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슨 기타, 해녀 일러스트, 해녀 그림,
창기타 제주에서의 오픈 소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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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 장기주
- 올슨 기타 Olson guitar
미국에 오기 전부터 학교생활 외에 한 가지 목표가 더 있었는데 그것은 많은 기타리스트들의 드림 기타로 손꼽히기도 하며 우리나라에서도 저명한 기타 제작의 장인 제임스 올슨(James A. Olson)을 만나는 것이었다.
운이 좋게도 올슨은 우리 학교와 가까운 지역에서 기타 제작소를 운영하고 있었으며 수년 전까지 학교와 결연을 맺고 학생들을 공방에 초대하기도 하고 강연을 하기도 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러나 현재에는 더 이상 외부 강연이나 초대등을 하지 않는다는 소식에 큰 실망을 얻고 말았다.
그러나 그대로 포기할 수는 없었다. 그렇다고 다짜고짜 공방 견학이니 뭐니 하며 떼를 쓴다고 될 일은 더욱이 아니다. 공방을 탐방하고 싶어 하는 나 같은 초보 기타 제작가들이 어디 한둘이겠나. 더군다나 쇼룸이 아니라면 절대적으로 제작가의 작업 공간은 보호받아야 한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누군가의 갑작스러운 방문은 작업자의 귀한 하루의 흐름을 온전히 망쳐버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라도 나는 그가 조금이라도 낯선 방문자를 반겨하지 않는다면 기꺼이 더 이상은 그를 귀찮게 하지 않겠다는 전제하에 최대한 조심스럽게 연락을 취해본 것이다. 개인에게는 웬만하여서 공방 공개를 하지 않는다는 그가 나와의 첫 이메일 서신을 피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일단은 감사했다. 그리고 서서히 내 진심이 전해졌던 것일까. 그 후로 근 일 년 동안 몇 번의 이메일을 더 주고받은 후인 최근에 드디어 그가 자신의 공방으로의 초대장을 나에게 보내온 것이다.
올슨의 공방은 1인 제작소로서는 규모가 꽤나 거대하였으며 1, 2층으로 나뉜 공간은 한눈에 보아도 상당히 체계적으로 나뉘어 종목 종목마다 분산된 것을 알 수 있었다. 반갑게 맞이해주며 인사를 나눈 후 올슨은 주저치 않고 네가 그토록 궁금한 것이 무엇이냐고 친근히 먼저 물어보아 주었다. 나는 그의 물음에 그간의 궁금했던 점을 나 또한 주저치 않고 최대한 솔직히 질문하였다.
"공장에서 찍어내는 기타에 비해 수제 기타는 분명한 단점이 존재합니다. 수제기타의 단점은 각각의 기타마다 일률적인 소리를 유지해 만들어 내는 어려움과 기타를 만들어 내는 속도가 느리다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올슨 기타는 이 점에서 그 어느 수제 기타보다 훌륭히 그 단점을 극복해 냈으며 그래서 더욱 유명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하여 나는 솔직히 어떻게 그럴 수 있는지에 대해서 무척이나 궁금합니다. 하지만 물론, 당신이 그것을 나에게 설명해 줄 것이라는 기대는 크게 하고 있지 않습니다. 나는 그것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나는 당신의 이 대단한 공방을 견학하는 것만으로도 감사하며 영광으로 생각할 것입니다."라고 어젯밤 아내까지 동원하여 열심히 외운 연설문을 방불케 하는 긴 회화를 용기 내어 우르르 쏟아내었다.
이윽고 그가 쓸데없이 너무나 비장한 나의 표정을 보더니 살짝 미소 짓고는 감사하게도 물음에 답해주겠다는 오케이 사인을 시원스럽게 보내며 다시 한번 악수를 청하고는 내 어깨를 가볍게 두들겨 주었다. 그리고 그는 공방 1층부터 시작하여 2층에 이르기까지 작은 부품에서부터 큰 시설들까지 일일이 내가 이해할 수 있도록 쉬운 영어단어를 찾아내면서까지 친절히 설명해 주기 시작했다.
