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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섬원 Sep 04. 2023

에뜨랑제

  밤하늘이 잔디의 말을 이해하듯이


  고작 맥주 두 캔에 이렇게 취할 거면 술을 마시지 말 걸 그랬어. 숨을 쉴 때마다 먼지를 한 움큼씩 집어삼키는 기분, 너는 알지. 너는 술 마실 때마다 토를 했으니까. 내가 너의 등을 두드려 줬으니까. 너의 등뼈가 파르르 떨리면 이제야 집에 가겠구나, 생각했으니까. 스무 살 까랑까랑하게 웃던 시절부터 등에 등을 받혀 앉았으니까.


  어떤 시절은

  우울했기 때문에 아름다운 법이라던데


  한 시기의 우울이 네 손목에 남았어. 내가 그걸 잡고 울어줄 때마다 너는 기만을 당했다며. 내 혀를 씹고. 혀는 이만큼 여린데 한 주도 못 가서 다 나아버렸지. 내 울음은 어떤 문신도  남기지 못하는 겁이 튀어나온 거였다. 사실은 너를 위해 울지 않았다. 사실은 네 손목도 깨끗했다. 사실은 우리 그런 시기를 보낸 적이 없었다.


  통 속의 뇌

  통속적인 뇌


  위로의 단어를 고르다 시간이

  낭비되고 말았다


  술에 취해 했던 말은

  모두 거짓말이고


  내일이 되면 다시 기억나지 않는 것들

  나의 주저흔 너의 두드림


  너는 나의 등을 두드리며 토하는 모습을 보여달라고 했다. 그런 적이 있었다고 믿으면 네게 그런 기억이 태어나고. 네 칼을 빌려 내 손목을 그었다고 주장하면 내 손목이 가려워진다. 코트를 입었는데 날씨가 포근하고 마침 네가 내 옆에 있으면 나는 너를 죽여 줘야 하는 걸까. 너는 날씨 앱과 달력을 번갈아 보며 이제 겨울이네, 곧 죽어야 하는데. 이딴 말이나 하잖아.


  술 한 잔 할까

  네가 거품처럼 가라앉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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