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석류의 예술路] 2024.11.13
조직에 정착된 일 태도를 볼 수 있는 두 개 단면
최인아는 저서 <내가 가진 것을 세상이 원하게 하라>에서 일의 태도에 대한 중요성을 얘기합니다. “재능은 씨앗일 뿐, 꽃을 피우게 하는 힘은 태도이다.” 좋은 태도 없이 재능은 저절로 능력이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조직도 그렇습니다. 조직 구성원의 개별 역량이 좋아도, 이 조직에 정착된 일의 태도(a settled attitude of work)가 좋지 못하면, 이곳에서 하는 사업에 꽃이 피지 않습니다. 좋은 사업도 태도가 나쁜 담당자를 만나면 사업이 시들어 버립니다. 좋았던 조직도 태도가 나쁜 리더를 만나면 조직이 망가집니다. “이 조직은 어떤 태도로 일하는가?”를 알아보고 싶을 때, 대표적으로 두 개의 단면을 잘라보면 이곳에 ‘정착된 일의 태도’를 유추해볼 수 있습니다.
첫 번째 단면은 조직 내에서 일할 때 상-하 관계가 어떻게 맞물려 있는지 보는 것입니다. 한쪽에서 대화 점유율 90%를 가지고 잘 알지 못하는 내용을 안다고 생각하며 가르치듯 말 만하고, 한쪽에서는 점유율 10%를 갖고 파블로프의 개처럼 무조건 반사의 끄덕임과 함께 ‘원하면 맞춰줄게’라는 일의 태도를 보이는 조직도 있습니다. 어떤 조직은 상-하 관계가 과도하게 수평적인 상태에서 서로의 역량에 불신이 강한 곳이 있습니다. 이런 곳은 형식적인 ‘일의 태도’가 발달하게 됩니다. 그래서 상-하 간 무감각, 무관심, 무책임이 강해집니다. 어떤 조직은 상-하가 만났을 때, 가지고 있는 생각을 눈치 보지 않고 꺼내면서, 이견이 있을 때도 뜨겁게 부딪히며 일이 되는 방향으로 전진할 수 있는 ‘일의 태도’를 가진 조직도 있습니다.
두 번째 단면은 조직(갑, 甲)이 협력사(을, 乙) 또는 외부 협력자를 만났을 때 ‘일의 태도’를 살펴보는 것입니다. 마른 수건을 짜는 것 같은 태도로 나는 일을 시키는 사람이고, 너는 내가 시키는 일을 해야 한다는 가정을 강하게 가진 ‘일의 태도’를 보이는 조직이 있습니다. 어떤 조직은 더 많은 전문성을 가진 ‘을’에게 일의 구체적인 목적과 방향을 제시하지 못하고 알아서 해달라는 오마카세 방식으로 일을 주문합니다. 내가 잘 모르니 알아서 A부터 Z까지 채워달라고 하는 것이죠. 그런데 일이 마무리되어야 할 때 이렇게 해달라는 건 아니었다고 하면서 뒷북을 치는 ‘일의 태도’를 가진 조직도 있습니다. 부족한 실력에 좋지 않은 태도가 결합한 경우입니다. 갑질 형, 우유부단 형 조직문화를 가진 곳과 일할 때, 협력사나 외부 협력자들은 ‘이 일을 내 일처럼 여기면서 할까요?’ 쉽지 않을 것입니다. 조직 내 상-하 관계가 일하는 방식은 조직이 협력사를 만났을 때 ‘일의 태도’에 영향을 주며 닮아갑니다. 조직 내 갑질이 강하면, 조직-협력사 간 갑질도 강해집니다. 조직 내 우유부단, 말 바꾸기 일의 태도가 강하면 조직-협력사 간 관계에서도 비슷한 양상이 발생할 가능성이 커집니다.
49:51 법칙 : 춘천 문화도시 조직에 정착된 일의 태도
‘고슴도치도 제 새끼는 예쁘다고 한다.’라는 속담이 있습니다. 왜 자기 자식은 예쁘게 느낄까요? 미우나 고우나 날 닮았고, 나에게서 시작되고, 내가 품고 길렀기 때문일 겁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조직에서 일할 때, 언제 이 일을 내 일처럼 여길까요? 조직문화 사례연구를 통해 확인한 춘천 문화도시에 정착된 49:51 법칙’이라 불리는 일의 방식과 태도가 있습니다. 문화도시 사업이 시작되었을 때, 춘천의 강승진 센터장이 고민했던 일의 방식이었습니다.
