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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용운 Jul 02. 2022

돈만 있으면 한국이 제일 살기 좋다고 말하는 H에게

2016.8.12 맨해튼 애플스토어 앞에서


 H야! 너도 세계 곳곳을 여행했던 터라 너와 여행 이야기를 한 번 시작하면 그칠 줄 모르겠어. 그런데 외국에서 지내며 고생했던 이야기를 하고 나서 네가 자주 결론짓는 말이 있어. 돈만 있으면 한국이 제일 살기 좋다는 말. 물론 그렇지. 우리 민족은 고유의 언어와 문화를 가지고 있고 우리나라는 각종 기술과 산업이 초고속으로 발전한 자본주의 국가니까. 그런데 난 그런 말을 들으면 마음이 조금 불편해.


 

 H야! 내가 지금껏 여행한 도시 중 가장 많은 돈을 썼던 곳은 뉴욕이야. 조금 늦게 여행 일정을 잡았는데 마침 성수기에 가는 직항 항공권을 끊어서 비행기 가격부터 비쌌지. 숙소를 찾아봤는데 최소 10만 원은 넘어야 침대만 겨우 들어있는 허름한 호텔 방 하나 예약할 수 있더라고. 호스텔도 몇 군데 없는 데다 그마저도 다른 나라 호스텔에 비해 요금이 비쌌어. 호스텔과 가성비 좋은 호텔을 섞어서 예약했어. 일정이 내 맘대로 되지 않아서 같이 간 친구와 많이 싸웠지만 그래도 가서 많은 걸 했어. 영화에 나왔던 브런치 가게나 유명한 스테이크 하우스, 미슐랭 식당에 갔지. 식당에서 먹으면 무조건 음식값의 18~20%는 팁으로 줘야 하더라. 유람선을 타고 맨해튼 고층 건물이 이루는 스카이라인을 구경했어. 쇼핑몰에서 옷도 많이 샀어. 밤마다 전망대에 올라가서 화려한 도시 경치을 봤어. 뮤지컬을 좋아하는 터라 추첨 티켓이나 당일 아침 싸게 파는 표를 구해서 뮤지컬도 많이 봤어. '라이온 킹' 같은 전석 매진 작품은 그런 행사를 하지도 않아서 한국에서 미리 제일 싼 표를 예약해서 갔는데 그 당시 가격이 한 20만 원 했던 것 같아. 갔다 와서 한동안 재정 긴축을 해야 했어. 며칠 여행하는 것도 이렇게 많은 비용이 나가는데 여기 사는 사람들은 어떻게 이 도시의 비싼 비용을 감당하며 사나 싶었어.



 예민하고 화려한 이 도시를 구경하다가 갑자기 숙연해지는 순간이 있었어. 노숙인을 봤을 때. 너무 많아서 이들이 구걸을 직업으로 여기는 건가 하는 생각까지 했어. 뉴욕 노숙인의 꿈은 뉴욕에서 돈을 모아 사시사철 따뜻한 하와이에 가는 거라고 누군가 나에게 웃지 못할 농담을 했던 기억도 나. 맨해튼 북부로 조금만 올라가면 임신한 여성 노숙인들이 넘쳐났어. 어떤 휠체어 탄 노숙인은 바지에 대변을 지려서 바지 벗은 채로 행인들 속에서 고개 숙여 울고 있었어. 뉴욕에서의 마지막 날, 애플스토어를 지나는데 그 근처 바닥에 노숙한 지 얼마 안 되어 보이는 한 젊은 남자가 사과를 먹고 있었어. 갑자기 비가 왔는데 그 사람이 하늘을 보며 울더라. big apple city의 apple store 근처 노숙인의 apple. 난 이걸 '인간을 비참하게 하는 3대 사과'라고 칭하고 싶네.   



 H야! 경쟁을 기반으로 움직이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빈부격차는 어쩔 수 없는 현상이지. 개인의 탓으로도 사회 구조의 탓으로 함부로  돌릴 수 없는 문제야. 누구나 경쟁에서 승리할 수도 있지만 누구나 패배할 수도 있어. 오히려 돈이 있어도 도태될까 항상 불안하지. 한국뿐 아니라 자본주의 나라에선 어디든 돈이 많으면 편하게 살 수 있어. 그런데 돈이 많아야 살기 좋은 나라, 조금 아니지 않아? 돈이 조금 없어도 괜찮은, 존엄성이 훼손되지 않는 나라 진짜 살기 좋은 나라 아닌가?



2022.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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