞인 말들을 들어야 했다.


 타인을 향한 원망에 대한 반응이 어머니의 마음에 차지 않게 나올 때면, 어머니의 원망은 나에게로 향했다. 고스란히 나에게로. 타인이 아버지이든, 친척이든, 내가 잘 아는 어머니의 주변 사람이든, 내가 타인을 두둔하기라도 하면 어머니는 나를 원망했다. 어린 나는 남의 험담에 대해 들었을 때 배운 대로 반응했을 뿐인데, 어머니의 원망을 듣고 있자니 그저 혼란스럽기만 했다. 그러다가도 나에게 끊임없이 안아줄 것을 요구하는 어머니를 외면할 수 없는 처지가 지겨웠다. 그런 마음이 드는 내가 끔찍했다. 나중에는 노이로제에 걸려 안아달라는 말만 들어도 미쳐버릴 것 같았다. 숨이 턱 막혀왔다. 도망치고 싶었다.


 학교에 가면 친구들이 있었고, 그때는 아무 생각 없이 아무 걱정 없이 있을 수 있었다. 집에 가면 힘들었지만 그렇다고 집에 가지 않고 놀고 다닐 순 없었다. 아버지도 어머니도 오빠도 힘들 텐데, 무엇보다 어머니가 나를 찾으시는데. 내가 어딜 가겠는가.(한탄 섞인 웃음) 가정사이기에 누구에게 털어놓을 수도 없고, 가족들은 충분히 힘들기에 기댈 수도 없고, 그렇기에 나는 점점 혼자 삭히는 법만 배워갔다. 혼자 울고, 그렇게 아무렇지 않은 척하는 법을. 늘 웃는 얼굴로 지내는 법을 배워나갔다.





이전 02화 꾹 참는 습관

브런치 로그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