“당시 상사에 대해 가지는 ‘신뢰’에 변화가 필요했어요. 두 가지를 직원들에게 얘기했어요. 첫째는 일을 시키지 않는다. 둘째는 너희들이 하고 싶은 걸 도와줄 거다. 이 메시지를 포장하는 게 필요했어요. 그래서 했던 얘기가 50:50 아니야, 49:51이야. 그리고 이 방향은 저와 직원들 간의 관계에도 적용되었지만, 직원들이 협력사랑 일할 때도 이어졌어요. 일종의 우리가 일하는 방식, 가이드 라인이 된 거죠.”
강승진이 언급한 49:51의 개념은 춘천 문화도시 조직에 정착된 일의 태도로서 인사이트를 줍니다. 내 생각과 아이디어라는 씨앗이 일을 키우고 만들어갈 때, 우리는 이 일을 내 일처럼 느낍니다. 여기서 ‘49’는 일이 가야 하는 방향을 잡아주고, 일이 가는 과정에서 필요한 자원과 사람을 옆에 놔준다는 의미입니다. 49:51의 원리는 이 일이 될 수 있게 리더도 힘을 보탰지만, 담당자들이 일의 과정에서 무수한 선택과 숙성의 시간을 쌓으며 이 일이 자기가 만든 것이라고 느낄 수 있게 선을 지켜주는 것입니다.
또한, ‘49’라는 선은 실무진 발언을 최대한 꺼내 놓게 하는 안전선이 됩니다. 많은 얘기를 꺼낼 수 있다는 건 일에 필요한 정보, 사람, 네트워크를 더 많이 확보할 수 있게 하고, 위험요소도 점검하게 합니다. ‘49’리더십은 구성원과 목표를 공유하며 이들의 성장과 일의 주도력을 돕는 서번트 리더십(servant leadership)으로 볼 수 있습니다. 여기서 상사가 49라는 선을 넘어 50을 지나 80~90까지 일에 대한 발언권과 영향력을 점유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상사에 대한 피로도는 높아지고, 신뢰는 떨어질 것이고, 이 일에 꼭 필요한 얘기는 꺼내지 않게 되고, 하라는 데로 맞춰준다는 ‘적당히 마인드셋’을 가질 가능성이 커집니다. 내가 낳은 금지옥엽 아이를 키우는 게 아니라, 이해하기 어려운 상사의 아이를 잠시 맡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점유율 80%를 쥐고 있는 상사는 왜, 나만 이렇게 분투하고 다들 일하지 않냐고 화를 낼 수도 있습니다.
반대로 상사의 점유율이 49를 잡아주지 않고, 30을 지나 10 미만으로 떨어진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요? 우리가 가야 하는 방향 잡기, 일에 필요한 자원 지원, 조직 내 갈등 조정 등 구성원이 일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지 못하는 것으로 해석해볼 수 있습니다. 상사로서 역할과 책무 없이 ‘해줘 축구’가 되는 것이죠. 이런 상황에서도 뛰어난 직원들이 많으면 어느 정도 굴러가지만, 그렇지 못하면 우왕좌왕 동네 축구를 하는 조직이 될 수 있습니다.
춘천 문화도시 사업은 각각의 담당자가 협력사를 만날 때에도 49:51 원리를 적용하였습니다. 파트너들이 존중받는다는 느낌이 들 수 있는 서번트 리더십을 발휘하며 누군가의 일할 자리, 즐길 자리, 꿈의 자리를 함께 만들어갑니다. 내부에서 자신의 상관과 했던 49:51 경험이 외부를 만날 때에도 이어지는 것입니다. 최근 몇 년을 보면 춘천과 일하는 협력사들은 이 일을 대행하는 게 아닌 자기 일처럼 한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았습니다. 함께 일했던 구성원은 이런 말을 했습니다.
“나중에 일이 끝났을 때, 제일 중요한 것 소속감을 느낀다는 거예요. 나도 문화도시 춘천의 일원이야. 협력사도 다 우리 동료들이에요. 이들이 이 사업을 통해 실패해도 되니, 역량과 가능성을 키웠으면 좋겠어요. 그래야 저희도 더 클 수 있어요. 여기서 했던 좋은 시도가 좋은 레퍼런스가 되어, 이제는 다른 지역에서도 같이 일해보고 싶다고 이 동료들을 찾아요.”
http://www.sc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44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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