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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용운 Jul 13. 2022

남을 돌보느라 나를 돌보기 힘든 J형에게

2017.1.7  베트남 호이안 리칭 아웃 티하우스에서


 안녕 J형! 일터에서 누군가와 이렇게 친해지기 쉽지 않은데 우연한 기회로 형의 부서와 협업을 하게 되면서 형과 친해지게 되었지. 그 당시 형은 개인적인 일과 상처로도 힘들었고 직장동료들 간의 불화로도 괴로워했어. 그런데 정신건강사회복지사라는 직업, 직무 특성상 형은 자신의 고통을 억누르고 거의 하루 종일 내담자들의 고통까지 돌봐야 했어. 스트레스가 극심해진 형은 언젠가 내 진료실로 와서는 가슴이 너무 뛰고 얼굴이 달아올라 진정이 안된다고 했지. 수시로 나의 몸과 마음을 돌보기 힘들다는 건 대부분의 서비스직 종사자, 감정노동자들의 문제이기도 한 것 같아.



 J형! 우린 마침 도피성 여행이 필요했기에 같이 짧게 가서 쉴 수 있는 베트남 호이안, 다낭으로 떠났어. 감정 소모에 지친 우리에게 딱 좋은 여행지였어. 일단 우리가 마주친 베트남 사람들은 정말 친절했고 소박하면서도 강단 있는 분위기를 풍겼어. 서비스직 종사자는 다른 이에게 기분 좋은 서비스를 받을 때 에너지를 얻는 것 같아. 싸면서도 맛있고 특색 있는 베트남 음식을 실컷 먹었어. 유명한 베트남 커피도 하루에 몇 잔씩 마셨지. 등불이 가득 비추는 거리를 걸었고 강에서 연등을 띄우면서 소원도 빌었어. 날씨는 우기여서 수영장에서 물놀이를 하거나 해변에서 놀기는 조금 힘들었지만 햇빛이 세지 않아서 돌아다니기에는 좋았던 것 같아.



 사실 여행의  매 순간 좋았던 건 아니었어. 덥고 습한 공기 속에서 도로를 가득 매운 오토바이와 그것들이 내뿜는 매연, 소음이 싫었어. 가게 주인들이 호객하는 소리와 수많은 관광객들이 시끄럽게 떠드는 소리가 싫었어. 그런데 그런 소음 한 복판에서 한 찻집을 발견한 거야. 청각장애인들이 운영하는 찻집이었어. 그래서 말이 필요 없었지. 가게는 조용했어. 의사표현은 글이나 손짓, 표정, 몇 개의 글자 팻말로 가능했어. 직원들은 말하지 않아도 몸으로 환영의 의사를 표현했어. 전혀 다른 세상에 와있는 느낌이었어. 내 호흡, 차의 맛, 마주치는 사람들의 표정, 내부 공기의 냄새에 오롯이 집중하게 되었어. 1분 1초가 소중해지는 경험이었어.



 J형! 지금도 형은 여전히 형의 아픔을 묻어둔 채 남의 욕구에 맞춰주는 삶을 살고 있겠지. 물론 가치있는 일이야. 그 일은 우리 사회를 지탱해주고 있으니까. 그렇기 때문에 우린 타인과 사회가 내는 소음에 무너지지 말아야 해. 시끄러운 삶 중간중간 조용한 곳으로 잠깐 자리를 옮겨 나 자신을 수시로 돌아볼 수 있으면 좋겠어. 내 호흡, 내 능력, 내 사람, 내 시간이 얼마나 가치로운지 알아차리기 위해서.


2022.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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