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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단 Jul 03. 2021

시간을 남들보다 길게 쓰는 방법

시간을 내 편으로 만드는 법

왜 늘 시간이 부족할까.


하루는 온전히 나에게 주어진 시간인데 '시간을 쓴다'라는 생각보다는 '시간이 간다'라고 느껴질 때가 많다. 회사를 다니면서 퇴근 후 사이드프로젝트를 진행하는 나는 <시간을 어떻게 더 잘 쓸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을 자주 한다. 오늘은 그 고민의 과정을 길게 풀어보기로 했다.




| 어떻게 그 많은 일들을 하세요?


이동진 영화평론가, 이다혜 씨네21기자, 정혜윤 PD. 이들의 공통점은 엄청난 독서량과 활동량이다. 회사를 다니면서 꾸준히 글을 쓰고 책을 낸다. 이동진 평론가는 2만원의 책을 보유하고 있는 애서가이기도 하다. 책이 집에 보관하기 어려울 정도로 많아지자, 그는 수집한 책을 보관할 도서관을 만들었다.


이들에게 물었다. 어떻게 이 많은 책을 읽고, 영화를 보고, 글을 쓰시는 거에요? 이들은 정확히 똑같은 대답을 했다. "친구를 안 만나요." 이동진 평론가는 <유퀴즈>에 출연해 같은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인간관계 망하면 돼요." (영상 7분부터 보시면 시간관리 이야기가 나와요.)


이 말을 들으면서 의심이 들기도 했다. 이들의 방송을 듣거나 책을 읽으면 친한 지인과 식사하고 대화한 시간도 많고, 술자리 비화들도 많았는데 정말 사람 안 만나는 걸로 시간을 확보하는 게 맞는걸까? 책 <직장인에서 직업인으로>를 읽으면서 실마리를 찾았다.


오랜만에 친구에게서 연락이 왔다. 친구는 당신의 일정 중 비어 있는 시간에 만나자고 한다. 당신은 엉겁결에 그렇게 하겠다고 할지도 모른다. 이렇게 '어...' 하다가 만들어지는 일정이 얼마나 될까? 내가 약속이 없으면 아무에게나 그 시간을 주어도 되는 것일까? 이렇게 만나는 사람 가운데 정말로 내가 만나고 싶거나 만나야 할 이유가 있는 사람은 얼마나 있을까?

우리는 돈을 쓰는 데는 비교적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면서도 시간을 쓸 때는 그렇지 않다. 누군가에게 돈을 함부로 빌려주거나 그냥 주지 않는다. 그런데 왜 시간은?

자기만의 시간을 갖기 위해서는 적절하게 거절할 수 있어야 한다.


지난 한 주를 돌이켜보면 '내가 정말 하고 싶고 필요해서 쓴 시간' 보다는 누군가의 우연한 요청으로 보낸 시간이 많을지도 모른다. 시간은 '선택'하는 것이고 하나를 선택하려면 나머지를 거절해야 하는 상황이 생긴다. 내가 의심했던 '이동진, 이다혜, 정혜윤 작가도 사람 만나고 다니는데?'라는 질문에 대한 답은 이것이었다. '그들은 정말 만나고 싶은 사람, 필요한 사람을 만나는 시간을 선택한 것'이었다. 만나자고 하는 모든 사람의 요청에 승낙할 필요는 없다. 나의 도움이 필요한 모든 사람들의 부탁을 들어줄 필요도 없다.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 하고 싶은 일


친한 친구들은 나에게 종종 이런 말을 한다. '사람 안 좋아 하잖아.' 한동안 나도 내가 그런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조직 생활을 싫어하고,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의미를 찾지 못하는 사람으로 스스로를 이해했다. 알고보니 그게 아니었다. 스스로 독서모임을 만들 정도로 나는 사람들과 모여서 관계맺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과 좋아하는 방식'으로 만나고 싶었던 것이다.


나 혼자 보내는 시간을 '남아 있는 시간'이라고 생각하면 시간은 흩어지기가 쉽다. 나와의 시간을 '약속'하는 습관을 갖기로 했다. 지난주는 퇴근하고 독서모임 일정이 여러 개 있어서 메모장에 쌓인 글들을 정리할 시간이 없었다. 그래서 주말 오전은 '나와의 글쓰기 시간'을 잡아두었다. 오늘은 요가 수업을 가지 않고 간단하게 스트레칭을 하고 바로 글쓰기를 시작했다. 나와의 약속에 늦고 싶지 않아서 서둘러 몸을 일으켰다. 베이킹도 하고 싶고, 샐러드도 만들어먹고 싶고, 보다만 드라마도 보고 싶지만 약속시간에 지각하고 싶지 않았다. 나와의 약속을 지키기 어려울 때 내가 남이라고 생각해본다. 내가 나를 어렵게 대해줘야 남도 나를 그렇게 여긴다.



