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타 제작가와 일러스트레이터의 미국 유학기, 제주도 기타 공방 제작소
남편' 장기주
-이상과 현실
제주에서 운영하던 공방의 가장 가운데에 위치한 유리창문에는 아내가 붙여놓은 커다란 메모와 뜬금없는 비닐봉지가 어울리지 않는 모양새로 나란히 걸려 있었다. 그렇게 무엇인지 큼지막하게 적힌 메모와 비닐봉지 안의 물건들은 의례 공방 손님들의 호기심을 자아내고는 했었는데 그것의 정체인즉슨 공구를 사용할 때 혹시나 모를 사고 시의 구급약품들이었다. 일의 특성상 소리만으로도 위협적인 온갖 대형 공구들이 즐비한 공방을 드나들며 아내는 내심 많이도 불안했나 보다. 현실적인 사고를 잃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아내는 우리에게는 안 벌어질 거야 라는 안일한 생각은 하지 않겠노라 선언하고는 손가락 절단 등의 사고에 대비한 행동 지침서를 크게 적어놓고 그에 따른 응급처치 약품들을 넣은 비닐봉지까지 준비하여 가장 잘 보이는 곳에 비치해 둔 것이다. 처음에는 조금 극성스럽다고 여기어졌으나 공방일을 하며 문득 비상약품 등과 손가락이 절단된 그림 등을 보면 나도 모르게 다시 한번 안전사고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우게 되니 그제야 고마운 마음이 슬며시 들기도 하였다.
그러던 얼마 전 학교에서의 작은 사고를 당한 학생의 이야기를 듣던 아내가 못내 불안한 눈빛으로 내게 묻는다.
"기타는 어느 정도 선까지 수공으로 만들 계획이에요? 100% 수공은 불가능해요? 위험한 전동 공구를 안 다루고 일할수는 없는 거야?"
괜스레 사고 이야기를 들려주었다는 후회와 함께 아내의 마음 또한 모를 리 없지만 나도 아직까지는 어느 정도 선까지 수공으로 임할지에 대해서 마음을 정하지는 못한 상태였으므로 뜨뜻미지근한 답을 줄 수밖에 없었다.
"물론 100% 수공도 가능하긴 하지. 하지만 그만큼 시간과 공이 더 들 테고 그러면 기타의 품질은 올라가겠지만 가격이 상당히 비싸질 수밖에 없어요. 그러면 당연히 잘 팔리지 않겠지. 내 경력이 2-30년 된 후라면 모를까.."
순간, 아내의 눈빛이 반짝거린다.
"그래? 그렇게 하자. 안전하기도 하고, 기타 수준도 확 올라가고, 100% 수공으로 가자. 욕심을 버리고 저렴한 듯하게 판매하면 되지! 여기 와서 외식 안 하고 살아보니까 우리 두식구 정말 생활비 얼마 들지도 않는데 뭐! 그냥 맘 편하게 살자.. 공방에서 기계소리 웅웅 거릴 때마다 심장이 오그라들어.. "
마음을 정하지는 못하고 있었으나 나도 내심 전 공정 수공을 꿈꾸지 아니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꿈과 이상은 언제나 거리가 있는 것이므로 아내의 불안한 마음은 충분히 알겠으나 아직까지도 정확한 결정은 하지 못하고 있는 상태이다. 졸업까지는 충분한 시간이 있으니 천천히 더 여유를 갖고 고심해 보아야 할 듯하다.
-파티 파티
동기 스펜서가 페이스북 그룹 채팅창에 자신의 집에서 작은 파티를 하자고 메시지를 올렸다. 아내에게 이야기하니 아내도 흔쾌히 가자고 해서 불고기를 준비해 간다고 답글을 남겼다. 불고기를 가져간다고 하니 불고기가 무엇인지도 모르면서도 막내 알렉스가 가장 반겨한다. 사실 한국 음식 중 김치를 제외하면 불고기 정도까지는 알지 않을까 했지만 막상 파티에 가서 보니 불고기를 아는 이는 한 명도 없었다. 문화가 되었든 음식이 되었든 한류가 이 시골까지 오려면 아직 한참은 더 걸릴 듯하다. 물론 학과 특성상 모두 남자들이다 보니 한류의 인기까지는 실감치 못하지만 그래도 최소한 BTS만큼은 모르는 이 하나 없다는 것만은 확실하기는 하다.
