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N의 생각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롱스톤보이 Mar 27. 2019

나의 한강

부산에 살던 학창 시절, 서울을 동경하였던 이유 중 하나는 바로 '한강'의 존재였다.

친구, 연인, 가족끼리 삼삼오오 모여 한강공원에 앉아 시간을 보내는 것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다.

물론, 부산에도 '해운대' 같은 남부럽지 않은 바다가 있고 '낙동강'이라는 큰 강도 있다.

하지만 해운대는 한강에 비해 너무 관광지 혹은 휴양지 느낌이 강했고,

낙동강은 집에서의 거리도 문제였지만 '공원'으로 불리기엔 어딘가 부족한 게 사실이었다.

(물론, 서울에 올라오고 나서 한강도 해운대 못지않은 관광지임을 알게 되었다;; ㅎㅎ)


신입생 시절, 대학 동기들과 함께 '난지캠핑장'을 갔다. 나의 첫 한강이었다. 

사실 대성리, 가평 등으로 MT를 많이 떠나지만 다음날 아침 수업이 있었던 우리는 서울 내에서 도피처를 찾았고 그렇게 선택된 곳이 난지캠핑장이었다. 

그날 새벽 정말 원 없이 술을 마셨고 술에 취해 바라보았던 한강의 모습(사실 기억이 잘 나진 않는다.)은 적어도 내가 생각했던 '도시'에서는 찾아보기가 쉽지 않은 아름다운 곳이었다.


대학생이 되어 서울에 올라온 후, 한강은 줄곧 내가 꿈꿨던 대로 정말 평화로운 환상의 공간이었다. 

하지만 지난여름, 나의 한강에 대한 짝사랑도 끝나고 말았다. 

여자 친구와의 데이트를 위해 찾았던 뚝섬유원지는 정말이지 '혼란' 그 자체였다. 

사람이 앉을 수 있을 만한 곳에는 죄다 '텐트'들이 쳐져 있었고 그 텐트들 사이를 요리조리 피해 다니며 화장실을 가는 사람, 편의점을 가는 사람 등이 모두 섞여 뒤엉켜 있었다. 

내가 알던 '평화로운 한강'과는 많이 거리가 먼 모습... 더군다나 이야기도 할 겸 앉을 곳을 찾던 나와 여자 친구는 걷다 지쳐 작은 돌멩이 하나를 함께 나눠 앉게 되었다.

우리 뒤에 놓인 무수히 많은 평온한 텐트들을 보며 이젠 내 집 마련을 넘어 텐트 걱정까지 해야 되나 싶기도 하였다.


그 날 이후, 계절은 두 차례 바뀌어 겨울이 다가왔고 지금까지 한강을 간 적은 없었다. 적어도 지난 주말까지는 말이다. 

지난 일요일, 여자 친구가 학교 도서관을 와서 함께 공부를 했다. 

같이 밥도 먹고 공부도 하고 여러모로 정말이지 편안한 주말이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노트북이 필요해 잠시 기숙사에 들렀다 온 사이에 여자 친구의 마음에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다짜고짜 한강을 가겠단다. 

그 이유를 물으니 노을이 예쁠 거 같다고... 네? 저 이렇게 갑자기 가시다니요. 

여자 친구랑 함께 저녁을 먹고 역까지 데려다 주려 한 나의 계획을 모르는 여자 친구님은 해맑게 웃으며 20분 뒤 지하철을 타고 갈 계획이시라고. 

그래도 여자 친구가 내심 미안했는지 같이 가겠냐고 물어왔다.

편안한 주말의 마무리를 상상하고 있었던 나였기에 동네에서 멀어져 한강까지 갔다 집으로 돌아오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이렇게 빨리 헤어지기가 아쉬워 그녀를 따라나서게 되었다.


감탄을 쏟아낼 수밖에 없는 한강 야경


애초에 노을을 보러 갔지만 시간을 착각한 우리 앞에는 깜깜한 밤하늘만이 놓여있었다.

‘와... 한강이 이렇게 예뻤나...’ 나도 모르게 입 밖으로 속마음을 뱉어버렸다.

한강 근처에 거주하고 있는 여자 친구는 뭐 이런 걸로 놀래냐는 식으로 웃어 보인다.

풍경을 보고 있으니 조금전 예민하던 마음도 강바람을 따라 날아가는 것 같았다.

어떻게 보면 인생이란 게 참 단순한 것 같다.

예쁜 거 보고 맛있는 거 먹고 좋은 사람이랑 있으면 행복한 것 아니겠는가.

생각해보니 이 날은 이 모든 것을 다 한 날이었구나.


그래, 한강 덕분에 인생에 대해 또 하나 배웠네!
매거진의 이전글 엄마의 첫 해외여행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