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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용운 Oct 13. 2022

구조에서 상처받은 개인 Y에게

2018. 2. 11 칠레 아타카마 십자가 언덕에서

 

안녕 Y야! 너는 요즘 개인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한국 사회의 구조적 문제와 그 안에 대한 글을 써보려 한다고 했지. 너는 학교 교육과 입시 제도에 대한 문제를 언급했어. 입시를 비롯한 각종 경쟁 구조에서 반복되는 실패와 좌절의 경험이 현재의 자아 불만족감을 만들어낸 것 같다고 했. 더불어 가족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는 것에 대한 죄책감도 언급했어. 그래서 무언가를 시도하고 성과를 내도 그렇게 만족스럽지 않다고 했어. 그런 마음 때문에 어떤 일을 하는데 자꾸 주저하게 된다고 했지.


 너는 나에게 물었어. 여행도 남극 빼고 다 다녀왔고 어릴 때부터 꿈꾸던 일을 하고 있는 것 같은데 왜 이리 불만이 많냐고. 는 가족 구조와 가난이라는 집단 무의식에 조금 더 관심을 두는 편이야. 우리 부모님은 매일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일하고 들어와서 돈 문제로 싸웠어. 너는 가족의 기대를 많이 받았으니 무언가에 실패했을 땐 죄책감을 느꼈겠지만 성공했을 땐 칭찬의 강도 또한 높았겠지. 나의 성공은 바쁜 부모님에겐 잘 보이지 않았던 것 같아. 성적 고득점 같이 쉽게 보이는 것은 그나마 잠깐의 주목은 받았지. 나의 실수는 바쁜 부모님을 귀찮게 하는 일이었으니 수용받기 힘들었고. 부모님이나 나나 무언가를 열심히는 하는데 뚜렷한 목적이나 기준은 없었어. 그냥 막연하게 지금보다 '잘' 살기만을 바랄 뿐, 이만하면 괜찮다는 기준 따윈 없어. 난 항상 부족하고 채워지지 않아. 물론 나의 경우엔 그 불만족이 나를 행동하게 하는 원동력이기도 해.



 Y야! 나는 볼리비아 우유니에서 칠레 아타카마로 가야 했어. 건조하면서 광활한 암석 지형이 꼭 달의 표면을 연상시키는 달의 계곡 가기 위해서였어. 우유니에 도착하자마자 아타카마로 가는 버스 편을 알아봤는데 축제 기간이라 그런지 모든 표가 매진이었어. 현지 여행사에서 판매하는 1박 2일 혹은 2박 3일 투어를 신청해야 했어. 2박 3일 상품을 택하기엔 시간 여유가 없어서 1박 2일 상품을 신청하려고 했지. 눈에 보이는 한국인을 어렵사리 붙잡아 6명의 동행을 모았어. 투어 가격도 만족스러웠어. 그런데 투어 당일 여행사에서 갑자기 기상 악화 때문에 국경 넘기 힘들 거라며 투어를 취소했어. 어처구니가 없었지만 하는 수 없이 다른 여행사에 갔어. 비용은 더 들었고 미국인 4명과 동행해서 차 2대로 가야 한다고 했어. 한국인 6명은 그래도 시간 여유가 있었던 것 같은데 괜히 나 때문에 무리해서 가는 것 같아 마음이 안 좋았어.


 출발했어. 여행사 사장의 태도와 계획대로 되지 않는 상황 때문에 난 매우 짜증 난 상태였어. 한국인 팀의 구성원 수가 많아서 한 명씩 돌아가며 미국인 팀 차에 타야 했어. 차에 탈 수 있는 정원 수가 초과되면 벌금을 물어야 한다. 아무튼 그런 상황도 다소 불편했어. 건조한 산악 지형을 달리느라 차는 계속 덜컹거렸어. 목받침도 없고 내내 자리가 불편했어. 계속 달려서 허름한 숙소에 도착했어. 침대는 딱딱하고 밤 기온은 매우 찼어. 별을 보면서 온천할 수 있는 곳이 있었는데 시간이 너무 늦어서 다음 날 아침에 갈 수밖에 없었어. 볼리비아에서 칠레로 넘어가는 국경 심사에서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렸어. 결국 아타카마에 도착해서 달의 계곡에 갈 수 있는 방법을 수소문했는데 여행사마다 시간이 너무 늦어서 안 된다고 했어. 그렇게 나는 목표했던 걸 이루지 못했어. 바로 다음 날에 칠레 수도인 산티아고로 가야 한국으로 돌아갈 수 있었거든. 너무 여행 획을 무리하게 짠 걸까 계속 생각했어.



