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타 공방, 수제 통기타, 일렉기타, 기타 제작소, 재즈 기타
남편' 장기주
1학년 마지막 수업 2018. 5
오늘로 1학년 마지막 수업이 끝났다. 수업을 마치고 집에서 새 기타의 세팅 작업 중 반 단체 메시지의 알람이 울렸다. 집 근처 메모리얼 파크에서 모이자는 메시지였다. 나 또한 무언가 조금 아쉽기도 하고 헡헡하기도 했는데 동기들도 다 같은 마음이었나 보다.
동기들이 모두 모이자 보이스카웃 출신 케일럽이 솔선수범하여 마른 나뭇가지들을 모아 불을 제대로 피우기 시작했다. 그리고 드디어 모닥불이 활활 피어오르자 줄리아가 준비한 마시멜로우를 구워 먹으며 우리 모두는 어린아이들처럼 즐거운 한때를 보낼 수 있었다. 짧은 모임이였지만 덕분에 나도 그간의 타이트했던 수업으로 인한 스트레스를 한 번에 풀어 버리고 즐거운 마음으로 한 학년을 마감할 수 있는 하루였다.
두근두근 수제 기타쇼
드디어 5월 첫째 주, 학교에서 가장 큰 행사인 기타 제작 학과 학생들의 축제 '수제 기타 쇼'가 진행되었다. 그리고 그날은 아내를 학교로 초청하는 첫날이기도 했다. 입학 전 잠시 함께 둘러보기는 했지만 이런 공식적인 행사 참여는 처음이라서 아내도 짐짓 들뜬 모양이었다.
수제기타 쇼에는 각지의 기타리스트들 뿐만 아니라 기타에 관심이 많은 일반인들도 대거 참관했다. 관람자들은 각각의 기타 제작 학생들에게 1:1 궁금한 질문을 하고 만져보고 연주도 해보며 곳곳에서 열띤 토론도 벌어지곤 했다. 나 또한 밀려드는 관람자들의 질문 공세에 둘러 쌓여 한동안 옴짝 달짝 못하고 기타 제작 과정에 대하여 설명해주느라 진땀을 흘려야 했다. 그것에 더해 기타 쇼에는 여러 팀의 유명 기타리스트들이 초청되었는데 그들은 학생들이 제작한 기타로 직접 연주하며 아름다운 공연을 행사내 이어갔다.
폴과의 이별
기타 쇼가 끝난 다음날에는 이번 학년의 마지막 행사인 2학년 선배들의 졸업식이 남아 있었다. 하지만 그 졸업식에는 2학년 선배들뿐 아니라 몇 명의 우리 반 동기들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 이유는 그들이 처음부터 1학년만을 마치는 것을 목표로 하였으며 그들의 진로가 기타 제작가가 아닌 기타 수리가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중에 나의 가장 가까운 벗인 폴이 속해 있었다. 사실 그 이야기를 폴에게 전해 듣기 전까지만 해도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이었으므로 나에게는 꽤 충격적인 소식이었다. 더군다나 폴은 기타제작가로서의 꿈에 대한 의욕이 대단하였고 반에서도 우수한 학생으로 손꼽혔기 때문에 더욱 그러했다. 좋아하던 학업을 중도에 그만두는 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겠지만 아무래도 현실적인 사안이 가장 큰 이유였던 듯 하다. 한국도 그렇지만 이곳도 별 다를 바 없이 기타 제작가로서의 돈벌이가 여유치 않기 때문일 게다. 이후에도 진로에 대하여 나에게 여러가지 상의를 해왔지만 그럴 때마다 깊은 대화까지는 허락지 않는 이놈의 영어 때문에 나 자신 스스로 답답함과 함께 처음으로 친구가 아닌 조카를 대하는 듯 애틋한 연민이 느껴지기도 하였다.
졸업 전 폴을 떠나보내는 내 마음이 못내 안타까워 보였는지 아내가 폴을 집으로 초대해 제대로 된 한국 집밥을 차려주기도 했다. 아내가 옆에서 느낄 만큼 사실 정말로 폴과 정이 많이 든 것이 사실이다. 학기초부터 언제나 내 옆자리에서 곤란한 상황일 때마다 통역을 자처해주던 폴이었다.
누구보다 열정적이었고 소질이 있었던 폴에게 이 일을 그만두는 것에 대하여 나중에 후회하지 않겠느냐고 조심스레 묻자 폴이 짐짓 장난스럽지만 진지하게 대답했다.
“그렇게 된다면 나는 어쩌면 한국행을 택할지도 모르겠어. 기주, 그때 나를 당신의 기타 공방에 취직시켜주길 바라!”
무엇이 되었든 폴과는 언제든 다시 만나기를 기대한다.
아내' 김재이
남편의 첫 번째 기타 쇼
남편의 기타 제작가로서의 경력도 벌써 올해로 8년의 세월을 넘기고 있다. 하지만 나는 그동안 그에게서 단 한 번도 자신이 만든 기타에 대한 자신감을 엿볼 수가 없었다. 물론 8년이라는 세월 동안 항상 다른 일과 병행하며 온전히 기타 제작가로서의 삶을 살아오지는 못했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 해도 그 모든 세월을 깡그리 부정해 버리는 남편이 나는 못내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이다. 더군다나 가끔이라도 알음알음 찾아와 기타를 연주해보고 선뜻 사겠노라고 나서는 사람들에게 조차도 기타를 단 한 번도 판매하지 않았다는 것은 더더군다나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그리고 언제나 그 기타들 중 대부분은 다시 해체되는 것을 반복당해야만 했다. 그런데, 그러던 그가 이번 기타 쇼에서 기타리스트의 손에서 자신의 기타가 연주되는 것을 들은 후 처음으로 자신의 기타에 대한 자부심과 사랑을 엿 보인 것이다. '좋은 주인을 만나 저렇게 계속 빛나 주었으면 좋겠어.' 그 말 인즉슨, 드디어 그가 자신의 기타를 다른 이에게 떠나보낼 생각을 처음으로 하고 있다는 것이다!
기타 쇼 이후, 지역 방송국 인터뷰에 남편의 이야기가 짧게나마 전파되었고 학교 공식 페이스북에도 남편의 사진이 대표로 올랐다. 기타 쇼 중 2학년 선배 한 명은 부러 나를 찾아와 당신 남편의 기타가 이 중에서 최고라고 한껏 치켜세워주었고 초청받은 기타리스트는 남편의 기타를 연주해본 후 그레잇을 연발하였다. 연주자들은 공연 전 학생들의 기타를 무대 뒤에서 먼저 연주해 보고는 했는데 본 공연이 시작되자 몇몇 연주자가 서로 남편의 기타로 연주하려고 작은 신경전을 벌이는 것이 눈에 띄기도 했다. 그런 여러 가지 호의적인 상황들과 더불어 나에게 남편의 첫 기타 쇼는 성공적이라는 것 외에 또 다른 의미를 부여해 주기에 충분했다. 그것은 앞으로 일 년을 더 이 미국 땅에서 버틸 수 있는 원동력이 되어 주었다고나 할까. 특히나 전 과목 5점 만점에 두 개 항목만 4.5를 받고 나머지는 모두 만점을 받아온 성적표를 보고는 자식 키우는 보람, 아니 아니 남편 키우는 보람이 이런 건가 싶기도 하고 여러모로 내게는 뿌듯하고 감동적인 기타 쇼였음이 분명했다.
https://www.instagram.com/jaeyiki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