| 물리적 시간 VS 화학적 시간


모든 시간을 똑같이 중요하게 쓰고 싶지만 뭔가를 시작하려고 해도 예열 시간이 걸린다. 물리적으로 같은 시간이라고 해도 화학적인 질이 다를 수 있다. 글쓰기 전에 보통 나는 이런 준비 과정을 거친다. '뭘 쓰지'에 대한 생각은 이미 되어 있는 상태에서 (글감 수집과 글 구조짜기 완료) '써보자' 라는 마음을 행동에 옮기려고 할 때 나는 이런 준비를 한다.


간단한 스트레칭을 20분간 한다 (바로 글을 쓰면 허리가 아프다)

글쓰며 마실 차를 고르고 우린다

미리 써둔 글 구조 메모를 살펴본다

쓸 주제와 관련된 책 메모 노트를 찾는다

글을 쓰면서 다시 찾아볼 자료를 검색한다


이 과정을 거치고 실제 '글쓰기'에 돌입해서 써내려가기까지는 한 시간 정도 걸린다. 어떤 날은 글을 끝내지 못하기도 한다. 생각했던 방향대로 풀리지 않거나 쓰다보니 스스로 아직 정리가 덜 된 경우도 있다. 그러면 또다시 글감 수집과 글 구조짜기부터 시작해야 한다. 원점으로 되돌아가는 것이다.


이때 글 쓰는 준비에 들이는 시간은 밀도가 낮고 글쓰기에 돌입해서 써내려가는 시간은 밀도가 높다. 같은 시간이라도 해도 전혀 다른 몰입도를 가진다. 준비 과정을 최소화해야 제대로 글 쓰는 시간을 확보할 수 있는데 그러려면 준비 시간을 최적화할 필요가 있다. 이때 내가 사용하는 두 가지 도구가 있다. 바로 루틴과 생산성 프로그램.



| 루틴, 마음만으로 안 될때가 있으니까


일상에서 '몰입'하기 위해서는 반복을 통해 정형화한 루틴이 필요하다. 큰 정신적 소모 없이 바로 핵심으로 돌입할 수 있게 만들어주는 역할이 루틴이다. 시작부터 몰입까지의 로드를 최소화 할 수 있다.


시간 공간 환경을 일정하게 정해두는 방법을 많이 사용한다. <자기만의 책방>을 쓴 이유미 작가는 매일 밤 잠들기전 30분 책을 읽는다고 한다. 시간을 정해두면 생체리듬이 기억한다. 매일 같은 시간에 잠들고 일어나면 비슷한 시간에 졸린 것처럼. 공간을 정해두는 것도 좋다.


<나혼자산다>에서 허지웅 작가는 독서스팟을 만들어보라고 추천한다. 정해진 공간이 스스로에게 주는 메시지가 있다기보다는 공간을 정해두면 내 동선에 맞게 필요한 도구들을 미리 세팅해둘 수 있어서 준비 시간이 줄어든다. 나는 집에 작은 작업실을 만들어 두었다. 작업실에는 차 마시는 도구와 독서대, 메모노트, 연필 등등이 늘 쓰던 자리에 놓여있다. 손이 닿는 곳에 있는 필요한 물건들이 정리되어 있으면 바로 작업에 돌입하기 쉽다.



| 나를 도와주는 도구들


시공간을 정해두지 않고 '방법'을 정해두는 것이 도움이 될 때도 있다. 어떤 일이든 반복할수록 굳이 생각하지 않고 할 수 있게 된다. 처음 시작하는 일은 그 다음 단계에서 뭘 어떻게 해야 할지 결정하기 위해 순간순간 생각할 것들이 많지만 반복해서 해본 일은 이 다음에 무엇이 올지 안다. 글쓰기 전 글감 수집과 글 구조 방법을 정형화하는 것이다. 나의 경우에는 몇 가지 생산성 프로그램을 활용한다.


