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대탐험, 그리고 우리가 서 있는 지금 여기

[작은 마을 여행] 포르투갈 리스본에서 인도 코치까지의 여행

by 웨이브리지

나만의 테마 여행을 만들어 보자

여행 목적지를 정할 때, 보통 파리, 런던, 로마, 뉴욕과 같이 많은 사람들이 향하는 곳으로 정하게 된다. 여행 목적지를 정할 때 우선순위로 두는 볼 것, 먹을 것, 살 것이 풍부한 곳이다. 널리 알려진 여행지는 오래된 건물과 박물관, 미술관으로 가득하다. 도심지에는 길거리 음식에서 미슐렝 스타의 음식까지 쉽게 찾을 수 있다. 한편으로는 쇼핑과 선물을 사기에도 적합하다.


그러나, 여행을 많이 함에 따라, 이제는 세계의 중심 도시를 벗어나, 공연을 보거나, 무언가를 만들고 배우는 여정, 역사의 자취와 같이 나만의 테마를 만들어 여행을 떠나게 된다.


해변을 따라 따뜻한 햇빛을 즐기며 걷는 것을 좋아하다 보니, 지금처럼 추운 계절에는 포르투갈의 리스본, 서아프리카 바다에 위치한 카나리아 제도,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케이프 타운 그리고 인도의 코치를 다녀왔다. 돌아보니 지금처럼 추운 계절에 가기에 좋은 도시들이다.


그란 카나리아 섬을 갔을 때, 여행 책자를 살펴보니, 여기가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하기 위한 첫 항해를 할 때의 첫 기착지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몇 해 전 겨울에 다녀온 리스본, 그란 카나리아, 케이프 타운, 그리고 코치를 이어보니, 이것은 대항해시대를 개막하고, 유럽에서 인도까지 해양 루트를 최초로 발견한 바스코 다가마의 대항해 루트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대항해 시대의 개막 (Age of Discovery)

15세기가 접어들면서 왕이 되는 것에는 관심이 없던 포르투갈의 엔리케 왕자(1394-1460)가 서아프리카로의 항로 개척을 지원하면서, 대항해시대가 개막되게 되었다. 당시는 보자도르 곶(지금의 서사하라 공화국의 서해안)에서 배가 난파되고 돌아오지 않는 경우가 많아 세상의 끝으로 생각하였다. 엔리케 왕자는 공포의 보자도르 곶을 넘어가는 항해를 1434년 질 이아네스가 성공할 때까지 지속적으로 지원하였다.


대항해시대를 열게 되는 3대 항로는, 바르톨로뮤 디아스의 희망곶 (Cape of Good Hope)(1488년), 유명한 크리스토퍼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1492년), 그리고, 바스코 다가마의 인도 캘리컷(1498년)에 도달하는 항로이다. 한편, 서유럽의 대항해 시대 이전에 중국 명나라 정화 원정대(1405년부터 1417년까지 4차 원정)는 중국 난징에서 인도 캘리컷을 거쳐, 아프리카의 말렌디(지금의 케냐)까지의 대항해를 한 바 있다.


희망곶 (Cape of Good Hope) 발견

포르투갈의 엔리케 왕자의 지원으로 시작한 아프리카 루트는 서아프리카의 지금의 시에라리온까지 도달하는 데 그쳤다. 이후 포르투갈의 주앙 2세 왕은 국제무역을 확장하기 위해 아프리카 남단까지 항로를 개척할 것을 명령하였고, 바르톨로뮤 디아스(Bartolomeu Dias de Novais)는 최초로 아프리카 남단인 희망곶까지 항해를 개척하였다.


디아스는 1487년 8월, 3대의 배로 리스본을 출발하여, 9개월간 남쪽으로 항해하여 마침내 아프리카 바다의 남쪽 끝으로 여겨지는 봉우리를 발견하였으나 강한 조류로 더 이상 남진하지 못하고 배를 북쪽으로 되돌렸다. 디아스는 이 봉우리를 폭풍곶 (Cape of Storms)라고 불렀으나, 주앙 2세가 이를 희망곶 (Cape of Good Hope)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사실 아프리카의 최남단은 희망곶에서 150km를 더 항해를 하여야 한다. 희망곶의 발견은 10년 뒤 바스코 다가마가 아프리카를 거쳐 인도로 가는 항로가 열리게 되는 계기가 된다.


