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라는 파라다이스를 공유하는 W에게

09.12.30 홍콩 공항에서

by 허용운

W야! 조금 뜬금없는 이야기를 하나 할게. 1968년에 John B. Calhoun이라는 행동 연구가가 한 실험을 했어. 일정 규모의 공간에 쥐 4쌍을 풀어놓고 쥐에게 음식과 물을 무제한 공급해줬지. 천적도 없어. 파라다이스였어. 그러니 생식 및 양육 능력이 활발한 우세 쥐들의 주도로 개체 수가 처음엔 빠르게 늘어나. 그런데 쥐 개체 수가 늘어나다 보니 쥐의 행동 양상이 변화해. 일단 쥐들의 공격성이 증가해. 그것도 계급이 낮은 쥐들 위주로. 밑바닥끼리 서로가 서로를 물어뜯는 거지. 수컷은 각자의 영역을 지키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그 영역에서 육아를 하는 암컷은 더욱 포악해져. 심지어는 새끼를 낳고 다른 곳에 버리거나 새끼를 공격하는 암컷도 생겨. 생존했지만 방치된 아이들은 유대를 배우지 못해. 암컷은 이제 새끼를 낳지 않고, 수컷은 경쟁이나 번식에는 전혀 관심이 없어. 자기 털 가꾸기에만 열중할 뿐. 아주 뽀얗고 하얀 털을 자랑해. 그렇게 개체 증가 속도가 점점 줄어. 실험 600일째 2200마리로 최대 개체 수를 기록했다가 1780일이 넘은 어느 날 쥐는 모두 죽어. 우리 이야기냐고? 아니, 그냥 쥐새끼 이야기야.


한국에, 특히 서울에 이렇게 많은 사람이 살았나 싶어. 지하철을 타보면 매해 사람이 늘어 있어. 출근길, 플랫폼에 서 있으면 풍선 마냥 부풀어 터질 것만 같은 지하철이 와. 열차 문이 열리면 난 조심스레 열차 바닥에 반 발을 걸쳐. 그리고 내 몸을 서서히 사람들 틈에 파묻어. 문이 닫히는 타이밍에 숨을 참고 내 몸을 한껏 뒤로 젖히면 문은 내 콧등을 간신히 스치고 지나가. 그런데 등이랑 팔에 막 딱딱한 물건이 닿기 시작해. 사람이 차지해도 모자란 공간을 스마트폰 네모 쪼가리에 내어 주며 사람들이 그것을 숭배하고 있어. 난 그들의 머리통을 확 쎄리고 싶은 강한 충동을 느껴. 그렇게 직장을 가. 언젠가 역과 직장 사이에 위치한 놀이터에 누가 고추를 말리려고 널어놓았더라고. 사람 다니고 애들 노는 데잖아. 확 차 버리고 싶었어. 그렇게 짜증 내며 일한 지도 5년 됐네. 5년 동안 직장이 세 번 바뀌었는데 출근길 풍경은 비슷해. 자취하긴 돈 아까워서 부모님 집에서 출퇴근해. 부모가 서울에 사는 것도 요즘엔 스펙이라더라. 그렇게 돈 아껴서 집 살 정도 모았냐 하면 절대 아니지. 5년 가까이 사귄 여자 친구가 있어. 사귄 지 2년 됐을 때 청혼했거든. 그런데 아직 진척은 없어. 여러 이유가 있지만 큰 요인 중 하나는 돈이 아닐까. 사실 난 결혼 제도에 반대하는 사람이야. 아이는 좋아하지만 이런 세상에 아이를 함부로 싸지르는 건 죄악이라 생각해. 치열하게 살면서 부귀영화를 누리고 싶지 않아. 자본주의에서는 인간이 존재하는 것 자체가 경쟁인데 경쟁을 할 수밖에 없다면 최소한으로 하고 싶어. 그냥 소소하게 살다가 조용히 죽고 싶어. 쥐새끼 이야기냐고? 아니, 그냥 내 이야기야.