그렇게 그가 제시해준 여러 가지 팁들의 중심에는 역시나 첫 느낌에서부터 남달랐던 수십 년에 걸쳐 정교하게 짜여 있는 그만의 공방 시스템이 있었다. 기타를 만드는 솜씨가 아무리 좋다 한들 주먹구구식으로의 기타 제작은 일 년에 단 몇 대를 만들어 내기도 힘든 것이 현실이다. 그렇게 되면 기타 값이 당연히 고가가 되고 그것은 결코 소비자와 제작가 모두에게 좋은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의 공방 내 시설들은 일률적인 소리를 낼 수 있는데 도움이 되는 시스템과 품질 저하 없이 신속하게 기타를 만들어 낼 수 있는 수십 년에 걸친 그의 노하우가 모두 녹아있던 것이다. 물론, 그가 알려준 이 모든 노하우안에는 기타 제작에 관련된 직접적인 소스는 없다. 그것은 엄연히 내가 직접 찾아가야 할 온전한 내 몫이기 때문이다.
나는 수시간에 걸쳐 이어진 그의 열성적인 강의에 압도되어 시도 때도 없이 고개를 끄덕였으며 그의 노련함과 겸손함을 갖춘 기타에 대한 열정 앞에서는 나도 모르게 두 손을 절로 모으며 경건함까지 느끼곤 했다. 한 장인의 역사가 오롯이 녹아있는 현장을 직접 두 눈으로 보고 만져보며 곳곳에 새겨진 그의 땀과 손때마저 느낄 수 있었으니 나에게는 그 어떤 시간보다 값진 경험이 아닐 수 없었다.
- 오브라이언 기타, 그리고 새 학기
미국에 와서 두 번째로 만나보게 될 기타 제작가는 '오브라이언(O'brien)'이었다. 그는 유튜브 채널에서 인기 있는 기타 제작가인데 다행히도 그는 기타 Top Voicing 클래스를 정기적으로 개최하고 있었으므로 여름 방학을 기해 그에게 보이싱에 대한 기술을 직접 사사할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
수업 첫날, 수년 동안 유튜브에서 보고 또 보아오던 오브라이언과 마주하게 되자 나 혼자 그 감회가 남달른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리라. 마치 할리우드 배우를 만난 듯 신기하기만 하였다. 수업은 수일 동안 진행되었고 역시 당연한 예상이었지만 공짜 유튜브에서는 결코 배울 수 없었던 여러 가지 긴요한 소스를 충분히 얻을 수 있었으므로 먼길을 달려와 숙식까지 해결해 가며 수업을 받은 보람이 있었다.
여름방학은 오브라이언의 수업을 들은 것 외에는 밀려있던 한국에서의 은행, 관공서 일등을 해결하다 보니 어느새 훌쩍 지나가 버리고 말았다. 한국에 가서 해결하면 간단한 일들이지만 이곳에서 해결하려고 하니 그보다 몇 배의 돈과 시간과 노력을 들여야 했으며 그 외에도 제주 집을 비운 지 일 년이 넘어가자 안 그래도 노후했던 집과 공방 등에서도 차례로 문젯거리들이 일어나 아내나 나나 방학내 여간 마음고생을 한 게 아니었다. 그러다 보니 휴가 계획은 모두 취소되었고 더불어 졸업 후 단 수개월이라도 이곳에서 조금 더 머물며 기타 제작 수련을 쌓아볼까 하던 계획마저도 재고의 여지없이 모두 무산되고 말았다.
그렇게 제대로 휴식이 되지 못했던 여름 방학을 허무하게 보내었지만 새 학기는 또다시 큰 활력이 되어 성큼 다가와 있었다. 2학년은 1학년 때와 달리 자신이 표현하고 싶은 기타를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기 때문에 그 기대감이 더욱 크다. 기존의 학생수가 반으로 줄어들어 처음에는 조금 어색하고 허전한 마음이 들기도 하였지만 모두들 이내 적응하였고 또 그만큼 학생들의 결속력이 다져지고 교수들의 지도 전달성 또한 이전보다 좋아졌다는 장점이 있으니 여러모로 기대가 큰 2학년 새 학기가 아닐 수 없다.
