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S! 지금 어디서 일하고 있는지 문득 궁금하구나. 칠레 산티아고로 가는 공항에서 만난 인연으로 우리는 산티아고에서의 하루를 같이 보냈지. 한국인이 운영한다는 초밥 가게에 갔어. 한국인이 가면 사장님께서 알아서 풀코스로 음식을 주신다던데 사장님을 보지 못해서 우리는 그냥 메뉴판에서 먹고 싶은 초밥 세트를 골랐지. 이야기를 이어나갔어. 너는 8년 동안 미국에서 유학을 하고 한국에서 잠시 일했다가 퇴사 후 남미 여행에 왔다고 했어. 미국은 취업 비자를 받기가 너무 어렵다고 했어. 미국에선 오래 살았지만 이방인 취급받는 것이 힘들었고 한국에선 조직 문화가 잘 적응되지 않아 힘들었다고 했어. 그렇게 음식을 먹으며 일과 여행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데 갑자기 사장님이 나타나셨어. 우리가 시킨 음식을 보시더니 안타까워하시면서 회와 매운탕과 수박을 추가로 주셨어. 우린 이미 배불렀지만 그 정이 감사해서 주신 음식을 다 먹고 나왔어.
S야! 나는 한국이 싫었어. 강대국 틈에 끼어 여기저기 짓밟힌 역사를 가진 나라인 것이 싫었어. 미세먼지와 황사가 불어오는 것이 진절머리 나게 싫었어. 여름과 겨울의 날씨가 극단적인 것도 싫었어. 네가 말한 조직 문화도 어떤 건지 알아. 한마디로 수직적이고 개인이 단체를 위해 희생해야 하는 문화겠지. 아득바득 남들과 경쟁하고 비교하는 관습도 싫었어. 천편일률적인 건물 모습이 싫었어. 정치인들도 다 한심해 보여. 복지 제도 수준은 한참 뒤처졌다고 생각했어. 난 어릴 때부터 김치를 싫어했는데 한국인이 김치를 먹어야지 왜 안 먹냐고 잔소리하는 부모님의 말도 싫었어.
한참 이민을 생각했어. 여행을 하면서 타지에 정착했거나 정착하려는 사람들을 자연스럽게 만나게 되었어. 중장년층은 경제적인 이유 때문에 비교적 잘 사는 나라로 간 경우가 많았어. 조금 더 젊은 나이대의 경우 너처럼 외국계 회사를 다니다 보니 자연스럽게 외국에 정착한 사람들도 있었고, 나처럼 한국의 문화나 환경이 싫거나 그로부터 상처받아서 온 사람들도 있었지. 봉사활동이나 선교, 여행 왔다가 그 나라가 정말 좋아서 혹은 그 나라에 어떤 사명감을 갖게 되어 정착한 사람도 있었어. 그 나라에서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게 되어 터전을 잡게 된 사람도 꽤 많았어. 물론 단순히 해외 사업을 위해 간 사람도 정말 많았지.
그런데 처음엔 그런 모습이 좋아 보였는데 나중엔 점점 감흥이 사라지는 거야. 어딜 가든 정착을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드니 답답했어. 결국 익숙하지 않은 문화와 제도에 또다시 나를 맞춰야 하겠지. 이민은 비워내는 여행과는 달랐어. 한국에서 얻지 못한 것을 타지에서 얻으려고 고군분투해야 해. 만약 이미 한국에서 무언가를 많이 가지고 있다면 그걸 버리고 새로운 곳에 가서 다시 시작하긴 너무 어렵지. 안전과 공동체에 대한 욕구부터 다시 채워나가야 하니까. 또 네가 말한 대로 다른 나라의 영주권이나 시민권을 얻더라도 한국에서 나고 자랐다는 정체성은 내적으로나 외적으로나 지속될 거야.
S야! 내가 한국이 아닌 다른 나라에서 태어났더라면 과연 행복했을까. 장담 못하지. 나의 의지와는 관계없이 어딘가에 떨어졌다는, 기투되었다는 사실이 이렇게 무서워.출신에 대한 정체성은 강력해. 감염병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진득하게 한국에 살아보니, 한국이 좋다고 할 순 없지만 제법 편하다는 생각은 들었어. 이 정도면 경제 수준이 높은 나라이고 타 국가에서 여행 허가도 잘 내주는 나라지. 일처리가 빠르고 생활하기 편리해. 사람들은 여전히 선을 잘 넘지만 정도 있어. 다양한 사회 문제에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도 더 많아진 것 같아. 다른 나라 사람들이 점점 한국 콘텐츠에 관심을 갖게 된 것도 신기해. 이렇게 기득권이 되어가나 봐. 제도를 비판하면서도 그 제도권 안에서 착실히 적응한 거지. 적응은 힘과 이기심의 논리로 돌아가는 이 세상에서 내 안전을 챙기기 위해 어디서든 해야 하는 노력일 거야. 이제는 또 다른 던져진 누군가를 위해 한 나라의 구성원으로서 어떤 역할을 해야 할지 고민해. 이 격변의 시대에 앞으로 내가 어디에 있을지 알 수 없지만, 같은 뿌리를 가진 사람에게 매운탕 한 그릇 기꺼이 내줄 수 있는 여유를 가진 사람이었으면 좋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