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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대학, 역시나 입학은 쉽고 졸업은 어렵다더니!

기타 제작가와 일러스트레이터 부부의 미국 유학기

by jaey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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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 장기주

-낙제

1학기 마지막 수업을 끝으로 3주간의 겨울방학에 들어섰다. 방학즘이 되어가자 학교 내에서는 여러 가지 희비가 교차하는 일이 생겼는데 그것은 무사히 1학기를 맞춘 학생들과 그와는 반대로 낙제한 학생들의 한숨소리에 관한 것이다.


미국 대학이 들어가기는 쉬워도 졸업하는 것이 어렵다는 이야기는 익히 들어서 알고는 있었지만 사실 이 정도일 줄은 결코 예상치 못했다. 이제 겨우 한 학기를 맞추었을 뿐인데 우수수 낙제생들이 생겨났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은 것이다. 우리 과만도 25명 정원중 확정된 낙제생만 예닐곱 명이라고 했다. 그러고 나서 돌이켜 생각해보니 현재 학교를 다니고 있는 한 학년 위인 같은 학과 선배들의 수가 열명에도 못 미친다는 이유가 새삼 뼈저리게 느껴졌다. 그렇다면 졸업자는 도대체 몇 명이라는 것이가.


학생수가 현저히 줄어버린 상황에서 남겨진 나와 동기들은 조금 더 진지해졌으며 각오 또한 새롭게 다지게 되었다. 이제 겨우 한 학기, 한걸음을 내딛었을 뿐, 상황을 보아하니 아무것도 쉬이 예정할 수 없는 처지이다. 정신 바짝 차려야겠다.


기타 제작 학과로서의 전통이 깊은 미네소타 주립 전문 대학교는 졸업이 어려운 만큼 졸업자들의 자긍심 또한 강하며 실제로 많은 유명 기타 제작가들이 이 학교 출신이기도 하다.



-가정적인 남편

이번 주는 땡스 기빙 데이가 휴일과 이어져 긴 연휴에 들어갔다. 그러나 웬만하여서는 노는 꼴을 못 보는 아내가 겨우 요 며칠 빈둥대었을 뿐인데 그것을 못 봐주고는 그놈의 학교는 학비는 다 받아먹고 왜 그리도 자주 쉬냐고 대놓고 타박이다. 제주에서라면 이미 다른 곳으로 피신을 핑계 삼으며 신이 나서 놀러 나갔겠지만 이곳에서는 그런 온갖 구박을 받으면서도 하루 종일 아내 눈치만 보며 집안에 머물러야 했다. 미국은 가정적인 남자가 될 수밖에 없을 듯하다. 특히나 겨울로 접어드니 갈 데가 정말로 없다. 그래서 우리 건물의 이웃 아저씨들만 해도 휴일이면 맥주 한 박스씩을 손에 손마다 들고 올라가나 보다. 이번 연휴 내내 그저 쓰레기를 버리러 남자들만 오르락내리락하며 서로 머쓱하게 인사를 건넬 뿐 온 건물이 조용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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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요즘은 연말이라고 주말이면 마을 곳곳에서 행사가 많이 열린다.


레드윙에 사람이 이렇게 많이 모인것을 본것은 처음이다




아내' 김재이

-미니멀 라이프

이곳에서 짐을 풀며, 한 곳에 오래 머물지 않는다는 의미는 사람을 아주 간소하게 만든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제주에서의 삶을 뒤돌아볼 수 있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7년 전 제주에 정착하며 우리는 그곳에서 평생을 살기로 마음먹었다. 그리고 그렇게 마음먹고 나자 너무나도 많은 것들이 필요해지기 시작했고 우리는 끊임없이 집과 공방 그리고 창고에 무언가를 채우고 채우고 또 채워나갔다. 그러나 제주를 떠나오던 지난여름, 그 수많은 물건들을 정리하며 그중에서 우리에게 정말로 필요한 물건들은 아주 소수에 불과하다는 것에 또 한 번 놀랐던 것이다.


그렇게 우리 부부는 과거를 거울삼아 이곳에서 만큼은 모든 것을 간소화하자는 것에 성공적으로 합의하게 되었다. 그런데 그 합의가 있은 후 채 얼마 지나지도 않아 남편이 대형 소파 구매를 뜬금없이 요청하는 것이 아니던가. 철없는 남편의 요구사항이었지만 마음을 잠시 누그러트리고는 미니멀 라이프에 대한 약속을 다시 한번 상기시켜 주는 것으로 그의 요청을 정중히 거절하였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남편은 그에 굴하지 않고 전에 없이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다시 한번 단호히 나에게 소파 구매를 강력하게 재 요구하였다.

