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삼풍 생존자입니다
강아지풀 씨앗이 갈색으로 익어가면 참새들이 달려든다.
강아지풀 씨앗은 참새가 먹을 수 있는 딱 그만큼의 크기를 갖고 있다. 까치나 까마귀가 강아지풀 씨앗까지 넘보지는 않는다.
그렇지만 강아지풀 같은데 덩치가 큰 수크렁이라는 녀석은 다르다. 강아지풀이 초경량급이라면 수크렁은 헤비급이다. 참새들은 수크렁 씨앗은 먹기 힘들다는 것을 알 것이다. 먹는 일에도 저마다 자기 분수에 맞는 그릇이 있는 거다.
강아지풀 낱알은 사실 우리나라에서도 흉년이 들면 곡식 대용으로 먹었다. 흉년 때 구휼식품으로 사용되었다. 노란 좁쌀 밥을 먹어본 사람이라면 그런 비슷한 밥이 될 거라 생각해도 될 것 같다.
쌀도 보리도 없으면 우리네 선조들은 좁쌀이라도 먹어야 했고, 강아지풀 낱알이라도 먹어야 했다. 저 낱알로 밥을 지어 먹었을 가난을 생각하면 코끝이 찡해진다.
예전 배 곯던 시절에 비하면 요즘은 많은 것이 풍족해진 세상이다. 어릴 적에는 늘 먹을 것이 부족해 뭐든지 없어서 못 먹었는데, 지금은 배가 작아져 먹으라고 줘도 못 먹는 일이 다반사다. 위장 크기가 작아졌는지, 아니면 어릴 때 위장 그대로인지 하여튼 밥을 많이 먹지도 못할뿐더러 식사를 하고 난 직후에는 과일이며 커피며 뭐든 아무것도 먹을 수가 없다.
결혼 초, 장인어른과 장모님이 신혼부부 보금자리에 찾아왔다. 아내가 정성껏 차린 식사를 모두 맛있게 먹고 후식이라며 과일을 깎아 내놓았는데 나는 사과 한 조각도 손을 대지 못했다. 당시에는 아직 살짝 무서웠던 장모님이 그렇게 권했는데도 손사래를 쳤다. 죽었으면 죽었지 도저히 못 먹겠다, 하는 것이 그때의 심정이었다. 정말 아무리 용기를 내어 보아도 먹을 수가 없었다.
그런데 오늘 책 주인공은 먹으니까 먹어지더라,고 말한다. 생각이 없었는데 먹으면 들어가는 경우가 있다. 나와 다르게 배가 불러 못 먹은 게 아니기 때문이다. 너무 슬프고 너무 고통스럽고 너무 아프면, 트라우마와 상처가 할퀴고 지나간 뒤에는 밥이고 뭐고 아무 생각이 나질 않는다.
너무 스트레스를 받아서
너무 힘들어서
너무 괴로워서
손을 내젓는다.
밥 생각이 없어.
그래도 주변에서는 그럴 때일수록 잘 먹어야 한다며 억지로 숟갈을 권한다. 그때 못 이기는 척 숟가락을 들면 신기하게 밥이 들어간다. 그리고 신기하게 발목에 힘이 생기고 눈에 생기가 든다.
왜 그럴까 생각을 해 보았다. 밥의 힘일까? 약간은 영향을 미쳤겠지만 눈에 보이는 밥이 생기를 주었다기보다는 눈에 보이지 않는 영혼의 무엇이 바로 힘을 준 것이다. 그것은 바로 사랑의 힘이고, 나눔의 힘이다. 사람의 힘이고, 존재의 힘이다.
모두 일주일간 고생 많으셨다. 힘들어 밥 생각 없어도 가족 생각하고 한 끼 식사 꼭 챙겨드시길. 무엇보다 나 자신을 생각해서 억지로라도 숟가락을 잡으시길.
지금까지 살아오느라 정말 수고 많으셨다. 토닥토닥, 당신에게 위로와 응원을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