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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JO 지나친 조각들 Oct 25. 2020

어쩌다, 핸드볼 (4) 두려움을 마주하는 자리

[프랑스 척척석사 생존기] 외로운 골키퍼

연말을 첫 승리로 장식해준 동료들을 2주간 노엘 방학이 지난 뒤 2020년에 다시 만났다. 2020년에 마스크를 쓰지 않고 사회적 거리를 두지 않았던 시기가 있었나 싶기도 하지만 프랑스는 3월 말이 되어서야 전국 봉쇄라는 조치를 내렸다. 3월까지도 프랑스 정부는 마스크는 의료진들과 환자만 써야 한다고 발표하였고 일반인들은 마스크를 구입할 수 없었다.


새로운 한 해를 맞이하며, 우리 팀에도 변화가 있었다. 2학기는 매번 친구들을 떠나보내야 하는 시기였다. 교환학생을 떠나는 선수들의 빈자리를 남은 동료들끼리 채워야 했다. 이번엔 포지션에도 변화가 있었다.



작년에 골키퍼를 했던 친구가 올해는 골키퍼를 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 골키퍼를 적극적으로 하고 싶어 하는 사람이 없었다. 공이 무서워서 절대 못하겠다는 친구들도 있었고, 하고 싶은 사람이 없으면 해도 상관없다는 친구들도 있었다. 나도 그중 하나였다. 골키퍼가 하기 싫거나 공이 너무 무서운 건 아닌데, 내가 못해서 팀에 도움이 안 될까 봐 걱정된다고 했다. 4명이서 번갈아가면서 골키퍼를 하기로 했다. 물론 작년에 골키퍼를 담당했던 친구가 제일 잘하지만, 친구의 의견이 제일 중요했다. 그 친구도 자신이 아니면 할 사람이 없다는 걸 알았기에 그동안 꾹 참고 골대 앞을 지켜왔을 테니까.


하기 싫으면 하지 않아도 되고,
한다면 하고 싶어서 하는 게 우선이었다.


원리는 간단했다. 손을 들고 양 발을 움직이며 공에 집중한다. 날아오는 공을 손이나 발을 뻗어 막아낸다. 우리 팀이 공격을 할 때는 공을 던져 패스한 뒤 움직임이 어떤 지 판단한다. 역공을 당할 때는 어느 쪽으로 오는지 소리쳐 알린다. 가운데로 파고드는 피봇(pivot)이 어디로 움직이는지 소리쳐 알린다. 보고 막고 보고 소리친다. 어렵게 느껴지지 않았다. 발을 어떻게 딛고 뛰면서 허리를 왼쪽으로 꺾으며 공을 던져야 하는 라이트 윙보다 이이해하기 쉬웠다.



될 대로 되라지. 걱정은 되지 않았다. 내가 너무 못하면 알아서 교체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었다. 아마 우리 넷 모두 같은 마음이었겠지. 골대 앞에 서니 빨간 골대가 닿을 수 없는 무한한 공간처럼 느껴졌다. 이 넓은 공간을 어떻게 막지? 어디로 던져도 다 들어가겠는걸?  예상은 크게 빗나가지 않았다. 공은 생각보다 빠르고 무섭게 들이닥쳤다. 눈 앞으로 다가오는 공을 똑바로 마주하는 건 두렵고 어려운 일이었다. 어디로 던져도 내 옆을 지나갔다. 나는 회전문이었다. 무서운 속도로 날아오는 공을 잡기 위해 몸을 던질 엄두가 나지 않았다. 저거 맞으면 정말 아프겠다. 울상인 얼굴로 엉거주춤 골키퍼 흉내를 냈다. 내가 뻗는 팔보다 빠르게 골대 안으로 들어가는 공들에 안심했다. 날아오는 공이 왜 이리 많은 지. 속도는 또 왜 그리 빠른 지. 순식간에 달려오는 선수들이 소떼처럼 느껴졌다. 제발 잘 막아서 골라인을 넘지 않게 해달라고 소리쳤다.



