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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서 와. 한국 과자는 처음이지?

수제 기타 공방, 제주도 일러스터

by jaeyi






Red Wing Main Street


남편' 장기주

-어서 와. 한국 과자는 처음이지?

손이 큰 아내는 무얼 해도 점심 도시락을 넉넉하게 해서 기왕이면 동기들에게도 조금씩이라도 맛을 보여주라고 당부하고는 한다. 하지만 이유 없이 누군가의 것을 공짜로 받는 문화가 생소한 이곳은 내가 너의 음식을 공짜로 받아먹었으면 나도 너에게 무언가를 해줘야 하잖아. 부담스러워. 노땡큐야라는 반응이 대부분이다. 물론 이런 사실을 모르고 갔던 터는 아니었으므로 나도 아내도 인심 쓰듯 음식을 마구 권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사람은 다 적응하게 마련인 듯하다. 나도 이곳 문화에 적응하려고 항상 노력하며 생활하고 있지만 거꾸로 동기들도 내가 자신들과 조금 다른 모습을 보이면 외국인이니까,라고 대부분 이해해주며 나에게 적응해주기 시작한 것이다. 더군다나 학교생활에서 본의 아니게 동기들 도움을 받는 일이 크고 작게 있을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인데 그럴 때마다 아내는 늘 그들에게 무엇으로든 보답을 하고 싶어 했고 그것은 언제나 먹을거리로 표현되었으며 그들도 어느샌가 그 마음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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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고 우리만 받는 것은 아니다. 어느 날엔가는 부모와 멀리 떨어져 사는 폴이 사촌누이에게까지 부탁해서 미국 가정식 초콜릿과 과자를 나와 아내를 위해 구워다 준다거나 알렉스의 엄마표 메이플 시럽 등 이제는 서로 주고받는 분위기가 자연스럽게 이루어진 것이다.


며칠 전에는 점심식사 후 후식으로 한국 과자 한 보따리를 동기들 앞에 풀어놓은 일이 있었다.

"그냥 먹는 건 너무 재미없잖아. 우리도 유튜브에서 처럼 처음 맛보는 한국 과자에 대해서 소감 인터뷰를 해보는 게 어때? "


장난스러운 내 제의에 모두들 즐거워하며 기세 등등 인터뷰 지원자 두 명이 나섰다. 그들은 언제나 유쾌한 알렉스와 언제나 진중한 케일럽이다.


역시 예능스러운 알렉스는 꿀꽈배기 예찬


새우깡은 다소 꾸리꾸리한 생소한 맛에 나쁘지 않다는 정도의 반응이다. 무조건 스위트해야 미국에서는 사랑받을 듯하다. 음식을 먹을 때 냄새를 먼저 맡는 행동을 버릇없게 보는 우리나라와는 달리 이곳에서는 일상적인 행동 중 하나이다.


진중한 태도는 케일럽의 트레이드 마크다. 역시 예능을 찍자고 하는데 다큐를 연출해 준다.



-노래주점

매월 첫째 주 수요일 저녁에 학교 근처 레스토랑에서는 오픈 마이크(Open mic)라는 행사를 진행한다. 지난달에는 일이 있어 참여하지 못한 이후로 근 한 달을 기다려 이번에는 나도 참석했다. 동기들에게 말로만 전해 들을 때에는 조금 생소한 문화인 듯했지만 직접 가서 보니 우리나라의 노래주점과 유사한 듯하다.


우리 과에는 전직 기타리스트들도 대거 포함되어 있으며 꼭 그렇지 않더라도 대부분의 학생들이 모두 보통 이상의 기타 연주 실력을 갖추고 있다. 매일 나무만 깎아대느라 서로 땀 흘리며 마주하던 동기들을 낯선 곳에서 낯선 모습으로 완성된 기타를 들고 연주하는 모습으로 대해보니 사뭇 남다른 느낌이 들었다.

모두들 기분 up!



마을을 나서면 개를 산책시키는 이웃들을 많이 만나는데 아내가 가장 놀라워하고 부러워하는 것중 하나가 애견 애묘 인구의 98%가 모두 동물보호소에서 입양한다는 꿈같은 사실이다.



