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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빈제이 Bin J Nov 01. 2020

몸이 아파 슬픈 직장인

'내 몸'이 '내 말'을 듣지 않는 순간

    결국 그날은 출근하지 못했다. 이상하게 잔뜩 물먹은 솜처럼 무거워진 몸은 일으키기도 어려웠고 손가락조차 움직이기도 어려웠다.


    '어, 내 몸이 왜 이러지.'


    직장 생활을 하며 '정말 하고 싶지 않은 것'중에 하나인 그것을 내가 하고야 말았다. 그것은 바로 '아침'에 회사로 전화를 걸어 내 몸이 아프니 아무래도 연차를 내야 할 것 같다는 양해를 구하는 그 전화 한 통. 왜 그렇게도 그 전화 한 통이 어려웠을까 생각해보면 남이 나를 판단할 것 같은 '타인을 의식하는 나의 습관'이 가장 컸고, '무책임해 보이는 이미지'를 갖기 싫었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직장 상사에게 전화를 걸어 양해를 구했다. 쉬면서 몸 잘 추스르고 보자는 배려의 인사에 고마웠지만 왠지 마음은 무거웠다. 그리고 내 몸 하나 잘 관리하지 못했다는 생각에 스스로 자괴감이 들기까지 했다. 사실 몸이 힘들다 느껴져서 금주의 급하고 중요한 일들을 마친 뒤에 연차를 내어 하루 정도 쉬려는 계획을 갖고 있었다. 그런데 예상했던 것보다 일주일이나 앞당겨 몸이 이 사달이 난 것이다. 정말로 많은 신경을 쓰며 약도 먹고, 영양제도 챙겨 먹고, 온갖 노력을 기울이는데도 몸은 좀처럼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도 않고, 어떻게 이렇게 날이 가면 갈수록 완전히 자동차가 길 한복판에 퍼지듯 푹 퍼져 이리될 수 있단 말인가...


    내 몸이 이런 것을 누구를 원망하나. 말할 수 없는 답답함에 눈물이 흘렀다. 내 몸의 사태의 심각성은 누구보다도 나 자신이 가장 잘 알고 있었다. 내가 이러다 죽을 수도 있을 것만 같았다. 당장 무슨 수를 쓰지 않으면 큰일 날 수도 있겠다 싶다. 더는 이렇게 살 수 없었다.


    성급한 마음에 지금의 나의 증상이 무엇인지 정보라도 찾을 수 있을까 하여 초록창을 열어 검색을 시작했다. 우연히 유튜브에서 봤던 어느 가정의학과 박사가 운영하는 의원이 마침 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갈까 말까 하는 고민은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인 나에겐 시간 낭비일 뿐. 바로 전화를 걸었다. 다 죽어가는 목소리로 겨우 겨우 전화 상담을 받았고, 오전에는 조금 쉬고 기운을 차려서라도 오후에 찾아갈 마음으로 예약을 잡아뒀다.


    '병원에 가보면 무슨 답이라도 들을 수 있지 않을까...?'


    전화를 끊고 기운이 없어 가만히 누워만 있었다. 지칠 대로 지쳐버린 나의 몸과 마음에 방 안의 고요함이 내려앉았다. 정적 가운데 조급했던 마음이 차분해지면서 전화 상담 내용이 다시 떠올라 생각해 보게 됐다.


    200여 가지 정도의 음식 알레르기 검사를 한다던데,

1. 예약 전화로 사전 상담 시 물어보니 검사 비용도 만만치 않았고,

2. 검사 결과에 따라 평생 못 먹게 될 음식 리스트를 마주하는 일은 슬픈 일이며,

3. 금지 식품은 사회생활에도 불편할 뿐 아니라, 지키며 살아간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본다.

4. 게다가 그 검사를 받고 나면 나는 이것저것을 가리는 '더욱 예민한 사람'이 될 것 같고,

5. 치료 목적으로 약이나 영양제 등을 병원에서 제공하거나 제안하는 품목이 있을 텐데

    그건 바로 = 또 이 들어갈 거라는 불편한 사실.


