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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JO 지나친 조각들 Oct 17. 2020

부치지 못한 편지

이제는 압니다. 당신께서 나를 위해 수많은 말들을 삼킨걸요.

그대에게,



잘 지내시나요? 저는 잘 지내고 있습니다. 언제나 당신의 품에서 울고 웃을 줄만 알았는데, 그 손을 잠시 내려놓고 걸어오니 세상은 더 많은 아픔이 있더군요. 호락호락하지 않은 곳이었습니다. 이제 가을이 지나고 겨울이 오려나 봅니다. 오늘은 밤바람이 찹니다. 텅 빈 제 마음에도 찬 바람이 들이닥칩니다. 무슨 말이든 끄덕여주고 눈이 마주치면 환하게 웃어주던 당신의 미소가 잊히질 않네요. 아니 잊고 싶지 않습니다. 당신이 나를 위해 놓아야 했던 그 꿈들과 그 행복들이 얼마나 큰지 감히 제가 재단할 수도 없습니다. 그렇게 무럭무럭 당신을 발판 삼아 걸어온 이 길에서 힘들다며 투정 부리기만 했네요.



전 당신의 해바라기였습니다. 따뜻한 말을 듣고, 볕이 잘 드는 곳으로 옮겨지기도 했고, 매일같이 청량한 물을 마시며 어느 하나 부족한 것 없이 당신의 관심을 받았지요. 아니 그저 아름다운 해바라기였으면 나았으려나요. 당신에게 얼마나 자주 상처를 입혔는지 모르겠습니다. 당신이 아프기를 바라며 내뱉은 말들도, 그저 내 기분이 좋지 않기에 내뱉은 독들은 이제 다시 주워 담을 수 없겠지요. 차마 다시 생각할 수도 없는 그 말들을 그렇게 쉽게 내뱉었는지 후회가 됩니다. 그저 나를 사랑한다는 이유로 당신에게 그 많은 독들을 뿜어냈으니까요.



당신이 나를 위해 떠나보낸 꿈들 가운데 작은 풍선 하나를 이제 다시 잡겠다는 당신을 보며 얼마나 마음이 아팠는지 모릅니다. 내가 무엇이라고 당신의 인생을 통째로 갉아먹었을까요. 당신은 왜 그 모든 걸 내줘야 했나요. 밉습니다. 아무것도 몰랐던 아니 알면서도 쳐다보지 않았던 내가 밉습니다. 그런 나를 더 꽉 안아주었던 당신이 밉습니다.



내 마음이 아팠다는 걸 당신은 몰랐으면 좋겠습니다. 당신이 나를 위해 바친 인생을 어찌 내가 함부로 아파할 수 있을까요. 어찌 제가 감히 미안하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그건 당신을 위한 게 아니라 아픈 나를 달래려는 지독하게도 이기적인 마음인걸요. 그저 삼켜야죠. 하면 안 되는 말도, 할 수 없는 말도, 그저 삼켜야 하는 말들도 있다는 걸 압니다. 당신께서 나를 위해 수많은 말들을 삼켰을 테니까요. 흔들리는 목소리를 붙잡아 당신이 걸어가는 그 길을 응원한다고 자랑스럽다는 말에 진심을 살포시 얹혀 보냅니다.



당신이 더 욕심을 부렸으면 좋겠습니다. 당신이 가는 그 길을 받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이제는 제 어깨를 내어드려도 되지 않을까요. 제 어깨가 당신이 기댈 수 있는 곳이기를 바랍니다. 당신의 등을 가만가만 쓸어주고 싶은 제 마음이 닿기를 바랍니다. 당신이 이제야 다시 펼치는 꿈을 있는 힘껏 도울 수 있기를 바랍니다.



당신이 감싸준 세상 속에서 나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찬바람 쌩쌩 부는 이 길을 걷고 있는지. 살아가는 게 참 쉽지 않다는 생각을 합니다. 이제는 압니다. 얼마나 많은 밤들을 견딜 수 없는 것들에 지쳐 당신이 눈물로 떠나보냈을 지요.  이제는 압니다. 당신을 감싸기 위해 내가 준비하려고 이 길을 걷는 거라고요. 당신은 이보다 더한 것들도 막아냈지요. 좋은 것만 보고 좋은 것만 느끼게 했지요. 참 이깟 바람이 뭐라고 아직도 투정을 부리는지. 아직 멀었나 봅니다.




아, 어머니, 오늘따라 당신이 보고 싶습니다.


가로등 아래 흔들리는 나의 그림자가 당신의 아픔도 어둠도 삼킬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제가 당신이 가진 근심도 걱정도 다 가져갈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오늘은 그저 당신이 편히 잠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사랑합니다. 보고 싶습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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