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조망 사랑

밀란 쿤데라,농담

by 봄부신 날

<철조망 사랑>


그녀는 나를 사랑하므로 그런 건 아무렇지도 않으니 걱정 말라고 했다. 그녀는 철조망 틈새로 내게 장미 한 송이를 건네주었다. (나팔 소리가 울렸다. 집합하라는 소리였다.) 우리는 철조망 틈새로 입맞춤을 나누었다. (밀란 쿤데라, 농담)



최고의 사랑.

<농담>을 다시 읽으면서 가슴 아픈 사랑을 또 마주한다. 소설 속 사랑의 진위여부는 놓아두고 지금 이 장면만 생각해본다.

책을 읽으면서 드는 생각은, 철조망 틈새로 입맞춤을 해보지 않았다면 감히 사랑을 논할 자격이 없겠다,라는 것이다.


시간과 공간이 분리된 곳.

이쪽은 자유롭고 저쪽은 억압되며

이쪽은 시간이 흐르고 저쪽은 시간이 왜곡되며

이쪽은 사랑하고 저쪽은 슬퍼하며

이쪽은 슬퍼하고 저쪽은 절망하는


그래서

철조망 틈새는

블랙홀이 되는 곳

입맞춤이 일어나는 순간


모든 물체의 질량과 소리와 시간을 빨아들여

모든 것은 사라지고

오직 사랑만 남는 곳


이토록 처연한 사랑 앞에 당신과 나의 사랑은 무엇인가. 우리는 철조망은커녕 담벼락을 사이에 두고서 애절한 마음 한 번 가져보지 당신과 나의 사랑은 무엇인가.

아침에 출근했다가 저녁에 만날 기쁨으로 하루종일 열심히 일하는 마음, 어서 퇴근 시간이 오길 기다리는 간절한 마음. 그것이라면 철조망은 아니지만 뭐라도 되겠다. 그냥 그 정도라도 봐주자. 아침에 헤어지고 밤 늦은 시간에 만나는 사랑도 눈물겹다.


아, 우리의 사랑이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