아내' 김재이
-두 번째 공약
제주도에 정착하여 평생을 살고 싶어 하는 나와 달리 새로운 곳,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는 것을 좋아하는 남편은 특히 외국에서 터를 잡고 살아보는 것에 대한 열망이 남달랐다. 그리고 그 열망이 이번 미국 유학이라는 것으로 조금 사그라들지 않을까 기대했건만 지내고 보니 오히려 불을 붙인 셈이 되고 만 듯 남편은 더욱 다른 나라로의 호기심을 반짝이고는 한다.
자. 가만있자. 그렇다면 이번에도 새로운 공약을 한번 내걸어 볼까? 강아지들 늙어 곱게 보낼 때까지 열심히 일하며 조신하게 기다려주면 이후 유학을 보내준다는 조건으로 10년을 욹어먹었으니 이번엔 고양이들 차례던가.
“남편, 좋았어! 내 두 번째 공약은 이민이에요. 고양이들 늙어 곱게 보내고 나면 어디든 이민 가 줄게요!”
“정말? 우리 고양이들 지금 몇 살이지? 그렇다고 내가 뭐 냥이들 빨리 죽으라고 바라는 건 아니고..”
“뭐 대충 예닐곱 살 되었으니까, 한 15년만 기다리면 되겠네요. 고양이들이 개들보다 수명이 조금 길거든요.”
“뭐? 15년? 됐네! 이번 공약은 사양할게. 그때 가면 우리 나이 환갑도 훨씬 넘기는데..”
“과연 그럴까? 막상 그때 가보면 당신은 분명히 인생은 육십부터, 백 살 시대라고 외치면서 당장에 짐을 싸고 있을걸?!”
-무언가를 시작하기에 딱 좋은 때
될까 싶었던 미국에서의 전시회 참여는 처음에는 어려움이 많았지만 작품수가 많아지고 포트폴리오가 완성되자 대체적으로 각 갤러리에서의 반응이 이전보다 확연히 좋아졌다. 현재 프레스컷 갤러리 가을 전시회에는 Asea시리즈 중 레드와 블루가 전시 중인데 제주 해녀 그림에 대한 관람자들의 궁금증과 관심이 유독 많아 반나절 넘도록 그림 옆에 서서 그림에 대한 스토리를 남편의 통역을 거쳐 설명해 주느라 우리 둘 모두 진땀을 흘려야 했다.
그림을 다시 시작한 지 이제 겨우 3년이 되어가는 시점에서 이렇게 집중하여 다작을 그려낼 수 있었던 것은 어쩌면 이곳 미국 생활에서 오는 고립과 외로움, 그리고 온통 낯설고 새로운 것들에 의하여 끊임없이 자극을 받고 떠오르는 영감들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다. 실제로 이곳 미국 관람자들은 내 그림이 기존 화가들의 그림들과는 느낌이 다르며 이국적인 면에서 독특한 매력을 느낀다고 평가하곤 했는데 신기하게도 그들과 비슷한 감상평들이 근래 들어 한국 내에서도 종종 들려왔다. 아직은 신인작가의 작품에 대한 관심의 이유가 아마도 이런 작가 스스로 아무곳에도 속하지 못하고 겉도는 느낌이 그림에 묻어나 오히려 그것으로 하여금 보는 이들의 호기심을 자아내게 하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
남편을 따라온 유학길이었지만 미국에서의 삶은 어쩌면 내게 있어서도 인생의 큰 전화점으로 남게 될지도 모르겠다. 귀국 6개월을 앞두고 이제는 이곳에서의 일들을 정리하는 시간들을 갖고 있는데 무엇이든 의미 있는 일을 작게라도 남기고 싶은 마음에 용기를 내어 떠나기 전 소박하게나마 개인전을 준비 중이다. 그리고 과분하게도 귀국후 잇다 스페이스 갤러리에서의 초대전을 제의받기도 하였다. 물론, 초대전이라는 제목하의 전시회는 나 자신의 작품들이 아직까지는 부끄럽기 그지없기 때문에 극구 그 시일을 뒤로 미루고 있는 중이기는 하나 틈틈이 작품을 평가해 주고 끊임없이 용기를 불어넣어준 잇다 스페이스 갤러리 대표에게 감사한 마음뿐이다.
