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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빈제이 Bin J Nov 01. 2020

병원과 약물에 의존했던 칸디다 치료 시간

재발성 칸디다 질염 치료기

"네. 이건 뭐... 별다른 방법이 없어요."


     1년에 한 번 정기 검진을 가는 대학병원 진료시간에 결국 나는 마음이 무너져버렸고, 참았던 눈물을 보이고야 말았다. 내 반응을 살피던 담당 주치의가 조금 당황했다. 티슈를 한 장 뽑아 말없이 나에게 건네주었다.


 "..."


    티슈를 받고 조용히 흐르는 눈물을 닦았지만, 멈추지 않고 눈물이 계속 흘러 이번엔 내가 당황했다. 대단한 중병도 아닌데, 딱히 더 쓸 치료 약이 없다는 전문의의 말에 마음이 무너져 내린 것이다. 대학병원이라면 뭔가 다른 대책을 알려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진료 시간을 기대했는데 예상과는 빗나간 것이다.


    소리 없는 서러움의 눈물을 흘리기 전의 장면은 이랬다. 내가 지난 3년 동안 갖은 노력을 다 해 칸디다와 얼마나 힘겹게 싸워왔는지를 열심히 설명하던 중이었다. A4용지 1페이지에 일목 요연하게 기간별 치료 방법과 복용약 리스트를 적어왔고, 증상은 어떠했는지를 의사 선생님께 보여드리며 설명드렸다. 그리고 지금껏 내가 먹어온 약과 방법과는 다르게 학계에 다른 치료법은 없는지, 전문의로서 다른 대안을 주실 수 있는지 묻고 있던 차였다.


그동안 내가 해 왔던 치료법들이란 이렇다.


1. 로컬 산부인과에서의 치료

    칸디다증의 무한 재발로 인해 병원을 3번이나 옮겨보고, 다양한 약물 치료를 병행했음에도 병원은 다니면 다닐수록, 몸은 더 지쳐갔다. 왜냐하면 그만큼 '재발'의 빈도수도 동일하게 늘어갔으니까. 그리고 면역이 약해서 칸디다가 오면 그다음엔 약해진 면역을 더 거세게 공격하는 세균성이라는 칸디다의 친구 같은 녀석도 합세해서는 나를 아주 힘들게 했다. 세균을 잡는 약을 먹고 나면, 다시 칸디다와 균 교대가 이뤄지면서 증상은 뫼비우스 띠처럼 무한 반복에 반복을 하는 경험을 했다. 출근하면 약을 한 봉지씩 대놓고 먹고사는 인생이 되었다.


2. 여성 한의원에서의 치료

    그러다가 내 몸의 원인은 무엇이고 해결 방법은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 고민하다 서점으로 갔다. '그래, 책에는 답이 있을지도 몰라.' 여성 건강, 자궁에 관련된 책을 찾아보다가 '여성한의원'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지속적으로 항진균제 복용으로 속을 버리는 것보다는 한약이 나을 것 같아서 한방으로 치료를 옮겨보았다. 한의원은 실비보험이 적용되지 않아 무지하게 비싼 약값을 대며 치료받던 중이었다. 겨울 감기에 걸려 항생제만 먹으면 완벽하게 초기 상태로 원상 복귀되는 새로운 병(?)에 걸린 것만 같았다. 몇 개월간 치료하며 공들여 쌓아 온 탑이 아주 깔끔하게 리셋되는 기분은 뭐라 표현할 단어가 없다.

   

    돈 벌면 병원비와 약 값으로 다 탕진하고, 주 5일 출근하면 2-3일은 '퇴근길'이 곧 '한의원 행'으로 치료가 일상이 되었다. 1년 정도를 여성 한의원 2곳에서 치료를 진행해봤다. 여자 선생님이 진료 보는 곳으로만 검색해서 찾아갔었는데, 치료를 받으러 가는 일 자체가 체력적으로 너무 힘들었다. 몸이 힘드니까 스트레스가 쌓이고 결국 체력은 바닥이 나버렸다.


     그 와중에도 내 몸은 이리 아픈데도 출근해서는 안 아픈 척, 괜찮은 척.. 눈 떠서 출근을 하고 또 앉아서 아픈 것을 참고 일을 해야 한다는 것이 정말 갈수록 너무 힘들었다. 특히 해외 출장기간에는 시차 적응과 무리한 일정에 망가진 몸이 더 심하게 망가지고 고장이 나버렸다. 게다가 그 시기에는 아버지의 일을 도와 법적 소송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일도 있었다. 해외 출장지에서 돌아온 바로 다음 날, 하루도 쉴 틈 없이 KTX를 타고 지방 법원까지 다녀오는 일정을 소화했다. 처리할 일들이 집 안이든 집 밖이든 너무 많았다. 그런 시기에도 안 아픈 척, 괜찮은 척했다. 매일 피로가 쌓여 부은 얼굴로 묵묵히 모니터 앞에 앉아 일했다. 고통스러웠지만 참았다. 아니 참아야 했다. 무엇보다 쉬고 싶은데, 회사가 정해놓은 출근 시간에 아픈 몸을 맞춰 살아야 한다는 것이 크나큰 고통이었다. 매일 참고 이 악물며 눈 떠서 겨우 출근하던 나날들이었다.