아메리카 신대륙 발견

콜럼버스(Christopher Columbus)의 신대륙 발견에 이야기는 널리 알려져 있다. 이탈리아 제노아 공화국 출신의 콜럼버스는 이탈리아 천문학자인 토스카넬리의 "지구는 둥글다"라는 학설에 감명을 받아, 그 당시 아프리카를 돌아 인도로 가는 항로에 비해, 서쪽으로 항해하면 더 짧은 루트로 인도에 도착할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먼저, 포르투갈의 주앙 2세에게 지원하여 줄 것을 요청하였으나, 이미 희망곶을 다녀온 바로톨로뮤 디아스를 지원하고 있던 주앙 2세는 지원을 반대하였다. 이에 따라 콜럼버스는 당시 스페인 카스티아 공화국의 이자벨라 1세 여왕의 후원으로 항해를 시작하게 된다.


콜럼버스는 1492년 8월 3일 스페인의 세비아 남쪽의 항구에서 3대의 배로 인도를 찾기 위해 출발하였다. 먼저 서아프리카의 바다에 있는 스페인령인 그란 카나리아 섬에 중간 기착하였고, 한 달 정도 재정비후, 9월 6일 카나리아 제도를 출발하여, 36일을 서쪽으로 항해한 끝에 10월 12일 육지를 처음으로 발견하고 산 살바로드 섬(지금의 바하마의 부속 섬이다.)이라고 명명하였다. 좀 더 큰 도시를 찾기 위해 항해를 계속하여 쿠바를 거쳐 히스파니올라라는 섬에 상륙하여 탄생이라는 의미로 La Navidad 정착지를 만들었다. 히스파니올라 섬은 카리브해에 있는 쿠바 다음의 두 번째로 큰 섬으로 지금은 아이티와 도미니카 공화국이 영토를 나누고 있다.


1492년의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은 유럽에 의한 아메리카 대륙의 발견과 동시에 원주민들에 대한 잔혹한 살상이 이루어지기 시작함을 의미한다. 포르투갈과 스페인은 대항해시대를 개막하며 막대한 부를 거머쥐게 된다. 뒤를 이어 네덜란드, 영국, 프랑스가 경쟁적으로 대항해 시대에 참여하게 된다.


인도 루트의 발견

인도 루트는 포르투갈의 마뉴엘 1세의 후원으로 바스코 다가마가 아프리카 남단 희망곶을 거쳐 인도의 캘리컷(코치의 북쪽)에 도착하게 된다. 다가마는 1497년 7월 8일 5대의 배로 리스본을 출발하여, 카나리아 제도를 거쳐 희망곶을 11월 22일에 통과한다. 그리고, 아프리카 동쪽 해안가를 따라 6개월을 항해하여 1498년 5월 20일 드디어 인도 남동쪽의 캘리컷 항구에 도착한다. 리스본에서 인도까지의 첫 항해는 10개월에 이르렀다.


인도 캘리컷은 향신료와 함께 당시 최고의 품질의 면직물과 염색기술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캘리컷에서는 아랍 상인들이 이미 향신료 무역을 독점하고 있었기 때문에, 포르투갈은 캘리컷 남쪽으로 이동하여 코치를 거점으로 향신료 무역을 지배하기 시작하였다. 바스코 다가마는 코치에서 1524년 코치에서 죽을 때까지 인도 총독으로 근무하였다.


포르투갈 리스본

포르투갈 리스본에 도착하면 오렌지색 지붕이 눈에 띈다. 젊은이들이 스페인, 영국, 독일과 같이 일자리 많은 곳으로 이동하여, 대항해시대의 부흥은 찾아볼 수 없고 그 어느 유럽 도시보다도 평균 연령이 높고 도시와 국가의 발전이 더디다. 유럽연합은 리스본에 대한 투자를 많이 하고 있고, 포르투갈도 투자이민을 적극 수용하고 있다. 다만, 포르투갈로 들어온 이민자들은 어느새 다른 유럽 국가로 다시 이동하는 것이 현실이다.


리스본에 도착하자마자, 강가로 이동하여 긴 줄 속에 들어가 에그 타르트를 챙겨서, 대항해 기념탑을 가 본다. 대항해 기념탑에는 32명의 조각상이 부조되어 있는 데, 맨 앞은 이름으로만 알고 있던 바스코 다가마 또는 마젤란일 줄 알았는 데, 대항해시대를 맨 처음 이끌었던 엔리케 왕자이다.


