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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용운 Jun 25. 2022

바쁘고 화려한 도시를 좋아하는 K에게

2016.1.14 싱가포르 클락키에서

K야! 바다 근처에서 자랐던 너는 대도시가 좋다고 했고 대도시에서 자랐던 나는 항상 도시를 벗어나 자연으로 가고 싶어 했지. 서울에서 일상을 보고 있으면 답답했어. 너는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일하고 어쩌다 쉬는 날에는 밀린 집안일을 하다가 침대에 늘어졌지. 어릴 적 내 부모님의 모습과 다를 바 없었어. 너를 볼수록 나의 내면 아이는 깨어났고 그 아이는 외로웠기에 너에게 어리광과 투정을 부렸. 물론 나의 일상도 너의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아. 쉴 틈 없이 움직여야 이 도시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걸까. 나는 도시의 소외가 싫어.

 


 K야! 내가 처음 일을 시작했을 당시 나에게 3일의 휴가가 주어졌어. 짧은 시간 안에 갈 수 있는 여행지라고 생각해서 고른 곳이 싱가포르였어. 그런데 도시를 돌아다닌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무언가 답답한 기분이 들기 시작했어. 날씨가 습하기도 했지만 도시의 분위기가 서울과 비슷했기 때문인 것 같아. 편리하고 깔끔하지만 어디나 붐비고 복잡했지. 밤이 되면 현란한 조명이 온 도시를 밝혔어. 작은 도시국가이다 보니 인공적인 느낌이 강했어. 난 내 일상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기 위해 여행하는 편인데 낯선 곳에서 보이는 풍경이 내 일상의 풍경과 유사했으니 심드렁했던 거야. 그렇게 싱가포르는 내 기억에서 감흥 떨어지는 그저 그런 나라로 자리 잡았어.



 그런데 시간이 지나 사진을 다시 보니 굉장히 다채로운 곳이었다는 생각이 들어. 수영장을 낀 멋진 호텔, 다양한 인종의 문화를 보존한 마을, 거대한 도시 정원과 식물원, 대규모 놀이공원, 고층 건물의 환한 조명으로 번쩍거리는 강변, 맛있는 음식과 디저트까지. 정말 많은 것을 보고 먹고 즐겼더라고.

 


 K야! 아마 서울도 그렇겠지. 너무 일상 속에 있으면 그것의 아름다움을 느끼지 못해. 나는 그 누구보다 도시의 혜택을 누리며 살았고 도시에서 빠져나갈 용기도 없으면서 소모적인 불평만 해. 도시에 얽힐수록 나를 잃어버리게 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는데 돌아보니 도시 없이는 나를 설명할 수 없더라고. 도시와의 관계를 개선하려면 여행하듯이 도시를 새롭게 봐야 해. 외국인의 시선으로 봐야 하고 먼 훗날로 나를 데려가서 돌아봐야 해. 부단히 노력해야 관계를 지속할 수 있어. 도시는 너무 얽혀버려서 벗어나고 싶지만 막상 없어지면 힘들어지는 존재, 곧 부모이자 너이자 나같아.


2022.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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