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J형! 일터에서 누군가와 이렇게 친해지기 쉽지 않은데 우연한 기회로 형의 부서와 협업을 하게 되면서 형과 친해지게 되었지. 그 당시 형은 개인적인 일과 상처로도 힘들었고 직장동료들 간의 불화로도 괴로워했어. 그런데 정신건강사회복지사라는 직업, 직무 특성상 형은 자신의 고통을 억누르고 거의 하루 종일 내담자들의 고통까지 돌봐야 했어. 스트레스가 극심해진 형은 언젠가 내 진료실로 와서는 가슴이 너무 뛰고 얼굴이 달아올라 진정이 안된다고 했지. 수시로 나의 몸과 마음을 돌보기 힘들다는 건 대부분의 서비스직 종사자, 감정노동자들의 문제이기도 한 것 같아.
J형! 우린 마침 도피성 여행이 필요했기에 같이 짧게 가서 쉴 수 있는 베트남 호이안, 다낭으로 떠났어. 감정 소모에 지친 우리에게 딱 좋은 여행지였어. 일단 우리가 마주친 베트남 사람들은 정말 친절했고 소박하면서도 강단 있는 분위기를 풍겼어. 서비스직 종사자는 다른 이에게 기분 좋은 서비스를 받을 때 에너지를 얻는 것 같아. 싸면서도 맛있고 특색 있는 베트남 음식을 실컷 먹었어. 유명한 베트남 커피도 하루에 몇 잔씩 마셨지. 등불이 가득 비추는 거리를 걸었고 강에서 연등을 띄우면서 소원도 빌었어. 날씨는 우기여서 수영장에서 물놀이를 하거나 해변에서 놀기는 조금 힘들었지만 햇빛이 세지 않아서 돌아다니기에는 좋았던 것 같아.
사실 여행의 매 순간 좋았던 건 아니었어. 덥고 습한 공기 속에서 도로를 가득 매운 오토바이와 그것들이 내뿜는 매연, 소음이 싫었어. 가게 주인들이 호객하는 소리와 수많은 관광객들이 시끄럽게 떠드는 소리가 싫었어. 그런데 그런 소음 한 복판에서 한 찻집을 발견한 거야. 청각장애인들이 운영하는 찻집이었어. 그래서 말이 필요 없었지. 가게는 조용했어. 의사표현은 글이나 손짓, 표정, 몇 개의 글자 팻말로 가능했어. 직원들은 말하지 않아도 몸으로 환영의 의사를 표현했어. 전혀 다른 세상에 와있는 느낌이었어. 내 호흡, 차의 맛, 마주치는 사람들의 표정, 내부 공기의 냄새에 오롯이 집중하게 되었어. 1분 1초가 소중해지는 경험이었어.
J형! 지금도 형은 여전히 형의 아픔을 묻어둔 채 남의 욕구에 맞춰주는 삶을 살고 있겠지. 물론 가치있는 일이야. 그 일은 우리 사회를 지탱해주고 있으니까. 그렇기 때문에 우린 타인과 사회가 내는 소음에 무너지지 말아야 해. 시끄러운 삶 중간중간 조용한 곳으로 잠깐 자리를 옮겨 나 자신을 수시로 돌아볼 수 있으면 좋겠어. 내 호흡, 내 능력, 내 사람, 내 시간이 얼마나 가치로운지 알아차리기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