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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빈제이 Bin J Nov 01. 2020

내 몸이 망가진 신호

3년 넘게 날 떠날 줄 모르는 끈질긴 그 녀석, 칸디다

    체력이 약한 나는 쉽게 지치고 면역력도 낮아 감기에 잘 걸리는 편이다. 몇 해전 응급으로 병원에 입원해서 다량의 항생제 주사를 투여해서 치료하느라 몸이 좀 고생했었다. 그 이후 언젠가부터 부인과 질병이 반복되어 나타났고, 말할 수 없는 고통의 시간이 시작되었다. 반복되어 나타는 증상의 정확한 원인은 '칸디다균' 때문이었다.


칸디다(Candida). 우선 사전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칸디다는 진균으로 인체 위장관 점막과 피부에 존재하는 정상균총 중 하나이다. 칸디다 속(genus)에는 다양한 종(species)이 존재하며 대부분의 종은 인체에 무해하지만, 조직의 항상성이나 면역력이 저하된 환자에게서 기회감염증을 일으킬 수 있다. 칸디다증(Candidiasis)은 칸디다에 의한 감염질환으로, 피부에 부분적으로 감염되어 피부진균증을 일으키거나 구강, 기관지, 폐, 위장관, 비뇨기 등에 감염되어 감염증을 일으킬 수 있다. 면역력이 저하된 환자에게 전신감염을 일으키게 되면 이로 인해 사망할 수 있다.


    쉽게 말하자면 이렇다. 칸디다균이 몸속에서 다른 균들과 적절히 균형을 이루며 조화롭게 살고 있으면 문제가 없다. 그러나 균형이 깨져버리면 개체수가 많아진 칸디다가 왕성한 활동을 하면서 피부나 기관지 등에 감염 증상을 일으키게 되고 그것을 '칸디다증'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균형이 깨졌다는 것은 면역력 저하의 문제이다. 나의 경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었던 것으로 판단된다. 아마도 그동안 살면서 나와 두터운 친분을 쌓은 '항생제'가 내 안의 좋은 균이든 나쁜 균이든 모조리 잡아 죽이는 역할을 충실히 한 결과로 오늘의 칸디다증을 불러온 가장 큰 원인이 아니었을까 추측해본다. 두 번째로는 바쁜 일상 속에서 직장을 다니면서도 이것저것 배우고 싶고, 하고 싶은 게 많아 체력적으로 늘 무리하며 살아왔던 시간들이 떠오른다. 마지막으로는 이제 와서 깊이 반성하는 거지만 불면증도 아니면서 일부러 잠을 잘 자지 않았다는 것. 아무것도 하지 않는 잠자는 시간이 너무 아깝다는 생각이 들어서 잠도 잘 안 자고 늘 무언가를 했던 이상한 생각과 습관을 갖고 있었다.


     이렇게 살다 보니 어느 순간 마치 조용했던 램프에서 지니를 불러내듯이 과다 항생제와 만성피로는 내 몸에 존재하고 있는지도 몰랐던 '칸디다'라는 녀석을 불러냈다. 그것도 아주 왕성하게 활동하도록. 그리하여 내 몸은 눈을 떠서 출근도 할 수 없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무좀이나 아구창(욕 아님) 등으로 다양하게 나타나는 게 칸디다증인데, 나의 경우 칸디다증은 질염의 형태로 나타났다. 이것도 요즘 현대인의 질병인지 조금만 검색해봐도 많은 여성들이 시달리고 있는 문제이고, 정보가 꽤 많이 쌓여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내가 이 증상을 처음 대했을 때 나의 1차 반응은 이전에 볼 수 없었던 증상을 마주하니 '충격적'이었고, 2차 반응은 '너무 힘들다'였다. 그리고 3차 반응은 '정말 이건 아무에게도 말할 수 없다'였다. 그래서 3년 넘도록 재발성 칸디다를 밤에 잠도 잘 못 잘 정도로 극심하게 앓아오면서도 나와 가장 가까운 엄마에게 조차도 쉽게 털어놓지 못하고 혼자서 질병과의 싸움을 벌여왔다. 


    정말이지 지금껏 살면서 이처럼 징글맞은 녀석은 본 적이 없다. 약 먹으면 나은 듯싶다가도 또 나타나고, 갖은 방법을 동원해도 또 재발하고, 또 재발하는 날 떠날 줄 모르는 한결같은 그런 녀석. 이럴 거면 없애려 하지 말고 그냥 평생 달고 살까 하는 마음까지 들게 하고, 삶을 자포자기하게 만드는 그런 끈질긴 녀석. 절대 우습게 볼 수 없고, 우습게 봐서도 안 되는 존재. 칸디다. 녀석을 이기는 방법을 찾기까지 정말 수많은 시간이 걸렸다.




       "죄송한데.. 제가 아무래도 오늘 출근을 할 수 있는 몸이 아닌 것 같아요..."


    몸이 제대로 망가진 것을 직감하고 상사와 통화했던 그 날, '몸'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다. 그리고 '나는 내 몸을 어떻게 대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도 생각해보았다. 쓸데없이 몸을 혹사시키는 습관을 갖고 있던 나. 기본적인 수면시간도 아깝다고 여겼고, 먹는 것도 귀찮고 시간 아까워서 하루에 영양성분이 다 담긴 알약 하나로 식사가 모두 해결되는 시대가 왔으면 좋겠다고 상상하던 나. 아주 잘못된 생각을 갖고 살아왔음을 깨닫고 철저히 반성했다.


     느리지만, 천천히 근본적으로 다시 몸을 세워가기로 했다. 늘 '높은 지점을 빠르게 달성하자'라는 식의 무리한 목표 달성과 기대치도 다 내려놓기로 했다. 회복을 위해 지극히 기본적인 것에만 집중하기로 했다. 그렇게 하니 삶은 단순해졌지만, 한편으로는 '내가 동물도 아닌데 잘 먹고, 잘 자고, 잘 X고에만 집중하게 되다니.. 어찌하다 내가 이렇게 되었나?'라는 생각에 웃음 섞인 자괴감도 들었다. 하지만 방법이 없었다. 내 몸이 내 말을 듣지 않았으니까.


    신기한 것은 목표를 낮추니 그 어느 때보다 나 스스로에게 칭찬을 많이 하게 되었다. 이렇게 아프고 불편한 몸으로 출근해서 일까지 다 마치고 온 내가 너무나도 대견하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삶의 패턴과 습관을 다 바꿔 진행해보는 시도는 단번에 약을 먹고 낫는 방식보다 훨씬 느리고 힘들겠지만, 방향만 맞다면 분명 더 나은 결과를 맞이할 거라는 확신을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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