더불어 근래 들어 내게 가장 기쁘고 놀라운 또 하나의 소식은 그다지도 고대하던 레드윙 아트 갤러리에서의 스몰 픽쳐 회화 공모전에 당선된 일이다. 정확히 일 년 만에 당당히 공모전을 통해 다시 한번 레드윙 아트 갤러리에 입성하게 된 것이다. 다음 달 11월 중순이면 레드윙 아트 갤러리에서 당선된 jeje's 시리즈 유화 작품들로 이번만큼은 비상구 구석진 자리가 아닌 메인 홀에서 이곳 화가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단체전을 치르게 되었다. 덕분에 전시회 오픈식 인터뷰를 위해 미국에 온 지 2년이 다되어서야 처음으로 영어회화에 열중하고 있기도 하다.
60대에 처음 그림을 시작해서 101세 생을 마감하는 그 해까지도 결코 손에서 붓을 놓지 않았다는 미국의 대표적인 순수 그림의 대가 모지스 할머니, 얼마 전 그녀의 이야기를 책으로 접한 후 나는 많은 용기를 얻을 수 있었다. 생각해보니 너무 늦게 시작했다고 속상해하던 나조차 그녀보다 그림을 시작한 시기가 무려 20여 년이나 빠른 것이 아니던가. 어느 날 그녀가 내게 말했다.
‘사람들은 늘 내게 늦었다고 말했어요. 하지만 사실 지금이야 말로 가장 고마워해야 할 시간이에요. 진정으로 무언가를 추구하는 사람에겐 바로 지금이 인생에서 가장 젊은 때입니다. 무언가를 시작하기에 딱 좋은 때이죠’
작품 해석 Jeje's 시리즈는 제주도에 남겨두고 온 검은 고양이 제제와 나, 둘의 모습과 심경을 합성하여 그린 유화작품입니다. 첫 번째 작품의 제목은 두려움이고 두 번째 작품의 제목은 그리움이며 세 번째 작품의 제목은 설렘입니다. 우리가 헤어진 후 우리는 두려웠고 그리고 그리워했고 이제 곧 다시 만날 것이니 설렙니다. 위 두 작품은 공모전 기일 안에 그려져 출품 후 당선될 수 있었으나 세 번째 작품은 기일을 넘겨 이번 전시회에는 위의 두 작품만 전시됩니다.
작품 해석 Asea 가는 길목마다 폭우가 따라다녔고 매서운 가시들이 곳곳에 돋아나 있었습니다. 하지만 누구의 삶이든 그러하지 않을까요. 그저 모두들 폭우와 가시들을 덤덤히 헤치며 때로는 상처가 나고 짓물러도 묵묵히 천천히 앞으로 걸어 나갈 뿐이겠지요.
-마지막 회 인사드려요.
안녕하세요. 아내’ 김재이입니다. 어느새 연재 글의 마지막 회까지 달려왔습니다. 남편은 현재 2학년 1학기 막바지 학업에 열심히 임하고 있으며 내년 5월이면 별 탈 없이 졸업을 할 수 있으리라 예상합니다.
귀국 후에는 제주에서 많은 것을 재 정비해야 하므로 남편도 저도 제 자리를 잡기까지는 또 꽤나 오랜 시일이 걸릴 듯해요. 집과 기타 공방, 그리고 저의 그림 작업실 등 머릿속으로만 그려왔던 계획들을 차근차근 풀어내어 보려고 합니다. 물론 천상 노동자인 남편과 저는 또다시 아주 오랜만에 삽과 망치를 들어야겠지만요. 괜찮아요. 아직은 꽤 젊고 튼튼해서 쓸만하답니다. (우리의 제주도 마당 고양이들은 잘 지내고 있습니다. 2년 만의 재회에 우리를 알아볼 수 있을까 벌써부터 궁금하지만, 사실 이 점은 크게 기대는 하고 있지 않습니다만..)
그동안 애독하여 주시며 시종일관 힘을 실어주시고 응원해주셨던 구독자 여러분들께 깊은 감사의 마음 전하며 머지않은 그때 지금 보다는 조금 더 내공을 쌓은 뒤 남편은 기타 이야기로 저는 그림 이야기로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고맙습니다!
그 후 이야기 보러가기 https://brunch.co.kr/@leejarak/2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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