W야! 네가 호주 여행을 같이 가자고 제안해준 덕에 난 대학교 1학년이 끝나갈 무렵 처음으로 외국 땅에 발을 디뎠어. 그 여행이 내 방랑벽의 시발이야. 한국이라는 파라다이스에 살던 아이가 전혀 다른 종류의 세상을 경험한 거지. 그 후로 틈만 나면 한국을 벗어날 생각만 하고 있어. 다른 나라에 갔을 때 느끼는 그 자유로움은 ‘팀탐’보다 달더라. 숨 막히는 파라다이스에서 벗어나는 방법을 하나 찾은 거지. 이민까지 생각했어. 장강명의 소설 제목처럼 '한국이 싫어서.' 그래서 그동안 많은 나라에 나를 옮겨 봤어. 그런데 결국 다시 한국이더라. 아마 아직 한국에 내 영역이 있기 때문이겠지. 지금 드는 생각은 어느 나라든 그저 다르게 설계된 파라다이스에 불과하다는 거야. 각 나라의 인간은 실험 쥐처럼 각기 다른 시스템에 내던져진 존재이고 자기 영역을 지키기 위해 고유의 행동 양식을 만들고 있어. 이미 한 파라다이스에 적응된 인간이 다른 파라다이스에 간다 할지라도 이미 길들여진 행동 양식을 완전히 버리는 일은 거의 불가능한 것 같아. 한마디로 사는 건 다 힘들다고.


기억할지 모르겠어. 우리의 호주행 비행기가 홍콩을 경유했었잖아. 홍콩 공항에서 멜버른행 비행기를 너와 같이 기다리고 있을 때였어. 다른 친구들은 공항 구경을 갔고. 내가 가이드북에 나온 워킹홀리데이 관련 글을 보다가 너에게 이렇게 말을 걸었어.

"호주에 워킹홀리데이 하러 가는 사람들이 엄청 많대. 외국에서 일하면서 돈 모아 가지고 그 돈으로 여행한대. 이런 것도 있구나. 괜찮다. 그런데 보통 무슨 일을 하지? 얼마나 벌까?"

너는 이렇게 대답했어.

"얼마나 벌겠어. 외노자지."

나는 씁쓸하게 대답했어.

"그렇겠지"

한 20분 정도 지났는데 맞은편 앞에 앉아있던 한국인 남자 두 명이 우리에게 말을 걸어왔어.

"한국인이세요?"

"네."

"여행 가시는 거예요?"

"네."

"저희는 워홀 가요."

우리는 멍한 표정으로 서로를 바라봤어. 혹시 우리가 대화하는 것을 들었을까 조마조마했어. 30살, 심리학과 전공이라고 했어. 지금 우리 나이야. 한국에서는 마땅한 직장을 구하기가 힘들어 호주로 일단 워킹홀리데이를 간다고 했어. 그 형은 의미심장하게 말했어.

"모든 걸 다 포기하고 가는 거예요."



그 형들 지금 어떻게 사는지 정말 궁금해. 어디에 있던 잘 살고 있으면 좋겠어. 자신만의 영역을 찾았으면 좋겠어. 그때로 돌아간다면 그들이 얼마나 답답한 심정인지 묻고 또 들어주고 싶어. 그냥 말없이 포옹 한 번 해줘도 좋을 것 같아. 낯선 곳에 갑자기 홀로 떨어져 시뻘건 눈으로 방황하는 쥐새끼 같아. 그들도, 나도, 우리 모두. 쥐와 인간을 동일시한 내 이야기가 염세적으로 들릴 수 있어. 하지만 염세와 실존은 한 끗 차이지. 어쩌면 인간 멸종이 다가올지 모르는 이 세상에서, 그래도 남은 시간 잘 살아야 하잖아. 파라다이스의 구조를 바꾸는 것도 중요하지만 영역이 부족한 사람들끼리 배척하지 않고 조금 더 서로를 껴안는 방법이 훨씬 더 생존에 유리할 수 있을 것 같아. 나는 어떻게 하면 나의 영역을 넓혀서 다른 사람들이 그 안에서 안전하게 쉴 수 있을지 고민하며 살고 있어. 유대가 필요해. 정말 안전한 공간과 공동체가 만들어져야 해. 우리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은 그걸 실현할 수 있는 가능성이 다분해. 열심히 하자. 그럼 조만간 봐~


19.12.1

여행의 추억을 빌미로 밑도 끝도 없이 자기 하고 싶은 말만 늘어놓는 너의 동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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