-Plus size

이곳에 와서 나에게 좋은 점은 기성 옷들이 모두 넉넉하게 나와서 내 사이즈의 옷도 어렵지 않게 구매할 수 있다는 점이다. 오히려 내 사이즈 정도가 중간 사이즈에 속할 정도로 전시해 놓은 티셔츠들을 보면 특대 사이즈가 더 흔하다.


얼마 전 월마트 속옷 코너를 지나다 아내가 부산스럽게 나를 불러댄다.

"자기야 이 브라자 좀 봐봐. 엄청 크다. 역시 사이즈가 남달라. 내 머리통도 들어가겠어! "


이내 아내가 깔깔거리며 내 앞을 지나간다. 아내의 다소 충격적인 단어 선정에 그곳에 혼자 남은 나는 순간 얼굴이 벌게져서 괜스레 주위 사람들 눈치를 보며 종종걸음으로 겨우 아내 뒤를 쫓아가서는 왜 그런 말을 그렇게 큰소리로 하냐며 타박을 하자 아내가 시큰둥하게 답한다.

"뭐 어때! 우리말 알아듣는 사람도 없는데."


하기사 그러고 보니 이곳에서 한국말을 할 줄 아는 사람을 만나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니 공공장소에서 말을 가려서 안 해도 되는 편리함이 있기는 하다. 하지만 그래도 점점 더 조심성이 없어지고 과격해지는 아내의 언행으로 언젠가 한번 망신을 당하지 싶은 게 불안 불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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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는 꽤나 고가인 엔틱 제품들이 단 몇달러에 팔리는 이곳의 개인 벼룩시장인 가라지 세일은 아내에게 최고의 기쁨이다.


아내' 김재이

-Local artist

얼마 전 우연히 우리가 살고 있는 마을 레드윙의 친목 커뮤니티를 페이스북에서 발견하게 되었다. 반가운 마음에 완성된 그림을 올리기 시작했는데 생각지도 못하게 반응이 꽤나 뜨거웠다. 어떤 그림에는 댓글이 백개가 넘게 달리는 일도 있었으니 말이다. 어떤 창작자들이나 마찬가지이겠지만 나 또한 내 작품에 대한 대중의 반응과 칭찬이 큰 힘이 된다. 그렇게 몇 달을 꾸준히 올렸더니 얼마 전부터는 몇몇 주민들이 나를 ' 레드윙 로컬 아티스트 재이'라는 과분한 애칭으로 부르기 시작했고 그것은 나에게 그 어떠한 상보다 더욱 가치 있게 느껴졌다.


이후에 나는 앞으로의 나의 명함에 그 애칭을 써넣을지에 대하여 진지하게 고민하였고 유치하다며 극구 만류하는 남편의 의견도 애써 외면하였다. 유치하면 어떠하리. 피알시대 아니던가. 어디든 꼭 자랑을 해야겠다는 굳건한 의지로 요즘은 명함 디자인에 열중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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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드윙의 맛집 허니쉬 베이커리 - Sweet happiness - pen and Acrylic on wood 20″x16″



-레드윙

어제 한국 인터넷에서 연일 화제가 되었던 미네소타에서 있었던 에어비앤비의 한 숙박업소 집주인이 동양인 투숙객을 계단에서 밀어 굴러 떨어지게 하던 동영상이 머리에서 지워지지 않는다. 더군다나 그 집주인의 외침은 더욱 충격적이었다.

‘너 같은 동양인들을 내쫓아 버리라고 트럼프를 대통령으로 만든 거야! 꺼져버려!'


다른 곳도 아닌 우리가 살고 있는 미네소타에서 있었던 일이라니, 나는 주말인데도 그 동영상이 계속 생각나 하루 종일 우울해 있었다. 사실 집안에서 생활하는 나보다 바깥 생활이 대부분인 남편이 걱정되는 것이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이런 내 속내를 눈치챈 것인지 남편이 나가기 싫다는 내 손을 억지로 이끌고 미시시피강 공원으로 산책을 나섰다. 언제나처럼 하늘은 맑았고 바람은 부드럽다. 그리고 또.. 언제나처럼 친절하고 온화한 레드윙 주민들이 밝은 미소로 우리에게 인사를 건네어 준다.

“안녕? 오늘 산책하기 좋은 날이지? 행복한 하루 보내.”