    결국 약 1년 넘게 시도해본 한의원 치료도 실패라는 결과로 마무리 짓기로 했다. 한의원 치료로 효과를 본 환자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의 증상은 매우 극심했고, 환경적으로도 몸을 쉴 수 있는 때가 아니어서 더 이상 치료를 지속한다는 것이 무의미하게 느껴졌다.


3. 영양제를 통한 칸디다 다이어트, 칸디다 킬링 요법

    진지하게 내 병에 대해 검색해보고 알아보았다. 1) 공복에 효소 성분 영양제를 섭취해서 바이오필름을 제거하고, 2) 다른 약으로 칸디다 킬링 작업 들어가고, 3) 다이 오프 과정을 해독하는 약 섭취, 4) 유산균으로 유익균 투입하는 방식. 이런 4가지 과정을 2주마다 삶의 루틴 한 패턴처럼 반복하는 치료방법인데 먹어야 할 약도 너무 많고 종류도 다양해서 정말 공부하면서 약을 찾아 먹었다.


시간 단위로 칸디다 킬링 요법을 시도해보던 시기


    초반에는 약이 말을 좀 듣는 것 같았다. 증상이 편안해진 날도 있었다. 하지만 '이제야 해방인가...?'싶은 생각이 들 때쯤, 여성 호르몬 주기에 맞춰서는 칸디다가 '나야^^'하고 나타났다.(그 녀석은 정말 세상 얄미운 꼴 보기 싫은 웃는 얼굴로 나타나는 것만 같다) 재발되어 증상이 원상복귀가 되었을 때는 정말 죽고 싶었다. '죽고 싶다'의 의미는 일상생활이 너무 힘들어져서 이기도 하지만, 지금껏 시간과 돈과 정성으로 공들여 온 치료가 물거품이 되었다는 생각에 낙망과 좌절감이 제일 컸다. 밤이면 베개에 얼굴을 파묻고 울었다.


칸디다를 잡겠다고 시도해보던 다양한 약들. 사진에 들어가지 못한 약도 많다.

 

   감기로 항생제를 먹지 않기 위해 노심초사 보내던 겨울이 지나고 꽃피는 봄이 왔다. 엄마가 어깨 수술을 하시게 되었다. 그것도 하필이면 오른손잡이 엄마의 오른쪽 어깨 수술. 이로써 엄마의 오른팔 역할을 맡게 된다는 것은 '초사이언 울트라 슈퍼 원더 알파걸'이 되어야 함을 의미했다. 회사 점심시간에는 시간을 쪼개서 대신 은행업무를 처리해드리고, 퇴근해서 집에 오면 식사와 청소, 빨래, 등 집안일은 기본이요, 과일 간식을 챙겨 병원에 가면 오른팔을 전혀 쓸 수 없는 엄마의 머리를 감겨드리고, 샤워를 마치면 옷도 입혀드리고, 머리도 말려드렸다. 

    

    엄마를 좁고 심심한 입원실에 혼자 두는 것이 마음에 걸려 거의 매일 가봤다. 내 몸은 지치고 힘들어지고 있음을 느꼈지만 엄마와 함께하는 시간이 즐겁고 행복했다. 엄마가 왼팔만으로 생활에 조금 익숙해지실 때까지 간병을 했다. 주중이든 주말이든 정말 잠시도 쉴 틈이 없이 지내다 보니 이내 내 몸은 최악의 컨디션이라 생각했던 해외출장 기간 때 보다도 더 망가졌다. 그보다 더 망가질 수는 없을 것만 같았는데... 일상을 살아갈 기력이 3%도 남아있지 않는 것 같았다. 




참다 참다 결국 그 말이 터져 나오고야 말았다.

"나 정말 죽고 싶다."


    3년간 칸디다증으로 시달리며 아무리 힘들거나 아파도 꾹꾹 눌러 담아 입 밖으로 내지 않고 참아왔던 말이었다. 내가 가진 체력적 한계 그 이상의 노력과 에너지를 쏟아, 나에게 주어진 역할을 열심히 살아낸 결과는 처참한 최후를 맞이했다. 마치 내 몸이 사멸될 것 같은 그런 최후. 그리고 그제야 알았다. 이렇게 하면 안 된다는 것을. 내 건강이 지켜져야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고, 내가 지치지 않아야 다른 사람을 더 오래 잘 도울 수 있는 것인데 참 미련하게도 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떨어진 면역력으로 칸디다 증상이 더욱 극심해졌다. 남들이 한다는 칸디다 킬링 요법을 열심히 해봐도 더 이상 몸이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다시 한번 마음에 굵은 소나기가 내리는 시기를 잘 지나가야 했다. 재발하는 끈질긴 질병 앞에 내 마음이 무너져 내리면 누구도 다시 세워줄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이럴 때일수록 마음을 잘 다스려야 한다지만, 참으로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나는 아파도 일상을 '유지'하면서 또 그냥 '살아냈다'. 그것밖에는 답이 없었기 때문이다. 


    누군가 아픈 사람이 이 글을 읽고 있다면 낙심하지 말고 일상을 살아내고 있는 자신에게 충분히 칭찬과 격려를 해주면 좋겠다. 일상을 유지하는 것만으로도 이미 대단한 힘을 내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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