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황장애 일기> 아직은 출근해야 돼
2023년 12월20일(수)
어제 출근길에 일어난 공황 과호흡으로 인해 하루를 종일 노심초사 걱정하며 보냈다. 공황장애의 전형적인 예기불안 증세다. 공황장애는 과거의 공황장애 트라우마 때문에 또 공황장애를 불러오는 공황의 악순환 뫼비우스 띠가 된다. 한 번의 패닉 트라우마가 게속해서 패닉을 불러오는 것이다. 겉으로는 평온을 유지하며 회사에서 일을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마음 속에서는 치열하게 예기불안과 내면자아가 싸우고 있었다. 오후에 반차 쓰고 퇴근할까 말까를 갈등하다 시간이 다 지났다. 그렇게 끝까지 버티고 퇴근을 했다.
퇴근할 때도 상태가 크게 좋지는 않았다. 집에 와서는 밥을 먹고 약을 먹고 침대에 앉아 바로 텔레비전을 켰다. 우리집 텔레비전은 안방에 있다. 침대에 앉아 등쿠션에 등을 기대면 텔레비전을 보기에 가장 좋은 자세가 된다. 우리집은 과거에 텔레비전이 없는 집으로 유명했다. 아이들이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텔레비전을 두지 않았고, 있어도 고장났다고 해서 틀지 않았다.
텔레비전이 집에 들어온 계기는 아내의 불면증 때문이었다. 아내가 무능한 남편을 대신해 쓰리잡 포잡으로 아침부터 저녁시간까지 한 치의 틈도 없이 시간을 돌리며 일을 하던 때였다. 화장품 방문 판매를 마치고 급하게 집으로 와서 공부방 아이들을 가르치려고 뛰어가던 아내는 비가 와서 길이 미끄러워진 상태에서 신발이 쭉 밀리면서 넘어졌고 주위에서 '뚝' 소리가 들릴 정도로 발목 골절을 당하며 넘어졌다. 수술 후 갑자기 불면의 밤이 시작되었다. 아내의 불면은 오랜 기간 거의 2년 가까이 우리집의 우울함을 만드는 원흉이 되었다. 그때 취한 조치가 텔레비전을 보는 것이었다. 무언가에 정신을 놓고 자기 생각을 놓으면 스르르 잠이 드는 신비로움이 나타났다. 잠을 자야 한다. 오늘도 잠을 못자는 건 아닐까, 하는 잠에 대한 예기불안을 없애야만 했다. 그렇게 텔레비전은 정신건강의 한 도구로 화려하게 우리집에 등장했다.
무언가에 정신을 놓아야만 한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호흡에 신경을 쓰게 되면 불안과 과호흡이 밀려오기 때문이다. 그래서 영화든 드라마든 뭐든 텔레비전을 켜놓고 거기에 정신을 놓아야 그 순간 호흡에 대한 예민한 긴장은 사라진다. 이 방법은 아내가 불면증으로 고생할 때 사용하던 방법과 같았다. 나는 집에 오자마자 누워 텔레비전을 켰다.
그래서 아내에게 조금 미안한 마음도 있다. 내가 왜 오자마자 이런 행동을 하는지 상황을 정확히 설명하지 않은 상태여서, 내가 너무 게으른 사람으로 보여지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있었다. 예전 같았으면 음악을 틀어놓고 책을 읽었는데 요즘엔 책을 읽어도 집중도 잘 되지 않는다.
어제 퇴근하면서, 팀원에게 내일 몸 상황이 여의치 않으면 출근을 못 할 수도 있다고 얘기는 해놓은 상태였다. 아침에 일어나면서부터, 아니 정확히 말하면 어제 잠들기 전부터 나는 내일 출근에 대한 걱정을 했다. 출근할 수 있을까. 출근하다가 또 어제와 같은 상황이 생기면 어떡하지? 과호흡이 갑자기 찾아오고 머리가 빙빙 돌고 아득해지면서 그 자리에 쓰러지면 어떻게 하지? 내 걱정은 저녁부터 아침에 일어날 때까지 계속 이어졌다.
사실 공황장애의 가장 큰 적은 예기불안이다. 한번 공황상태로 인한 과호흡과 죽을 것 같은 공포를 경험하면, 예기불안으로 인해 계속 불안과 공황의 악순환이 이어지는 것이다. 이러한 걱정은 나의 숙면까지도 방해했다. 나는 어제보다 더 수척해진 얼굴로 아침을 맞이했다.
아침 식사를 하고, 약을 먹고 (아침에는 항우울제, 항불안제, 신경안정제 세 개의 알약을 먹는다.) 옷을 입고 가방을 챙기고 출근 준비를 하면서도 고민은 계속 이어졌다. 무슨 감정이든 잘 감추지 못하는 나는 언제나 아내의 예민한 촉에 걸려들고 만다.
밥을 먹을 때까지도 아무 말 않던 아내가 넌지시 한마디 한다.
“너무 힘들면 출근 하지 마.”
아내의 그 말은 나에게 출근하지 말자!하는 결정을 내리게 하는 응원의 말도 되었지만, 나는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고 백팩을 어깨에 매고 현관으로 가서 신발을 신었다. 그렇게 할 수 없었다. 몸은 가지 말라고 나를 붙잡았지만, 나는 대한민국 직장인이었다. 꾸역꾸역 앞으로 나아가는 사람이어야 했다. 네 명의 식구를 먹여살리는 사람이어야 했다. 회사에서 나이가 가장 많은 고령자였지만 나에게는 그날그날 주어지는 일이 있었다.
“갈게.”
내 목소리에는 힘이 없다.
아내가 웃으며 말한다.
“가자마자 도로 다시 오는 거 아냐?”
나는 속으로 다짐한다. 출근까지만 하자. 그러면 어떻게든 버틸 수 있다. 정 안 되면 오후 반차 쓰고 오면 되지. 나는 대답 대신 웃으며 집을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