무심히 지나치는 사람 없이 모두 상냥하기 그지없다. 매번 겪으면서도 신기한 일이다. 어쩌면 저리도 다들 낯선 우리에게 한결같이 밝은 인사를 건넬까. 이렇게 사람 많은 주말이면 갑자기 어디에서 누군가 인사를 불시에 건네 올지 몰라 마치 미스코리아처럼 항상 입가에 미소를 띠고 있는 것이 버릇이 되어버린 지 오래다.

“거봐. 기분 풀렸지? 어디에나 옳지 않은 사람은 있어. 그건 한국도 마찬지고, 이것 봐. 이곳은 정말로 친절하고 평화로운 동네잖아. 일어나지도 않은 일을 미뤄서 걱정할 필요는 없어.”


미시시피 강변


실제로 미네소타는 물가가 싸고 치안이 좋고 친절한 도시로 미국 내 순위 1,2위를 다투는 도시로 유명하다. 그런데 그곳에 속해 있는 이곳 레드윙은 오히려 미네소타 전체의 명성보다 모든지 더 한수 위로 느껴지는 것이 무리가 아니다. 레드윙은 미시시피강 가장 하류에 위치하여 2백여년 전부터 배로 물류를 싣고 왕래하며 무역으로 유명한 도시였다고 한다. 물론 과거의 명성에 비하면 현재에는 소박한 시골 마을에 불과하기는 하지만 그 규모만큼은 지금도 결코 작지 않아 특별히 도시에 나갈 필요가 없을 만큼 모든 편의 시설이 잘 갖추어진 마을이기도 하다. 거기에 유독 이 마을이 그 어느 마을보다 친절한 이유에 대해서는 사실 우리도 정확히 아는 바가 없다. 다만 우리 나름의 얕은 짐작으로는 과거부터 현재까지 이 마을이 미시시피강 가장 하류라는 지리적 위치로 인해 미국을 횡단하는 배와 캐나다를 오가는 기차 등으로 많은 무역상과 관광객들이 수없이 드나들며 자연스럽게 손님을 대하는 태도가 오픈마인드가 된 것이 아니겠냐는 추론 정도일 뿐이다.


평화롭고 아름다운 마을 레드윙, 이미 정이 흠뻑 들어버렸다.


오늘도 어김없이 산책을 마치고 차에 올라타자마자 다시 무표정의 한국 사람으로 돌변한다. 그래도 어느새 흘러나오는 음악소리에 콧노래를 흥얼거리는 것이 마음이 한결 편안해 진것이 사실인듯 하다. 남편 말이 맞다. 일어나지도 않은 일을 미뤄서 걱정할 필요는 없다.


10-14.JPG 미국에서 처음 맞는 남편 생일날 간소한 상차림_한인마트에는 대부분의 모든 한국 식재료들이 있어 음식에 대한 아쉬움은 크게 없다



-그곳에 두고 온 것들

나를 가장 힘들게 하는 것들은 역시나 그곳에 두고 온 것들에 대한 그리움이다. 얼마 동안 학교에 적응하느라 힘들 남편을 위해 내 힘듦을 억누르고 감추며 간신히 버티던 나는 얼마 전 기어이 술을 한바탕 마시고는 남편에게 성대한 푸닥거리를 했더랬다. 아마도 그 말도 안 되는 악다구니들의 시작은 제주에 남겨두고 온 고양이들이 보고 싶다는 투정으로 시작되었던 듯하고 중간즘에 이르러서는 이 집의 오래된 카펫이 더럽고 냄새가 나서 도저히 견딜 수가 없다는 푸념에서 절정을 이루었으며 마지막으로는 우리가 이곳으로 온 후 큰 수술을 받아야 했고 아직도 힘들어하고 있을 노모가 가여웁고 보고 싶다며 온몸으로 울부짖다 지쳐 잠이 드는 것으로 겨우 끝이 났던 것 같다.


무엇이 되었든 그곳에 남겨두고 온 것들은 그곳으로 돌아가기 전까지는 이렇게 때때로 우리를 힘들게 할 것이기는 하다. 하지만 그런 괴로운 밤이 지나고 나면 우리는 또 어느새 웃고 떠들고 행복에 겨운 아침을 맞이 하기도 한다. 어떻게든 시간은 흐를 테고 우리는 일상을 살아갈 테며 또 그러다 보면 돌아갈 날은 틀림없이 다가올 테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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