"나가버려!라고 당신이 소리치면 여기 미국에서는 갈 곳도 없잖아. 오밤중에 방에서 쫓겨나면 이 한 몸 눕힐 곳이라도 있어야겠어. 소파 하나는 꼭 있어야겠어. 사줘!"

나는 순간 별다른 반박을 하지 못하고 멍하게 그를 쳐다보았다. 그가 근 몇 년 만에 한 주장 중 가장 옳은 말이었기 때문이다. 해만 지면 애고 어른이고 절대로 나다니면 안 된다는 이 무시무시하고 거대한 땅덩어리 어~메리카가 아니던가. 화가 났다고 남편을 사지로 몰수는 없는 일. 나는 더 이상 두말 않고 그의 마지막 안식처가 되어줄 그중 가장 크고 푹신한 소파를 추가 주문했다. 물론 중고로.


IMG_5151.JPG 쫓겨난건 아니고 휴식중





Asea _ pen and Acrylic on wood24"x18" 밤과 낮이 공존하는 시간,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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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의 누구나 그렇듯 이제껏 살면서 내 일거리에서 행복을 찾는다는 것은 우리 부부 또한 이전까지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고 싶다는 고집을 접지 않는 이상 보통의 사람들이라면 많은 것을 포기하고 많은 것을 감수해야 하는 일상들의 연속일 게다. 우리 또한 이것을 위해 아주 오랜 세월을 힘들게 준비해 왔고 또 꽤나 오랜 시간 꿈에 대한 순서가 뒤로 밀리고 또 밀리며 좌절하기 일쑤였다.


오래전 서울에 살던 그때 남편이 집 구석진 방에다 자질구레한 공구들을 너저분하게 쌓아놓고는 매일 밤 하루 일과에 지친 몸을 이끌고도 한 시간이라도.. 단 30분 만이라도.. 라며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기타 나부랭이들을 끝끝내 다듬고 깎고 하던 때가 꿈결만 같이 아득하다. 그 생각에까지 미치면 언제고 나는 그를 도저히 지원하고 응원하지 않으래야 않을 수가 없게 된다. 어쩌면 그런 집념의 남자와 사는 덕분으로 나 또한 갑옷 같은 장사꾼의 옷을 비로소 벗어버리고 오래된 짐 속에서 26년이라는 긴 세월을 잠들어 있던 화구 가방을 꺼내어 들 용기를 얻을 수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10-21.jpg 십 대 시절 화구 가방을 들고 어여쁘게도 신촌 거리를 방방 거리며 뛰어다니던 모습이 아련하다.
10-22.jpg 그랬던 나는 이리도 색이 바래었건만 말라버려 박제가 된듯한 파렛트의 물감은 세월이 무색게 아직도 곱디곱기만 하다.


물감 박스뒤에 선명하게 찍힌 1991년도. 그 시절 나는 꿈 많던 여고생의 끝자락에서 하고 싶은 것이 하고 싶어 몸부림치던 마지막 십 대 시절을 힘겹게 보내고 있었던 것 같다. 그러다 어느 순간, 그림을 그리며 더 이상 그림에 집중하지 못하고 다가오는 학원비 마감일과 줄어드는 물감에 초조해하는 나 자신을 발견하고는 멍하니 한참을 얼마나 앉아 있었을까. 그렇게 파렛트의 남은 물감을 채 지우지도 못하고 화구 가방을 서둘러 닫아버리고 도망치듯 화실을 나와버렸던 그날이 마지막이었던 듯하다.


만약 남편이나 나나 우리가 하고 싶던 일을 아무런 시련 없이 당연하듯 누리며 살아왔다면 과연 지금까지 그 꿈을 지켜낼 수 있었을까. 만약 지켜내었다고 해도 수없이 직면해야 하는 이 모든 힘겨운 과정들마저 지금처럼 감사한 마음으로 한결같이 끌어 안을수 있었을까.


아직도 여전히 이곳에서의 매일은 모험의 시간들이며 막막한 시험대 앞에 서게 되는 버거운 나날들의 연속이다. 하지만 우리는 내일 아침이면 또다시 가뿐히 일어설 수 있다는 것을 그 오랜 시간의 힘겨운 좌절이라는 학습을 통해 깨닫게 된 듯하다.


소중하지 않은 시간들은 없는 것이 아닐까. 그것이 비록 우리가 하고 싶지 않은 것을 해야 했던 시간들일지라도.


105-1.jpg oil on canvas ‘ 19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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