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 흡수율

사장의 마음

by 봄부신 날

[감정 흡수율]

흡수율은 감정에도 적용되는 것 같다.
감정타격이 올 때, 제 아무리 강단 있다 해도
'일정량'만 받아들일 수 있다.

(사장의 마음, 김일도, 63쪽)


갑자기 비가 많이 쏟아졌다. 아스팔트는 비를 흡수하지 못해 탕탕 위로 튕겨낸다.

내리는 비를 땅이 다 흡수하고 받아들일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땅으로 스며들지 못하고 아스팔트 위를 거칠게 쓸며 내려가는 비가 불쌍하다. 자신을 받아줄 친구가 없다.


가족들이 쏟아내는 기쁨, 슬픔, 억울함, 분노도 모두 다 흡수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사실. 나 자신 하나 건사하기 힘들 땐, 가족이라 할지라도 세심하게 공감하고 슬프거나 아파하는 감정을 대신 흡수하기가 어렵다. 저자의 글처럼, 흡수율이 있어 일정량의 감정만 받아들일 수 있나 보다.

몸이나 마음이 감정을 흡수하는 양이 정해져 있단다. 이 감정의 흡수총량에는 타인의 감정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의 감정도 포함되어 있다. 본인의 감정이 심하게 요동칠 땐 그 싸움만으로도 이미 지쳐 떨어지기 때문에 타인의 감정까지 헤아리지 못한다.


감정에는 에너지가 들어 있다. 그래서 타인의 감정을 흡수하면 자신의 에너지가 그만큼 소진된다. 오래 전 가족상담센터를 2년여 간 운영한 적이 있었다. 그때 느꼈다. 타인의 감정을 흡수하는 것이 얼마나 많은 에너지를 소모하는지. 생명사랑협회와 공동으로 자살 예방 전화상담도 진행했었는데, 정말 전화 한 통을 끝내고 나면 밥 생각이 없어질 정도로 에너지가 쏙 빠져나갔다.


그래도 할 수만 있다면, 포근한 흙이 되어 눈물로 흘러내리는 전화 건 사람의 비를 다 받아내고 싶었다. 차라리 내가 빗물에 무너져내리고 싶었다. 전화기를 통해 들려오는 상대의 상황은 누구라도 억장이 무너지는 상황이었다. 나라도 죽고 싶은 마음이 들겠구나 그런 생각이 들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하지만 조금이라도 그런 티를 내서는 안 된다. 절대적인 희망이 필요했다. 최대의 감정과 에너지로 그가 마지막으로 용기를 낸 전화에서 희망을 찾도록 해야 했다. 그가 쏟아내는 빗물을 다 받아낼 수 없음을 알기에 결국 적당한 선에서 손을 놓는다. 2시간 동안 밥을 거르며 통화를 해도 그저 미안한 마음만 가득했다.


사라지는 에너지만큼 다시 채워지면 좋겠다. 현대인들이 밥을 먹는 양이 점점 줄어든다고 한다. 나는 그에 맞춰서 감정도 에너지도 조금씩 줄어드는 것만 같다. 이 비 내리고 나면 기온도 더 떨어질 것이다.


감정은 다 흡수하지 못하더라도, 내 온기는 나누어줄 수 있길 기도해 본다. 감정을 다 흡수하고 받아내진 못하더라도, 작은 체온 나누는 따뜻한 사람이 되고 싶다. 따뜻한 사랑의 발열체가 된다면 참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