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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부신 날 May 15. 2024

(숲속의 빨간신호등)7. 시작된 불행

환경생태동화

며칠이 지났지만 사람들은 더 이상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드디어 숲에 평화가 찾아왔습니다. 숲 속 친구들은 산이 두 동강 나 버린 것은 그런대로 참을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토끼풀밭에는 아직 풀이 그럭저럭 있었습니다. 다행인 것은 무엇보다 낮잠을 방해한 시끄러운 소리들이 사라졌다는 거지요. 하지만 토끼풀밭 식구들은 앞으로 닥쳐올 불행을 전혀 알지 못했습니다. 앵초와 얄라를 놀라게 한 새로운 소리가 숲속 친구들을 얼마나 공포에 떨게 할지 말입니다.


앵초가 보았던 이상한 동물들은 가끔씩 길에 나타났다 사라지곤 했습니다. 그 동물들은 하나같이 엄청난 속도로 길 위를 달렸습니다. 얼마나 빨리 달리는지 얼굴을 자세히 볼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니 잠시 세워서 말을 붙여본다는 것은 생각도 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렇지만 무엇보다  견디기 힘든 건 그들이 낮이고 밤이고 부아앙, 크아앙 하는 무시무시한 소리로 울부짖으며 달린다는 겁니다. 가끔씩은 간이 철렁 떨어질 정도의 엄청난 소리로 빠앙 하고 소리치기도 했습니다. 모두들 그렇게 엄청나게 큰 목소리로 소리 지르는 동물은 태어나서 처음이라고 했습니다. 적어도 토끼풀밭에 모여 사는 동물들에게는 그랬습니다. 새로 생긴 길로는 다니지 않았지만 엄청난 소리는 토끼풀밭에 있는 모든 동물들을 공포심으로 벌벌 떨게 만들었습니다. 아직 젖을 떼지 않은 어린 새끼들은 하루가 멀다하고 울음을 터트렸습니다. 아무 생각 없이 식사를 하던 얄라도 화들짝 놀라 엉덩방아를 찧곤 했습니다. 리초는 숨바꼭질을 하다가 빠앙 하는 소리에 너무 놀라, 그만 ‘엄마야’ 하고 소리를 질렀습니다. 물론 그 바람에 따오에게 잡히고 말았습니다.


사람들이 사라져서 모든 불행은 끝났다고 생각한 동물들은 새롭게 나타난 동물 때문에 온통 신경이 곤두섰습니다. 그런데 이 동물이 내지르는 소리는 도통 알아들을 수가 없었습니다. 배고프다는 말인지, 아니면 조용히 하라는 말인지, 널 잡아먹겠다는 말인지, 하여튼 무슨 뜻이 있을 터인데, 아무도 그 뜻을 알아들을 수가 없었습니다. 토끼풀밭 동물들은 새로운 길로 달리는 그 동물을 하나 둘 괴물이라고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부르기 시작하자 새로운 길로 다니는 동물들은 정말 괴물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리고 그 이름은 얼마 지나지 않아 곧 사실로 다가왔습니다.


토끼풀밭으로 이사한 식구들이 늘어나면서 모두들 치열한 생존경쟁을 벌여야 했습니다. 서른 마리로 대가족을 꾸린 들쥐 까루네는 어느새 열네 마리로 줄었습니다. 조심스럽게 먹이를 구하기 위해 돌아다녔지만 그보다는 자신을 먹이로 하는 적이 너무 많았습니다. 그렇다고 여우가 배부르게 들쥐를 잡아먹은 것도 아니었습니다. 여우 가족도 배를 곯는 날이 하루씩 늘어나기 시작했습니다. 경쟁자들이 많아진 데다 들쥐나 토끼, 다람쥐들이 워낙 약삭빠르게 행동하는 바람에 쉽게 잡을 수가 없었습니다.      


고민하던 아빠 여우가 가족회의를 열었습니다.

"여기선 더 이상 먹이를 구하는 것이 힘들게 되었어."

아빠 여우가 동굴 안을 휘둘러보았습니다.

"건너편 산에는 아직 먹을 게 많대요. 제가 가 볼 게요."

엄마 여우가 말했습니다.

"그건 안 될 말이오. 당신은 새끼들이나 지키구려. 내가 갖다 오리다."

아빠 여우가 벌떡 일어섰습니다.

"아니에요. 당신은 오늘 하루 종일 먹이 구하느라 지쳐 있어요. 나는 하루 종일 쉬었구요. 지금은 당신보다 내가 더 건강해요."

엄마 여우가 고집을 꺾지 않았습니다.


"험, 험."