약속 시간에 맞춰 불고기를 준비해서 스펜서 집으로 갔다. 이미 거의 모든 사람이 도착해서 기다리고 있었다. 알렉스는 허벅지만 한 햄을 오븐에 구어왔다. 그렇게 큰 고깃덩어리는 월마트에 쌓여있는 걸 보기만 했지 요리된 건 처음 봤다. 스펜서 집에 도착하자마자 알렉스가 자신만만해하며 한 조각 썰어 입에 넣어주었는데 맛이 족발 살코기 맛과 거의 비슷하다. 스펜서는 메쉬 포테이토와 콩 요리를 준비를 하였고 학생들 마다 음식을 한 가지씩 준비해와서 과일과 케이크에 와인까지 다양하게 즐길 수 있어 꽤나 멋들어진 저녁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그리고 저녁 후에는 자연스럽게 통기타 연주로 이어졌으며 그중 스펜서의 걸쭉한 컨트리 스타일의 음악은 내가 미국에 와 있다는 걸 또 한 번 상기시켜주기에 충분했다.
동네를 오가며 동기들과 우연히 마주치며 몇 번의 인사는 나누며 지내 오긴 했지만 아내의 공식적인 모임 참석은 이번이 처음이었는데 아내는 스펜서의 컨트리 한 모습과 정말 오래된 집 내부 곳곳을 돌아다니며 마치 서부영화 세트장에 들어온 것처럼 신기하다며 즐거워했다. 동기들 또한 처음 인사 나누게 된 아내에게 시종일관 친절하고 세심하게 신경을 써주는 모습에서 고마움을 느낄 수 있었다.
다만, 술이 거나하게 취해가고 몇몇 학생들이 대마초를 꺼내 들기 시작해 우리는 적당한 때에 먼저 자리를 털고 일어나게 되었지만 아내도 나도 너무나 즐거운 미국에서의 첫 파티 경험이었다.
아내' 김재이
-겨울 방학
남편의 지난겨울 방학 동안 우리는 미국에서 가장 따뜻하다는 마이애미 해변으로 여행을 다녀왔다. 꼬박 일주일 여행을 다녀왔는데 그것은 아마도 내 인생에 있어서 여행다운 여행으로는 처음이지 않을까 싶었다. 제주도에 살았으면서, 미국에 살면서, 왜 여행다운 여행이 이제 와서 처음이라고 하는 걸까.. 내가 생각해도 이상하기는 하다.
이제와 돌이켜 생각해보면 제주에서의 삶을 써 내려간 나의 첫 에세이 '제주에서 당신을 생각했다'의 주된 내용은 실은 제주에서의 삶에 대한 고찰이 아니라 나의 일 중독에서의 탈출기가 아니었나 싶기도 하다. 그만큼 나는 제주에 내려오는 순간부터 일에 대한 욕심을 줄이고 편안하게 휴식하는 방법마저도 마치 걸음마를 처음 떼는 아기처럼 하나하나 새롭게 배워나가야 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몇 년간 노력한 결과물이었는지 다행스럽게도 이번 여행은 그런대로 꽤 괜찮았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에 대한 불안감과 조바심도 많이 줄었고 약간의 가식을 섞어야 했지만 남들처럼 여유로움도 만끽할 수 있었다.
그러나 고백컨데 나는 아직도 내 마음 깊숙이에서, 일하지 않는 시간을 죄악시하고, 휴일을 지겨워하며, 여행은 여전히 불편한 것이라고 치부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는 급기야 남편과 나 자신까지도 속이기 위해 교묘히 일이 아닌 것 같지만 분명히 일거리인 그 무엇인가를 끊임없이 몰래몰래 만들어내고 있다는 것이다. 요즘의 하루 일과들은 남편보다 내가 더 바쁘게 돌아가는 듯하니 말이다.
-동물 자유 연대
최근 동물 보호 협회인 '동물 자유연대'에 어린이 교육용 동화에 쓰일 삽화를 재능 기부하게 되며 동물 자유연대와 인연이 닿게 되었다. 그리고 나는 그 중요한 일이 내게 주어진 것에 감사했고 한국에서와 달리 동물에 관련되어 아무런 활동을 못하는 것에 대한 무기력함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날 수 있게 되어 작은 안도감마저 느낄 수 있었다.
더군다나 그것에 더해 재능기부 이후, 동물 자유연대와 뜻밖의 협업 제안까지 받게 되었으니 그 기쁨과 보람이 더하게 된 것이다. 나는 그림 작가로서의 내 개인적인 성취감과는 별개로 최종적인 꿈이 하나 더 존재하는데 그것은 무엇보다 동물 보호 활동에 헌신적인 그림 작가로 남고 싶다는 바람이다. 그러므로 이번 동물 자유연대 삽화가로서의 첫 발은 그 무엇보다 나에게 그 의미가 대단히 크고 소중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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