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마을 여행] 영국 러니미드 (Runnymede)
1215년 마그나 카르타
영국 런던 서쪽의 히드로 국제공항에서 불과 10km 남쪽으로 근대 민주주의의 탄생지로 알려진 러니미드(Runnymede) 라는 곳이 있다. 공항에서 윈저성으로 가는 중간에 템즈강 강가에 위치한 목초지로, 누가 따로 알려주지 않으면 지나칠 이곳이 지금부터 800여 년 전 1215년 6월 15일에 존 왕과 25명의 영주들이 마그나 카르타 대헌장에 서명한 곳이다.
영국 존 왕은 프랑스 필립 2세와의 영토전쟁을 통해 1204년 이 전에는 존 왕의 영지였던 프랑스 노르망디 지역을 빼앗겼다. 존 왕의 고조 할아버지는 프랑스 공작으로 영국을 정복한 윌리엄 1세이다. 존 왕은 이후 10년 간 빼앗긴 프랑스 북서부 땅을 찾기 위해 전쟁을 계속하였고, 이 과정에서 영주들에게 군납세 (병역 의무 대신 내는 세금)와 같이 지나치게 높은 세금을 거두었으나, 결국 1214년 전쟁에서 패배하고 돌아왔다.
마그나 카르타는 존 왕이 병역과 세금을 지나치게 부과하는 것에 대항하여 만들어진 문서로, 이후 왕에게 납부하는 병역과 과세는 25인의 영주로 구성된 위원회의 동의를 필요로 한다는 것과 자유민에 대하여 재판 또는 국법에 의하지 않은 한 마음대로 체포, 감금과 같이 자유를 침해할 수 없다는 내용을 포함한 하나의 긴 문서이다. 1759년에 63개의 조항으로 재정리되었다.
마그나 카르타는 왕의 절대권력을 견제하게 되는 시초가 되었고, 영국에서는 1258년 의회가 처음으로 만들어지고 특히 자유민의 권리를 보장한 조항은 현재까지도 유효하여 자유의 상징이 되고 있다. 거창하진 않지만, 여기서부터 민주주의 시작을 알리는 근거가 되었다. 1642년 영국 청교도혁명, 1776년 미국 독립, 1789년 프랑스 시민혁명은 지나친 세금 부과에 대한 저항으로 시작되었다.
한반도의 민주주의 시작
한반도의 민주주의가 본격화된 것은 1948년 제정헌법이 만들어지며 시작되었으니, 서양에 비해 100년이 채 안되는 짧은 역사를 가지고 있다. 이는 1894년 갑오개혁의 일환으로 제정된 홍범 14조(1894)에서 처음으로 시민을 뜻하는 ‘인민’ 용어가 사용되었고, 마그나 카르트에 있던 내용과 유사하게, 마음대로 인민의 세금을 거둘 수 없다는 것과 민법과 형법을 제정하고 감금, 징벌의 남행을 할 수 없도록 한 부분이 들어있다.
대한민국 임시 정부의 임시헌장(1919)과 미군정 시기(1945년 9월부터 1948년 8월) 동안의 미국 제도에 대한 엿보기가 경험이 되어, 1948년 제정헌법을 제정하고 대한민국을 민주공화국으로 선언하였다.
마그나 카르타와 존. F. 케네디 기념비
지금 마그나 카르타 서약이 이루어진 러니미드를 가면 너른 들판에 작은 표식이 하나 있고, 그 뒤에 원형 지붕의 작은 기념관이 서 있다. 가까이 가보면, 영국 정부가 아니라, 미국 변호사 협회가 마그나 카르타 기념관을 세운 것을 알 수 있다. 영국은 다른 나라와 달리 성문 헌법 대신에 관습법을 따르고 있다. 오히려 미국 헌법을 만들 때 마그나 카르타에서 영감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기념관 뒤에는 존 F. 케네디의 기념비가 세워져 있다.
운 좋게도 마그나 카르타를 800주년 기념하는 즈음에 여기를 찾아가게 되었다. 햇빛 따사로운 날, 불쑥 찾아온 친구와 마그나 카르타 바로 앞 카페(Runnymede on Thames)에서 락다운 없이 탬즈강을 바라보며 피시 앤 칩스와 와인 한 잔의 자유를 만끽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