아빠 여우는 하는 수 없이 엄마 여우 말을 듣기로 했습니다. 엄마 여우는 생각이 깊었습니다. 사실 아빠 싸리 혼자 먹이를 구해 오는 것으로 네 식구가 먹고 사는 것은 무척 힘에 겨웠습니다. 게다가 새끼 여우들은 아직 밖을 돌아다닐 만큼 완전하게 자라지 않은 상태였습니다. 큰 부엉이나 오소리가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고 있었습니다. 엄마와 아빠 여우가 잠시라도 자리를 비우는 때면 날카로운 발톱을 앞세운 부엉이가 번개처럼 내려왔습니다. 부엉이는 부들 박사로 불리었습니다. 여우 싸리가 스스로 싸리 박사라 부르는 것과는 정반대였습니다. 부들 박사는 힘도 셌지만 무엇보다도 아는 것이 많았습니다. 먹어도 되는 열매가 무엇인지, 먹이는 어느 나무에 많은지, 여우를 공격할 때는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은지 부들 박사는 모르는 것이 없었습니다. 여우는 늘 새끼들을 노리는 부엉이가 못내 부담스러웠습니다. 게다가 오소리도 경계를 늦출 수 없는 대상입니다. 올리 할아버지와 야리 아주머니는 덩치가 커서 새끼 여우들은 당해낼 수가 없습니다. 두 여우는 새끼를 보호하기 위해 늘 신경을 썼습니다. 가끔은 새끼들을 데리고 사냥법을 가르쳐 주기도 했지만 먹이보다 사냥꾼이 더 많은 토끼풀밭에서는 그것도 힘들게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산이 두 동강 나기 전인 건너편의 숲, 동물들이 ‘오소리 숲’이라 이름 붙였던 그 숲에는 아직 먹이가 많았습니다. 숲이 울창하니 풀잎도, 열매도 많을 수밖 없었습니다. 대부분 동물들이 토끼풀밭 쪽으로 이사를 왔지만 건너편 산에는 아직 이사 오지 않은 여러 동물들이 살고 있었습니다. 아빠 여우는 까치 부부가 토끼에게 하는 말을 몰래 들었습니다. 그곳에는 커다란 곰도 한 마리 살고 있고, 숫사슴도 몇 마리 살고 있다고 했습니다. 특히 다람쥐나 들쥐는 셀 수 없을 정도로 많다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작은 물줄기가 흐르는 곳이나 호숫가 주변에는 달팽이나 개구리도 많을 것입니다. 


"오소리숲에 다녀올게요."

엄마 여우가 말했습니다.

"정말 괜찮겠소?"

아빠 여우 싸리가 걱정스런 눈빛으로 물었습니다.

"괴물 같은 녀석이 아무리 빨리도 나만큼은 아닐 거예요."

엄마 여우는 싱긋 웃으며 아무 문제없다는 표정을 지었습니다. 하지만 정체를 알 수 없는 두려움에 몸이 오싹해지는 걸 없앨 수는 없었습니다. 엄마 여우는 헛기침을 하며 두려움을 쫓아내려고 애를 썼습니다. 


"얘들아. 오늘 저녁에는 맛있는 꿩고기를 먹을 수 있을 거야. 아니면 최소한 개구리나 들쥐를 먹을 수 있을 지도 모르고."

엄마 여우는 아이들을 향해 밝은 얼굴로 말했습니다. 아무 것도 모르는 새끼 여우들은 신이 나서 떠들었습니다.

"엄마, 엄마. 난 개구리 고기가 먹고 싶어요."

"벌레라도 상관없어요. 안 자고 기다리고 있을 거예요."

새끼 여우들이 보채자 엄마 여우는 몸을 일으켜 세웠습니다. 싸리에게 다가가 다정하게 코를 비볐습니다. 새끼들에게도 돌아가면서 뽀뽀를 했습니다. 엄마 여우는 재빨리 동굴 밖으로 나왔습니다. 멀리서 들쥐 한 마리가 쪼르르 달려가는 게 보입니다. 뒤쫓아 갈까 잠시 고민했지만 그냥 보내주기로 합니다. 드디어 괴물들이 지나다닌다는 새로운 길 앞 풀섶에 이르렀습니다. 한적한 길은 별 문제가 없을 것처럼 보입니다. 


쌩. 

굉장한 속력으로 괴물 하나가 지나갑니다. 가만히 서 있는 데도 어찌나 바람이 세게 이는지 털이 휘날립니다. 길은 다시 잠잠해졌습니다. 더 이상 머뭇거릴 수가 없습니다. 좌우를 한 번 살핀 엄마 여우는 들쥐를 잡을 때처럼 한껏 몸을 웅크렸다가 길 위로 풀쩍 뛰어 올랐습니다. 눈을 들어 놈이 오나 잠시 길을 살펴보았습니다. 아니나다를까, 언덕 길에서 부아앙 소리를 내며 괴물이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나타날 줄 알고 있었지만 엄마 여우는 자기도 모르게 털이 곤두서는 게 느껴집니다. 여우는 두 눈을 부릅떴습니다. 떨리는 다리를 진정시키고 괴물 쪽으로 몸을 돌렸습니다. ‘자식들에게 자랑스런 엄마의 모습을 보여줘야 해.’ 엄마 여우는 괴물을 향해 크게 으르렁거렸습니다. 그러고는 있는 힘껏 달려오는 괴물을 향해 몸을 날렸습니다. 괴물은 끼끼끽 하는 소름 끼치는 괴성을 질렀습니다. 하지만 잠시뿐이었습니다. 괴물은 여우를 향해 그대로 달려들었습니다. 엄마 여우는 하늘 높이 떠올랐다가 길 위로 풀썩 떨어졌습니다. 빨간 피가 흘러 내렸습니다. 엄마 여우의 숨소리가 점점 가늘어졌습니다. 여우를 들이박은 괴물은 잠시 두 눈을 깜박거리더니 그대로 가던 길을 달려갔습니다. 약하게 떨리던 여우의 몸은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여우의 몸은 조금씩 식어 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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