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핍의 힘
[공황장애의 시작 - 나를 내려놓다]
단풍은
자신의 모든 에너지를 줄기에 내어주고
잠시 활활 불타오르다
낙엽으로 떨어져 거름이 된다.
단풍은 어머니의 마음이다.
(결핍의 힘)
단풍을 아름답다 할 수 있는 건
자신을 던져
바닥으로 내려오기 때문이다.
찬미와 영광의 순간을 버리고
짓밟힘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고통의 시간을 수용하기 때문이다.
어쩔 수 없이 나는
딘풍이 될 수 없다.
바들바들 떨면서
가지 끝자락을 부여잡고 있다.
나는 떨어지는 것을 두려워한다.
밟히는 것을 두려워한다.
손을 놓을 수가 없다.
바들바들 떨던 나는 결국
다시 공황장애의 하루를 맞이하고 말았다.
갑작스럽게 찾아온 이 증상으로
나도 깜짝 놀라고, 옆지기는 더 놀랐다.
눈물 글썽이며 힘들어하는 나를 바라보는 옆지기.
나는 과호흡으로 숨을 힘들게 내쉬며
결국 이렇게 땅으로 추락하는 갈색 나뭇잎이 된다.
화려한 붉은 색 단풍이 아니다.
어제는 신경정신과에 가서
한 시간 상담을 받고
항우울제, 항불안제, 신경안정제를 받아왔다.
6개월간은 장기 복용을 해야 한다고 한다.
1월에 회사를 그만 둔다고 팀에 얘기했다.
너무 힘들다고.
퇴사가 아니라 퇴직이라고.
단풍은
거름이 되기 위해
자신을 온전히 소멸시키기 위해
썩어 다시
자신에게 돌아가는 힘을 주기 위해
결국 스스로 힘을 얻기 위해
자신을 떨어뜨리고 낮추고
밟혀 냄새나는 부엽토로 변신한다.
손을 놓지 못하자
신은 내게 바람을 훅 불어
떨어뜨린다.
네가 있어야 할 곳은
이제 바닥이란다.
땅으로 내려오렴.
옆지기가 얘기한다.
당신 힘든 거 알면서도 애써 모른 척 했는데
이렇게 훅 들어오네.
회사 당장 그만 둬.
나는 무엇을 하며 먹고 살아야할까
그 생각에 잠이 일찍 깨
낙엽과 단풍의 삶에 감명을 받는다.
단풍이 하는 일.
낙엽이 되는 일.
가장 낮은 곳으로 내려가는 일.
자신의 가진 것을 포기하는 일.
다시 시작하려면
먼저 모든 생명의 물줄기를 줄기에게 나눠주고
바싹 마른 채로 땅에 떨어지는
실전에 돌입해야 한다.
그것이 다시 살아나는 길이다.
나는 어제부로 다시 공황장애 환자가 되었다.
공황장애 약을 아침 저녁으로 복용하고 있으며,
불시에 찾아오는 공황장애 발작에 대비하여 비상약을 소지하고 다닌다.
내 공황장애 원인은
심각한 회사 내 스트레스이다. 이 부분은 말로 다 풀어 설명할 수가 없다.
아내도 애써 모른 척 외면해 왔던 부분이지만,
얼마전 회사 대표와 전 직원이 보는 데서 30분 가량 언성을 높이며 말다툼을 한 것은 내 정신과 몸에 치명적인 원투 펀치를 안겨주었다. 내가 대표 앞에서 고분고분 하지 않은 건, 어찌 보면 승리라 볼 수 있지만, 결과적으로 나는 스스로 무너진 셈이었다. 내 몸은 내 임계치를 이겨내지 못했다.
나는 과호흡으로 죽을 듯한 공포 속에서 차를 몰고 집으로 와 그대로 침대에 누웠다. 호흡을 골랐지만 제대로 되지 않았다. 오래 전 과호흡으로 119에 실려갔던 때가 떠올랐다. 산호호흡기 큰 탱크를 옆에 두고 한달여간 입원하면서 아내의 속을 시커멓게 태웠던 그때가 떠올랐다. 아, 이래선 안 되는데.
그날밤. 아내 역시 꼬박 밤을 새웠다.
나는 이제 공황장애를 앓는 환자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