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후 더 빛나는 책] 파란 (波瀾) (정민 지음)
정약용(1762년~1836년)은 태평성대이자 천주교가 이 땅에 처음 들어오던 정조 재임기간에 젊은 날을 보내었다. 200년이 지나 왕도 장군도 아니었던, 실학자이자 과학자였던 정약용을 왜 위인의 반열에 올려 놓았을까라는 질문에서, 몇 년 전 선물로 받았으나 읽지 않고 꽂아 둔 정약용에 관한 책 두 권 ‘파란’을 집어 들었다. 정약용의 젊은 시절 어떤 고민을 하였고 어떻게 살았는 지에 대하여 지난 이틀이 빠르게 지나간다.
두 개의 하늘, 정조와 하나님
정약용(호는 다산)의 평생을 살펴보면 참으로 애잔하다. 젊은 다산에게는 두 개의 하늘이 있었다. 정조와 하나님. 어느 하나를 위해 다른 하나를 버릴 수 없었던 젊은 다산의 고뇌와 번민이 있었다. 인간으로서 어떻게 무너졌으며 또한 다시금 일어날 수 있는 동인은 무엇이었을까?
천주교가 조선에 들어올 무렵, 조선 천주교회의 창립과 확산, 그리고 참혹한 박해(신해박해, 신유박해)의 과정에서 다산은 늘 한복판에 있었다. 다산은 천주교를 처음 접하였을 때, 은하수를 보는 것과 같이 허무하다고 하였으나, 점차 깊이 빠져들어 그 느낌이 황홀함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천주교를 조선에 확산을 한 인물이 바로 정약용일 수도 있겠구나 라는 것을 상상해본다. 그러나, 대과에 급제하고 정조와 일을 할 때 그는 천주교를 몇 번씩 부인하였으며, 1801년에는 천주교를 명백하게 배교했음을 증명하여 백천간두에서 구사일생으로 살아나서 강진으로 유배를 가게 된다.
다산 생애에서 정조는 천주교 만큼이나 크고 높은 하늘이다. 다산은 정조와 18년을 함께 보내었다(1783년~1800년). 정조와 정약용은 한가한 봄 날 토란을 같이 먹으며 잡담을 나눌 정도로 마음을 턴 친구 사이였다. 그리고 정조는 당시 남인이었던 정약용에 대하여, 상대 당파였던 노론이 정약용을 고발하는 상소를 몇 번씩 올렸으나, 이를 무마시켰다. 다산은 정조의 신도시 건설 요청에 따라 화성 건축을 위한 설계를 자세히 하였고 건축에 필요한 거중기, 유형거 등 각종 기계를 설계하였고 한강을 건너기 위한 배다리를 설계했다. 1800년 6월 정조가 “곧 부를 테니 다시 만나자”라고 전달받았으나 곧 정조가 죽었고, 다산에게는 다른 한 세상의 문이 꽝하고 닫히는 것과 같았다.
빠른 메모와 자신만의 색깔
다산은 모든 분야에 대하여 자신만의 색깔을 입혀 당시 500권에 이르는 책을 썼다, 다산은 성호 이익의 글을 읽고서 어떻게 공부하는 지를 배웠고 특히 질문의 방향과 태도를 깨우쳤다. 성호 이익은 그 때 그 때 떠오른 생각을 빠르게 적어 메모하는 방법을 사용하였고, 이는 질서(疾書)라는 방법이다. 성호 이익은 질문의 경로를 바꿔 오로지 자기 생각에서 나온 힘 있는 목소리를 내고 끊임없이 의문을 제기하고 그것을 메모한 뒤 자신의 견해를 펼쳤던 사람이다. 이러한 빠른 메모와 나만의 색깔이라는 가르침에 따라, 다산은 작업마다 핵심 가치를 분명히 하였고, 그의 손을 한 번 거치고 나면 이전 것과 차별적인 콘텐츠로 재탄생하여 반짝반짝 빛나게 하였다. 다산은 모든 분야에 대하여 글을 썼고 이렇게 모은 책이 500권(요즘 70권 분량)에 이르게 되었다. 메모는 다산에게 있어서 학술의 출발점이자 거의 모든 것이었다.
모든 분야에 대하여 자신만의 생각을 담았기에 목민심서, 경세유표, 흠흠신서, 나아가 조선복음전래사를 작성하였고, 후대에 그의 글은 당시의 정치, 사회, 과학을 알려주는 지표가 되고 있다. 또한 다산은 글씨를 마음의 깃발로 여겼고, 정성스러운 마음이 밖으로 드러남이 글씨처럼 분명한 것은 없다고 하였다. 그는 책을 읽을 때, 여백과 자투리 부분에 정성스럽게 메모를 하였다.
정조의 질문법이 재미있다. 중용 한 권에 대하여 “이(理)와 기(氣)중 무엇이 맞느냐”와 같이 70여개의 질문을 내렸고, 또한 1791년에는 시경에 대하여는 800개의 질문을 하였는 데, 다산은 질문과 답변이 수미가 일관되도록 이를 답변하여 책으로 정리하였다. 시경에 대한 답변은 넉달이 걸렸으며 질문을 압도하는 꼼꼼한 논증과 해박한 논거 제시를 하였다. 그 책이 ‘시경강의’이다.
시대를 관통하는 변화의 소용돌이
정약용은 정조와 천주교의 두 개의 하늘을 짊어지고서 그 시대를 온 몸으로 받아들여 치열하게 진실을 살아 간 영혼이다. 정약용이 온몸으로 부딪혔던, 변화의 소용돌이에 해당하는 지금의 사회적 변화가 무엇인지 알아보고 온 몸으로 부딪쳐 보는 것은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