골키퍼는 외로운 자리였다. 우리 팀이 공격을 하러 떠나면, 자연스레 관객들도 모두 상대팀 골대로 시선이 향하고 텅 빈 공간에 미친 듯이 뛰는 심장 소리를 들으며 기다려야 하는 위치였다. 내가 마주하는 건 같이 뛰는 팀 동료들이 아니라 상대팀 선수들이었다. 내가 의지 할 수 있는 건 눈 앞에 보이는 우리 팀 동료들의 등이었다. 부담이 큰 자리였다. 라이트 윙일 때는 내가 실수해서 수비가 뚫리더라도 골키퍼가 있다는 생각에 압박을 느끼지 않았다. 상대팀 선수가 점프를 하는 순간 그 공을 막아내는 건 순전히 내 일이 되었다. 내가 실수를 하면 실점으로 이어졌다. 그 무게를 건디는 건 혼자였다. 실점에 아무도 내 탓을 하지 않았지만, 그 골문 앞에서 막지 못한 건 나였기에 죄책감이 들었다.



코치에게도 친구들에게도 이 마음을 털어놓았다.


"아무도 하기 싫으면 할게. 근데 나 죄책감이 너무 많이 들어.... 너무 못하잖아...

골키퍼 엄청 중요한 자리 아니야? 마지막에 골을 막아내야 하는 사람이 이렇게 느려서 어떡해.

어떻게 던져도 다 들어가는 게 말이 돼? 인형 세워두는 게 낫겠어."


코치는 골키퍼가 모든 걸 감당해야 하는 게 아니라고 일깨웠다.


"골키퍼 중요하지. 근데 어쩔 수 없잖아. 우리는 돌아가면서 최선을 다하는 거고.

실점은 네 잘못이 아니야. 골키퍼가 모든 걸 감당하는 게 아니야. 그렇기에 수비가 잘해줘야 하는 거고.

실점은 팀 전체의 실책이지 혼자만의 잘못이 아니야. 그리고 네가 얼마나 용감한데."


친구들은 그 자리에 서줘서 고맙다고 했다.


"야 난 무서워서 거기 서지도 못해. 공이 오면 피한다고. 네가 거기 서있는 게 얼마나 든든한데."

"나 봤지? 소리 지르면서 눈 감아버리는 거."

"너 진짜 용감해. 얼마나 고마운지 몰라"



우리 모두 한 번씩 골대 앞에 서봤기에 이해할 수 있었다.

정신 차리고 수비해야 하는 이유를.
두려움을 마주하는 그 자리가 어떤지를.
그 자리에 서보지 않았더라면 아마도 몰랐겠지.



팀이란 건 서로에게 힘이 되어주는 존재가 된다는 거였다.
너를 믿기에 내 등을 보일 수 있는 거였고,
눈 앞에 보이는 네 등이 든든하게 느껴져야 했다.



혼자 모든 걸 감당하게 내버려두면 안 되는 거였다. 팀이기에 내 어깨에 네가 언제든지 기댈 수 있어야 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모두 자신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해야 했다.



라이트 윙 포지션으로 돌아갈 때마다 수비를 잘하려고 노력했다. 적극적으로 달려가기도 하고 온몸으로 막아내려고 노력했다. 실수해도 괜찮다는 생각을 가졌던 게 부끄러웠다. 내가 잘해야 내 등을 바라보는 친구가 덜 부담스럽다는 걸 알기에. 그 자리에 서있는 거 자체가 얼마나 많은 압박이 느껴지는지 알기에. 벤치에 있을 땐 소리쳐 응원했다.


"괜찮아. 잘했어!!!!"

"와~ 잘 막았어. 최고야!!!!"


골키퍼가 혼자라고 느끼지 않기를 바라며 나의 목소리가 네 짐을 조금이나마 덜어주기를 바라며 진심을 실어 보냈다.



[프랑스 척척석사 생존기]

https://brunch.co.kr/magazine/chuckchu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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