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모노 Mono Dec 28. 2021

조금은 개인적인 서울의 연대기
1394-2021

미시적으로 기록하는 강남과 강북의 역사

1966년 발표된 서울도시기본계획은 드넓은 농촌에 불과하던 당시의 영동지구, 또는 지금의 강남 지역을 대대적으로 개발하고자 했다. 강남과 관련해서 계획의 핵심 내용은 서울특별시에 편입된 지 3년밖에 되지 않은 이곳에 격자형 가로체계를 도입하고, 그렇게 만들어진 주요 도로변을 따라 고층 건물들을 배치한다는 것이었다. 이러한 기조는 이어진 1970년의 영동2지구 기본계획안에서 보다 구체화되어, “강변도로에 의해 둘러싸인 철저한 격자형 가로망”이 완성되기에 이른다. 이후로 강남은 빠르게 성장하여—추측컨대 잠실에서 열린 88올림픽을 그 상징적 기점으로—서울의 경제와 교육을 주도하게 되었고, “아직도 강북에 살고 계십니까?”라는 냉소적 유행어를 만들어내기도 했다. 




나는 ‘강남 사람’이다. 서초구 서초동에서 태어나 강남구 도곡동에서 자란 나의 생활 반경은 웬만해서는 이른바 ‘강남 3구’의 경계를 벗어나지 않았다. 특히 어릴 때는 강북은커녕 강남북의 경계선 역할을 하는 한강공원조차도 가본 기억이 거의 없고, 중학생이 되어 3호선을 타고 친구들과 놀러다닐 수 있게 된 후에도 강의 남쪽인 잠원지구를 주로 찾았다. 물론 내가 광화문이나 여의도를 전혀 가지 않고 컸다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서울이라는 도시가 나에게는 가장 좁은 의미로서의 강남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는 없다. 내게 서울은 도곡동에서 시작하고 가장 가까운 영화관이 위치한 삼성역(또는 강남역도 좋다)을 거쳐, 내가 자주 찾는 식당과 카페들이 있는 압구정에서 끝나는 하나의 디귿 자 선에 지나지 않았다. 



1394년(서울도시기본계획으로부터 572년 전이다), 이성계는 몇 년 전 그가 세운 나라의 수도를 옮기기로 한다. 동서로는 오늘날의 마포구부터 동대문구까지, 남북으로는 용산구부터 종로구까지 이어지는 새로운 수도 한양은, 넓은 중앙축(지금의 세종대로)과 체계적인 도로망을 갖춘 도시로 기획되었다. 그러나 산이 많은 지형과 하천을 따라 자연적으로 형성된 소규모 도로 등의 영향으로 시간이 지남에 따라 이 도로망에는 많은 굴곡이 생기게 되었고, 강북은 그렇게—조선의 역사를 간직한 건물들과 함께—구불구불한 길들을 물려받게 되었다. 한양 천도 이래 조선과 대한민국의 중심지로 기능해온 이 지역은 강남 개발이 어느 정도 이뤄지기 전, 1960~80년대 산업화와 민주화의 무대 또한 되었다. 




어쩌면 내가 강북이라는, 또 다른 서울에 매력을 느끼게 된 데에는 어딘가 당연한 구석이 있는지도 모른다. 우리는 색다른 것에 끌린다고 했다. 빌딩들 사이로 뻗어 있는 언주로—도곡동과 압구정동을 잇는 도로다—를 오가고 30층짜리 아파트에서 60층짜리 아파트를 올려다보며 십 몇 년을 보낸 내게, 고등학생이 되어서야 제대로 발견한 삼청동의 좁은 골목들과 북촌의 돌담들은 새롭고 흥미로웠다. 강남에서는 단 하나도 찾아볼 수 없는 군청색 기와 지붕들이 가회동 길을 따라 굽이치며 늘어선 모습이나, 1977년부터 운영되어 왔다는 성수동의 거대한 레미콘 공장 같은 것들은 이색적인 것을 넘어 이국적인 느낌마저 주었다. 그런 것들이 ‘레트로함’에 대한 나의 관심을 자극한 모양이다. 그 이후로 나는 기분 전환이 필요하거나 올곧은 도시 위의 생활이 단조로워질 때면 한남동과 혜화역, 익선동과 시청역을 많이 찾게 되었다.



빌딩들이 열을 맞춰 정돈한 테헤란로에서는 짐작할 수조차 없는 서울의(나아가 대한민국의) 역사를, 경복궁 옆 북촌로나 을지로 같은 곳에서는 저절로 느낄 수 있다. 가벼운 산책이면 충분하다. 반대로 유리 커튼월로 마감된 건물들이 반짝이고 화려한 광고 영상이 쉬지 않고 재생되는 강남대로의 모습을 이태원이 따라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러한 극단적인 대비는 보편적인 도시의 성장 양상이기보다는 전례없는 압축적 성장의 초상이다. 어딘가 부자연스럽게, 남들보다 조금 빠르게 자라 온 이 도시에서는, 드넓은 강을 건널 때 도시의 얼굴까지 같이 절단된다. 누군가 묻는다. 서로 너무나도 다른 이 강의 남쪽과 북쪽을 정녕 같은 이름 아래 부를 수 있는가?


하지만 사실 서울은 두 부분 모두가 없으면 존재할 수 없다. 서로 다른 시대들은 공간적으로 완전히 융합되지 못한 상태로 대도시 안에 녹아들어 있다. 강북은 이때까지, 또 강남은 이때부터, 거칠게 말해서 이런 식인 것이다. 서로 떨어져 있기에 더욱 분명하게 드러나는 시간과 삶의 분절된 층위들은, 겹겹이 쌓인 팬케이크가 아니라 넓게 퍼진 하프앤하프 피자의 모습으로 (하와이안과 슈퍼슈프림의 경계선을 한강이라고 부를 수 있다면), 합쳐졌을 때 비로소 하나의 이어지는 역사, 하나의 완전한 도시를 만든다. 둘 중 하나가 없으면 서울도 없는 것이다.

작가의 이전글 건축가는 건물만 짓지 않는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