글의 완성도 순서대로 사용한다
키워드 [구글 KEEP] → 글로 쓰기 [에버노트] → 글완성 & 발행 [브런치] → 포트폴리오 [노션]


구글 KEEP 메모장

그때그때 떠오르는 생각을 적는다. 외부에 있거나 긴 시간을 내기 어려울 때 일단 키워드만 적어둔다. 고정기능을 사용해서 반복적으로 사용하는 정보들을 상위에 두고 (쇼핑리스트, 책 리스트, 결제 리스트, 이모티콘, 공유를 위해 자주 쓰는 주소들) 순간순간 떠오르는 정보들은 아래에 새 메모로 적는다. KEEP에는 문장 형태의 완성도 있는 메모를 쓰기 보다는 나중에 보고 글로 풀어낼 수 있도록 키워드를 적는다.




에버노트

집에 돌아와서 KEEP에 메모한 내용을 풀어서 메모한다. 에버노트의 가장 큰 장점은 [내용 검색]과 [병렬식 저장구조]이다. 노션과의 가장 큰 차이점이고, 두 프로그램 모두를 사용하는 이유이다. 예전에 메모를 해둔 것 같은데 기억나지 않을 때 검색을 이용해서 쉽게 찾을 수 있다. 앞뒤 내용까지 보면서 검색된 내용을 훑어볼 수 있다는 점이 장점이다.


브런치

글 완성까지는 모두 에버노트로 한다. 나중에 어떤 글을 썼는지 한번에 찾으려면 에버노트로 모아두는 것이 편하다. 그렇지만 최종 탈고는 브런치에서 한다. 웹/모바일에서 글이 어떤 형태로 읽히는지 봐야지 눈에 들어오는 개선점들이 있다. 정보성 글들은 바로 브런치에서 쓰기 시작하기도 한다. 지금 이 글도 에버노트에 적어둔 글 몇 개를 이어서 브런치에서 쓰고 있다.


노션

노션의 가장 큰 장점은 [페이지 종속 구조]이다. 포트폴리오를 만들거나, 대시 보드 형태로 업무 현황을 정리하기 편하다. 아래 이미지처럼 내가 하는 일들을 그룹으로 묶어서 페이지를 구성해두면 항목별로 일을 구조화하기 편하다. 한 눈에 내가 지금 뭘 하고 있는지 정리할 수 있다. 무엇보다 외부 공유하기에 가장 최적화된 프로그램이다. 지금 하고 있는 독서모임도 노션에 공동 노트를 작성하고 있다.





다 시간 탓이라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회사에서 너무 많은 시간을 보내서 다른 것을 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회사를 그만두고 프리랜서가 되면 지금보다 더 많은 글을 쓰고, 성과를 더 잘 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정말 그럴까? 연차를 내면 할 일들을 빽빽하게 계획해 놓고는 정작 연차날에는 반도 못했던 기억이 꽤 있다.


성과를 내는 것은 능력에 있지 않다. 시간에 있다. 정확히 말하면 '시간을 확보할 능력'에 있다. 하고자 마음 먹을 일에 시간을 쏟기 위해 다른 일들을 정리하고 거절하고 루틴을 만들어냄으로서 비로소 확보한 시간이 얼마나 되느냐에 달려있다.


수천 명의 과학자와 발명가, 예술가와 작가를 분석한 결과, 이들이 소위 인생 대박 작품을 내놓는 평균 나이는 39세 정도다. 이 연구 결과를 놓고 보면 30대 후반까지는 대박을 터뜨려야 하며, 40대 이후에는 힘들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바라바시는 한 단계 더 들어간 분석을 통해 나이와 상관없이 사람들은 생산성이 가장 높았던 시기에 성공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을 발견했다. 즉, 인생 최고의 작품을 만들어내는 시기에 실패한 작품도 많이 만들었다는 것이다.

글을 아무리 올려도 사람들이 보지 않는다는 건 단순히 내가 글재주가 없다는 것을 뜻하지 않는다. 오히려 나아갈 방향을 알려줄 수 있다. 1) 좀 더 오래 꾸준히 써서 사람들의 반응을 이끌어낼 필요가 있다. 2) 사람들의 반응이 조금이라도 있는 글과 아닌 글의 차이를 보면서 글쓰기 스타일을 변화시킬 필요가 있다 .3) 글쓰기 플랫폼을 바꿀 필요가 있다.

<직장인에서 직업인으로>, 김호


시간에 대해서 한참 고민하던 때에 독립한 마케터, 정혜윤님의 글을 읽고 무릎을 쳤다. <시간의 비밀 - 시간은 아껴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시간을 자기 것으로 만들어본 사람이 하는 이야기의 힘은 명확하다. 그가 인용한 말을 나도 또 한 번 인용하며 시간에 대한 이야기를 마무리해본다.


우리는 시간을 절약해서 원하는 삶을 만들어 나가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원하는 삶을 만들어 나가게 되면, 시간은 저절로 절약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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