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로 살아도 괜찮은지 자꾸 의구심이 드는 Y에게

12.7.8 잘츠부르크 카피텔 광장 벤치에 누워

by 허용운

Y야! 넌 '인생을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라는 난제에 대해 같이 이야기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친구야. 이 세상은 너무나 빠르게 흘러가고 우리에게 많은 것을 강요해서 폭력적이지. 너도 나도 부쩍 삶의 방향성에 대한 고민이 많은 시기인 것 같구나. 우린 어느 정도 닮은 점이 있는 것 같아. 개인과 사회에 대한 고민이 많고 그러한 사유 속에 한없이 침잠할 때도 많지만, 어느 순간 나의 경계와 열정이 허용하는 범위 안에서 마음 가는 무언가를 항상 하고 있다는 점이 그래. 차이라고 한다면 나는 조금 더 개인적인 부분에 비중을 많이 두지만 너는 공동체 안에서 행동한다는 점. 너의 모든 걸 알 순 없지만, 그래 보여. 너의 그런 점이 부럽고.


Y야! 네가 교환학생으로 갔던 나라가 오스트리아였던가? 오스트리아는 내가 유럽에서 두 번째로 가봤던 나라야. 오스트리아 내에서 처음으로 들린 도시는 잘츠부르크라는 곳이었어. 잘츠부르크는 모차르트의 생가와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에서 배우들이 '도레미송'을 부른 미라벨 정원으로 유명한 도시지. 그 당시 여행 방식이 그렇듯 가이드북에 나온 명소를 찍고 오는 여행을 했어. '여길 왔으면 무조건 거긴 가야지'라고 하는, 누구나 다 한 번 가보는 그런 곳들 있잖아. 도시 곳곳에 모차르트 얼굴이 박혀있었고 정원은 그냥 예뻤어. 그런데 지금 내가 잘츠부르크를 돌이켜 볼 때 가장 먼저 생각나는 건 바로 의자야.


광장과 거리 곳곳에 특이하게 디자인된 벤치가 있었어. 어떤 벤치엔 붉은색 꽃이 그려져 있었고, 어떤 벤치엔 실제로 풀이 심어져 있었어. 나무 기둥이 꽂혀있고 그와 이어진 부분에 나무뿌리를 그려 넣은 벤치도 있었어. 행성과 우주 공간을 그려 넣은 것도 있었고, 만화책을 그려 넣은 것도 있었어. 인형이 얹혀 있는 것도 있었고, 가시가 박혀 있어 실제로 앉을 수 있나 하는 의문이 들게 하는 것도 있었어. 도시를 걷다가 틈틈이 앉아서 쉴 수 있었어. 벤치에 앉아있는 사람들과 가벼운 눈인사와 대화를 나눴어. 벤치에 한참 동안 누워서 지나가는 사람을 구경했어. 술집에서 우연히 만난 이상한 현지인과 같이 벤치에 앉아서 그가 쓰고 있는 유치한 소설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어. 노상 분수대 옆에 있는 벤치에 앉아서 발가벗고 물줄기 사이를 참방참방 뛰어다니는 아이들을 지켜봤어. 특이한 의자가 모여 도시 전체는 거대한 광장이 됐어.


Y야! 우린 이런 특이한 의자가 필요해. 그런 의자를 만나야 하고, 그것이 되었으면 좋겠어. 우린 이미 그것이기도 해. 우리는 특별한 것을 경험하고자 하고 의문과 화두를 찾아다니지. 그런 걸 제공하는 사람과 환경을 좋아하고 우리도 그렇게 되길 원해. 우린 사람들에게 질문을 던지고 매개체로써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어. 우리는 안전한 사람이 되고자 노력하고 누군가에게 휴식을 줄 수 있어. 항상 그 자리에 있을 필요도 없어. 어딘가에 놓여 있다가 역할을 다하면 자리를 비워줄 수도 있어야 해. 그래야 새로운 것이 또 채워지니까. 참과 비움이 수시로 일어나야 진짜 광장이지. 숨 막히는 이 세상에서 숨 쉴 수 있는 광장을 만드는 건 멋진 일이야. '이렇게 살아도 되는 걸까'라는 너의 한숨 섞인 질문이 '너는 옳아' 내지는 '잘하고 있으니 괜찮아'라는 위안과 지지를 바라는지, '이런 방향으로 가봐'라는 충고와 조언을 바라는지 모르겠지만, 넌 그냥 특별한 의자야.



21.8.27

더욱더 네 멋대로 살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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