    곰곰이 생각해보니 결국 그 방식은 삶의 또 다른 어려움을 불러올 것 같았다. '지금껏 남들보다 약하고 아픈 몸을 치료하기 위해 시간과 돈을 들이고, 온몸의 에너지까지 고갈되어버렸는데 또 다른 병원행을 선택해 그와 같은 굴레로 내가 다시 들어가겠다고?' 무언가에 메이는 삶은 힘들다. 확실한 생각이 들면 행동은 빠른 편. 끔찍한 생각이 들어 바로 예약을 취소했다.


    그럼 이제 나는 무얼 해야 하나? 내 몸은 어떻게 해야 정상으로 돌아올 수 있는 것일까? 이제는 정말 방법을 찾고 싶었다. 치료하는 것도, 약을 먹는 것도, 계속 좌절하는 것도 더는 할 수없게 완전히 지쳐버렸다. 지긋지긋한 질병, 저질 체력, 병원비와 약값 탕진, 에너지 소모, 스트레스로부터 제발 해방되고 싶었다! 그래서 이전에 병원과 약물에 의지해왔던 방식과는 다른, '식단 조절'이라는 좀 더 근본적인 방식으로 접근해보기로 했다. '먹는 음식으로 병을 고칠 수 없다면, 어떤 약으로도 고칠 수 없다'는 말처럼 건강한 음식을 통해 그동안 무리했던 몸을 차근차근 다스려보자는 쪽으로 마음을 결정했다.


    물먹은 솜 뭉탱이가 된 몸은 점심때가 되어서야 일으킬 수 있었다. 간단한 식사도 겨우 마칠 수 있는 체력이었지만 가볍게라도 몸을 움직여보려 산책을 나갔다.


사무실에 앉아서는 볼 수 없는, 말도 안 되게 맑았던 하늘


    시간은 오후 3시. 매우 천천히 느린 걸음으로 아파트 주변을 걸었다. 평일 이 시간에 맑고 시원한 바람과 따뜻한 햇살을 받으며 파아란 하늘을 보고 있자니 기분이 좀 묘했다. '다들 분주하게 일 하고 있겠지...' 같은 시각, 당연하게 있어야 할 것 같은 자리에 내가 있지 않고 다른 곳에 있으니 생소한 기분마저 들었다. 그런데 한편으로 문득 어떤 감정이 마음에 들어왔다. 그건 바로 '억울한 감정'. 갑자기 왜? 이렇게나 예쁜 하늘을 제대로 바라보지 못하고 햇볕도 쬐지 못한 채, 맨날 골골대고 아파하면서 사무실에 앉아 20cm 코 앞의 모니터에만 시선을 고정시키고 내 인생의 많은 시간을 쓰고 있다는 사실이 자각되었기 때문이다.


    천천히 걷던 발걸음이 나도 모르게 갑자기 멈춰 섰다. '아니, 지금 내가 대체 뭐하고 살고 있는 거지? 이게 무슨 인생의 큰 낭비인가! 이건 말이 안 돼!' 마음에 느낌표 백개가 찍혔다. 늘 분주하게만 살다가 직장 생활 13년 차에 나의 '인생이라는 시간'을 일상 속 자연 앞에서 처음으로 느껴봤다.


    산책 한 번으로 몸이 나은 것은 전혀 아니지만, 무너지고 좌절되었던 마음에 다시 한번 무엇이라도 해보자는 '새로운 의지'가 생겨나는 것 같았다. 조금 걸으며 바람을 쐬었더니 기분도 상쾌해졌다. '이 좋은 기분을 이어서 새로운 식단을 바로 시작해볼까?' 병자가 되어 몸에 기운은 하나도 없었지만 내가 낼 수 있는 아주 조금의 기운을 내어 발걸음에 힘을 주었다. 


    그렇게 나의 또 다른 실험, 식이 요법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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