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후 더 빛나는 책] 미국에 대해 알아야 할 모든 것, 미국사
국가의 사명은 불평등 해소와 지속적 성장이다.
너무 멀지 않고 또한 너무 가깝지 않은 지난 600년간의 근대사(1400년~현재), 케네스 데이비스의 미국사는 무엇보다도 재밌다. 1492년 10월12일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에서, 1776년 7월4일 독립선언, 1783년 파리 조약 서명을 통한 미국 독립, 1861년부터 1865년까지 4년간의 남북 전쟁, 20세기 초의 프랭클린 D. 루스벨트 대통령의 미국 재건, 그리고, 인터넷과 우주 시대를 주도하는 21세기 초까지의 한 국가의 탄생 배경에서부터 성장까지, 그 탐험과 불평등과의 투쟁의 역사를 스릴러 소설책을 읽어 가는 양 서사시가 흥미진진하게 써져 있다.
사무엘 아담스와 티파티 사건
미국 보스턴에 여행 갔을 때, 친구는 버드와이져 대신 늘 사무엘 아담스를 주문하였다. 그리고 보스턴 항구의 티파티 사건의 현장에 서서 도대체 배에 실려 있던 홍차 박스를 집어던진 게 왜 유명할까라는 의문을 하였다.
그 당시 독립 강경파였던 사무엘 아담스 (1722~1803)는 영국과의 우호관계 유지가 나쁘지 않다고 보수적으로 말하던 식민지인들에게 독립을 왜 하여야 하는지 이슈를 찾고 있었다. 마침 1773년 영국 의회가 영국 동인도회사에 미국에서 수입하는 차 사업의 독점권을 넘겨줌으로써, 그 전까지는 싼 가격으로 네덜란드에서 홍차를 수입하여 팔던 보스턴 상인과 밀수업자들은 파산할 정도로 금전적인 피해를 보고 있었다. 그리고 영국과 다르게 홍차에 추가적인 특별소비세를 부과하고 있었다.
마침 1773년 12월 보스턴 항구에 입항한 동인도회사의 배 3척에 실려 있던 중국산 홍차들을 바다로 집어 던지는 것을 사무엘 아담스는 앞장섰다. 보스턴 티파티 사건은 보스턴의 식민지인들을 움직이고, 영국으로부터 독립을 위한 혁명을 시작하게 되는 모든 식민지 대표가 참여한 제1차 대륙회의를 이끌어 내는 역할을 한 것이다.
신대륙 발견과 우주 시대
1492년 10월12일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한 후, 미국에 제대로 된 마을 (버지니아의 제임스 타운)이 생기기까지는 100여 년이 지난 1607년이었다. 그리고, 1945년 2차 세계대전과 태평양 전쟁의 승리 이후 미국은 지금까지 세계를 지배하고 있다. 1957년 소련의 스푸트니크가 개막한 우주 시대도 앞으로 수 백 년을 내다보고 가는 먼 탐험의 길이 될 것이다. 21세기 이후, 미국, 중국, 유럽 간의 우주기술과 화성에 가는 경쟁이 벌어지고 있다.
한반도의 운명을 흔든 두 명의 루스벨트
강대국은 힘이 없는 나라의 운명을 협상의 도구로 사용한다. 두 명의 루스벨트 대통령에 의해, 한반도는 혼란에 휩싸이고 말았다. 러일전쟁을 조기에 종식하기 위해, 시어도어 루스벨트 주도로 서둘러 진행된 1905년 미국 포츠머스에서의 강화조약은 일본이 조선을 점령하는 근거가 되었고, 프랭클린 D. 루스벨트, 윈스턴 처어칠, 그리고 이오시프 스탈린이 2차 세계 대전과 태평양 전쟁의 종전 방안을 논의한 1945년 2월의 얄타 회담을 통해, 소련이 태평양 전쟁에 참여하면서 한반도가 남북으로 분단되는 실마리를 제공하였다.
역사는 탐험과 차별 극복이다.
역사란 차별에 대한 투쟁으로 이루어졌다. 영국으로부터의 독립, 인종 차별, 여성 차별, 그리고, 소수와 약자 계층의 차별로부터의 극복이었다. 국가는 소수와 약자에 대한 고립 정책을 취하기보다, 문제에 대한 인식과 시스템의 개선을 통해 차별을 극복하고 포용하는 정책을 통해 “모든 인간은 같은 권리가 있다”는 것을 다시금 되새겨야 한다.
지금도 인류는 탐험과 정복의 역사(뇌, 유전자, 불치병 극복, 극지, 우주, 생각 머신, 장수)를 계속하고 있으며, 특정 계층의 점유물 (부의 편중, 상급 교육, 부도덕한 소득, 백신과 치료약의 편중)과의 싸움은 계속된다.
무엇을 발견하고 극복하는 여정인가?
우리는 각자의 자리에서 무언가를 새롭게 발견하고 다가가는 탐험을 하고 있으며, 무언가의 차별을 이겨내려고 한다. 중간에 타협하거나 멈추지 말고 끝까지 밀어붙여 그것을 발견하고, 그것을 극복하여야 한다. 다만, 발견과 극복 어느 것도 짧은 시간에 이뤄지지 않는다는 것을 염두하여야 한다.
역사하면 첫인상은 구태의연하다, 지겹다이다. 그러나, 재미있으면 빠져든다. 역사를 책으로 읽기보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쉰들러 리스트’, ‘JFK’, ‘아버지의 이름으로’, 그리고 ‘1987’ 같은 영화와 드라마에서 열광한다. 케네스 데이비스의 미국사를 읽은 후, 동시대의 한국사에 대한 책을 일부러 찾아보았고, 조선과 근대의 책을 다시 집어 든다.
역사서는 사실 기반으로 스토리텔링 방식으로 작성해야 한다. 그래야 더 많은 사람들이 인류의 서사시를 알고, 현재와 미래의 탐험과 차별 극복의 현장에 설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역사를 통해 “다른 사람을 생각하기”의 중요성을 배운다. 전쟁의 광기와 차별의 잔혹한 역사는 다른 사람을 생각하지 않고 “맡은 임무와 업무만 했다.”라고 합리화를 하는 ‘악의 평범성’에 갇혀 있는 사람들에게 경고를 한다.
우리는 "지금, 여기서"라는 역사를 쓰고 있다. 우리가 하는 일은 무엇을 발견하고 극복하는 여정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