 이 이야기를 조금 다르게 재구성해볼게. 일단 이 투어에 참할 수 없었다면 내 이후 일정은 완전히 엉망이 되었을 거야. 그리고 유쾌한 친구들 6명이 있어서 얼마나 다행이었는지 몰라. 그들과 여행사 욕도 하고 서로를 알아가며 여행 내내 수다를 떨었지. 운전하면서 보이는 풍경이 굉장히 다채로웠어. 쉬는 시간마다 차 밖으로 나가서 사진 찍느라 정신이 없었. 미국인들과의 대화는 약간 원어민 영어 회화 학원을 연상시켰다고나 할까. 회화 연습한 거지. 숙소 돌침대에는 험악한 호랑이의 얼굴이 그려진 카펫이 펼쳐져 있었어. 그 광경에 당황해서 우리는 깔깔대며 웃었어. 온천은 못했지만 밖에 나가서 수많은 별을 봤어. 그래도 그다음 날 아침에 온천욕 빼놓지 않고 했어. 밤새 추위에 떨며 잤는데 따뜻한 물에 들어가니 긴장이 풀리면서 웃음이 났어. 아타카마에 도착했을 땐 안도감을 느꼈어. 달의 계곡에 갈 타이밍을 놓쳐서 망연자실한 나를 친구들이 위로해줬어. 그들과 같이 밥을 먹고 십자가 언덕에 올라 별을 봤지. 꽤나 충만한 밤이었어.



 Y야! 이 구간을 생각하면 너무 아쉽고 미련이 남아. 불만족스러운 거지. 뭐 하나 계획대로 된 것 없이 시간은 많이 지체됐고 감정은 상했고 결국 달의 계곡을 보지 못했어. 어떻게 보면 내 남미 여행의 오점이야. 그런데 지나고 보니 이야기는 만들기 나름이었어. 초점을 어디에 두냐에 따라 내용이 조금 달라져. 계획은 틀어졌지만 포기하지 않고 어떻게든 여정이 이어질 수 있도록 노력한 건 스스로 대견한 일이지. 마음 상하는 일을 당하고 열악한 환경을 마주했지만 좋은 친구들과 함께해서 외롭지 않았어. 달의 계곡은 아니었지만 색다른 자연을 눈에 담았어. 긍정적으로 보고 적당히 만족하자는 것과는 조금 달라. 다양한 관점에서 과정 속에 녹아 있는 노력과 감정 상태를 더 알아차려 보자는 의미지. 성과에 집중하면 성공과 실패가 나눠지지만 과정과 이야기에 집중하면 그런 이분법은 사라져. 평가 자체가 사라지고 나를 더 용할 수 있게 되지. 구조에서 유발되는 불만을 내재화하지 않게 돼.  


우리성과 중심의 문화 구조 속에서 자랐어. 우리 무언가에 실패했을 때 수용받는 경험을 하기가 쉽지 않았어. 과정에서 행한 노력이나 얻게 된 내적 경험은 평가에서 생략되기 마련이었어. 이런 대물림되는 구조를 한 번에 바꾸긴 쉽지 않아. 그래서 내가 생각한 구조적 문제에 대한 대안 중 하나는 개인의 삶에서 성과만이 아닌 과정 전체의 이야기를 다양한 관점으로 재구성해서 기록하는 거야. 그리고 그 기록이 쌓이다 보면 강한 자아로 이루어진 수용적인 공동체와 구조 문제에 대한 비판적인 담론이 만들어지겠지. 그건 조금 더 발전적인 구조를 만들어 낼 거야. 지금 네가 하는 자기 성찰과 글쓰기가 새로운 구조, 공동체, 연대를 만들어내는 시초가 될 거야.



2022.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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