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에 가기 전에
옷차림이 마음에 들어 사진을 찍었다
해시태그
오오티디
데일리룩
사실 집히는 대로 입은 거지만
저녁에 우리 집에서 술을 먹기로 해서
덜 마른 옷을 몸으로 말리려고 입고
쫓아내듯 건조대를 접은 거지만
카페에 앉아서 책을 읽으려고 했는데
한참을 핸드폰만 봤다
남의 시집을 읽으면
특히 한 번이라도 만났던 적 있는 사람의 시집이라면 더욱 더
기분이 꽁기해진다
사실 내게는
개 씹 존나를 쓰지 않고 대화를 할 수 없는 병이 있는데
나의 주치의는 개 씹 존나 대신 귀여운 단어들을 사용하면 병의 진행을 늦출 수 있다고 그랬다
그래서 꽁기하다 마침 커피를 마셨는데도
개 씹 존나 졸려서 들고 온 철학서를 한 페이지 읽고
두 페이지 반 정도 읽고
핸드폰을 켜서 웹툰을 한 편 보고
인스타 스토리를 몇 개 보다가
다시 꽁기해지기 위해 아는 사람의 시집을 꺼내든다
개 씹 존나 아니 너무 꽁기해 귀여운 말에는 개 씹 존나가 안 어울리니 증세가 더 심해질 일은 없을 거예요
주치의는 내가 얼마나 개 씹 존나를 열심히 참고 있는 건지 모르고
치료를 시작한 지 벌써 십오 년 인생의 절반을 넘게 개 씹 존나를 써 왔기 때문에
술만 먹으면 개 씹 존나를 쓰게 된다
개 씹 존나가 들어가는 말을 해서 친구와 싸운 적도 있고
그런 말을 해서 꽁기한 채 집에 가서 토한 적도 있었지
철학서는 눈에 안 들어오고
시집을 읽으면 꽁기해진다
하품 여러 번 담배 세 개피 웹툰 일곱 편 두 권의 책 약간 쪽씩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 그리고 얼음 두 개 옆자리와 뒷자리 사람들의 대화 조금 약속 시간을 확인하는 전화 한 통 화장실 기다리기 한 번 오줌 한 발 손 씻기 두 번(한 번은 대체 왜 씻은 건지 밝혀지지 않았다) 핸드크림 바르기 한 번을 해치우고 나서
잔을 물리고
카페를 나섰는데
사진을 찍은 지 한 시간밖에 안 지나 있었고
기분은 꽁기한 채
옷은 아직 덜 말라 쿰쿰한 물비린내가 나는데
오늘도 술을 먹고
존나 개 씹 어쩌구 말하면 어떡하지
옷을 갈아입고 싶은데
집이 개 작아서 개 집 같아서
존나 둘 곳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