리스본 강가에 있는 대항해 기념탑


스페인 카나리아 제도

카나리아 제도는 유럽의 하와이로 불리는 곳으로 8개의 섬과 작은 부속 섬들로 이루어져 있다. 테네리페와 그란 카나리아는 섬 곳곳에 리조트로 가득하다. 연중 20도 이상을 유지하기 때문에 겨울 여행의 적격지이다.


카나리아 제도는 아프리카 육지로부터 100km 떨어진 바다에 위치하고 있고, 역사적으로, 유럽과 아시아, 아메리카를 이어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1480년부터 스페인 카스티아 공화국이 다스리기 시작한 후, 지정학적 위치의 중요성으로 스페인은 계속하여 카나리아 제도를 영토로 하고 있다. 대항해시대에 아시아와 아메리카를 향할 때, 그란 카나리아에서 중간 기착을 한 후, 본격적인 항해를 하였다. 지금도 대륙을 횡단하는 화물선은 그란 카나리아를 기착지로 삼고 있다. 화산 활동도 활발하여 2021년에는 50년 만에 라팔마 화산이 폭발하였다.

그란 카나리아 바다의 옛 범선


남아프리카 공화국 케이프타운

케이프 타운하면 생각나는 것은 테이블 마운튼과 희망곶이다. 비행기를 타고 케이프 타운 가까이 가면, 기장은 착륙 전에 희망곶까지 순회하며 보여준다. 아프리카의 가장 남쪽에 위치하기 때문에 1~2월에 가게 되면, 머리가 익을 정도로 햇빛이 내리쬔다. 30도가 넘는 온도에도 바닷가에서 펭귄을 볼 수 있고. 멋진 자연환경과 역사적 유적지가 있으며, 또한 넬슨 만델라는 인권운동으로 27년간 케이프타운의 감옥들을 오가며 복역하였다.


케이프 타운에서 희망곶을 향하는 도로는 테이블 마운튼을 둘러서 간다. 신차가 출시되면 광고에 나올 법한 해안을 따라 산허리에 간당간당하게 걸린 멋진 터널을 통과하고 나면, 좌우로 대서양을 바라보는 절경과 함께 희망곶에 도착하게 된다.

테이블 마운틴에서 선셋


인도 코치

인도 코치는 가보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지난 700년 이상을 아랍과 유럽을 대상으로 한 향신료 국제시장의 역할을 하였다. 인도의 델리, 뭄바이, 첸나이에 비하여 발전 속도가 뒤지다. 인도 정부는 코치를 미래 도시로 육성하여 예전의 명성을 회복하기 위해 힘쓰고 있다. 지금 코치는 지역 전체가 공사 중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고 인도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도시이다.


포트 코친 지역에 있는 작은 바닷가 음식점을 찾아갔는 데, 바다 건너편이 무역항으로 화물선이 가득하다. 아직은 관광을 하기에 발전이 안 되고 있어, 500년 전에 포르투갈인들이 남겨 놓은 건물들과 가톨릭 옛 성당, 대포의 흔적을 지나치고 말았다. 코치를 떠나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코치 시장에 있는 향신료


역사의 현장에 서 있는지 묻는다

역사와 게임에서 듣고 보던 대항해시대의 도시들을 가 보았다. 리스본과 카나리아 제도는 마드리드 또는 바르셀로나에서 하루에도 비행기가 여러 편이 있다. 그리고, 케이프 타운과 코치는 싱가폴을 허브 공항으로 이용하였다. 하나 같이 가기 어려운 곳에 위치하고 있지만, 그곳들이 대항해시대를 열었던 역사의 현장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한 번쯤 큰 맘을 먹을 만도 하다.


1490년 정도에 이베리아 반도의 남쪽인 리스본과 세비야에 우리가 있었다면, 당시 전 유럽에서 모여든 사람들과 같이 인도와 아메리카로 가는 신항로 개척에 뛰어들었을지도 모른다. 지난 1960년 이후, 미국 실리콘 밸리는 소련과의 우주 개발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컴퓨터와 반도체 회사들이 들어서기 시작하여 지금까지 전 세계 IT의 중심지로 성행하고 있다.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가는 시대적 장소의 현장에 있는 매력이 있을 것이다. 그곳으로 움직여 큰 움직임에 합류하든지, 아니면 주위의 사람들이 누가 있는 지 그리고 어떤 변화가 있는 지 한 번 둘러보아라.


당신이 서 있는 지금 여기에서 새로운 역사가 움트고 있을 수도 있다.


by 웨이브리지, 글모음 https://brunch.co.kr/@waybridge/

keyword
이전 07화마그나 카르타, 근대 민주주의 탄생지로의 여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