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허용운 Jul 23. 2022

불안의 춤을 추는 D님에게

2017.4.30 스페인 그라나다 라 알보레아 극장에서

 안녕하세요 D님! 오늘 마음은 어떠신가요? 가슴이 두근거리거나 호흡이 힘들진 않으신가요? 직장에 잘 다니고 계신가요? 어떤 집단에 녹아드는 건 참 어려운 일이에요. 내가 속한 집단의 성격이 나의 그것과 맞지 않을 수 있죠. 집단이 내 욕구를 무시하거나 나에게 불합리한 행동을 강요할 수도 있어요. 집단 구성원들이 내가 잘못하지도 않았는데 나를 싫어하고 괴롭히는 경우도 있죠. D님은 어린 시절 학교에 다닐 때부터 직장 다니는 지금까지 집단 적응 힘들어했고, 그로 인해 소외감, 불안감, 우울감, 호흡 곤란, 가슴 두근거림이 발생해서 저를 찾아오셨어요.



 D님! D님과 이야기하다 보니 제가 예전에 갔었던 스페인 남부의 그라나다가 떠올랐어요. 그라나다는 711년부터 1492년까지 이슬람 세력의 통치 지역이었다가 이후 가톨릭 세력에게 넘어갔다고 해요. 이슬람 유적으로 알람브라 궁전이 유명하죠. 가톨릭 세력은 이슬람교도들을 박해했고 아랍인들은 나중에 알바이신 지구라는 곳에 모여 살게 돼요. 한편 여기에서 더 높은 산 쪽으로 가면 사크로몬테 지구가 나와요. 여긴 인도 지역에서 유럽 쪽으로 유랑했던 집시들이 동굴 속에 터를 잡고 살았던 곳이에요. 이 가난한 소수 유랑 민족은 여러 민족의 온갖 핍박을 다 받았죠. 스페인 남부 지역에서 많이 볼 수 있는 플라멩코는 이런 집시의 감정을 담은 예술인데 그들이 거쳐간 지역의 문화도 많이 합되었다고 해요.


 

 사크로몬테 지구 전망대를 구경하고 내려와서 플라멩코 공연을 봤어요. 처음엔 클래식 기타 연주와 가수의 노래로 시작되었어요. 가수가 손뼉을 치며 박자를 만들어냈고 남녀 두 댄서는 춤을 추기 시작했어요. 정착을 갈망하는 집시의 춤이라서 그런지 발을 땅에 강하게 구르는 동작이 많았어요. 여성 댄서의 춤은 고혹적이었고 남성 댄서의 춤은 날렵했어요. 댄서는 말하지 않아도 표정과 몸짓으로 모든 감정을 표현해냈어요. 기타 연주자, 가수, 댄서들은 각자의 언어로 조화롭게 이야기를 주고받았어요. 기타 소리와 노래와 춤사위와 발 구르는 소리가 함께 맞물려 절정을 향해갈 땐 그 에너지에 압도되어 무아지경에 빠졌어요.



 D님! 당신은 플라멩코의 댄서 같아요. D님께서 그동안 겪었던 경험은 몸과 얼굴에 녹아 있어요. 그리고 그 감정을 본인만의 방식으로 표현해내요. 굳이 말하지 않을 때도 그 마음을 느낄 수 있어요. 저는 옆에서 같이 손뼉을 치며 박자를 맞추거나 춤을 춰요. 기타 연주를 하기도 하죠. 우리는 같이 표현하며 마음을 나누고, 어느 순간 깨달음을 얻으면서 감정의 정화를 이뤄내요. 그 과정에서 쾌감을 느끼죠. 그깟 적응이 무슨 대수인가요? 당신은 남들이 상상 못 할 에너지와 이야기를 가지고 있는 예술 작품이에요. 살아남기 위한 당신의 노력과 표현은 곧 문화가 될 겁니다.


2022.7.3

당신의 존재 자체를 응원하며

이전 05화 돈만 있으면 한국이 제일 살기 좋다고 말하는 H에게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