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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부신 날 Jul 10. 2024

(숲속의 빨간신호등) 15. 끊어진 덩굴

환경생태동화

핑!

갑작스런 소리에 동물들은 혼비백산하여 흩어졌습니다. 

후두둑!

도로 건너편 나무에 묶여 있던 덩굴이 풀리며 앵두 신호등이 도로 아래로 떨어졌습니다.  앵두와 딸기가 사방으로 흩어졌습니다. 앵초 꽃잎이며 제라늄 꽃잎들은 하늘로 날아올랐습니다. 괴물들은 인정사정 없이 앵두와 딸기를 밟고 지나갔습니다. 


안 돼!

리초는 자기도 모르게 소리를 질렀습니다. 

“배고픈 것도 참고 힘들게 모은 앵둔데.”

리초가 흐느꼈습니다.


덩굴도 가닥가닥 끊어졌습니다.

"아, 내 덩굴, 내 덩굴……."

까루와 설마가 발을 동동 굴렸습니다.


"남아 있는 덩굴이라도 주워 와야겠어."

구구가 도로 위에 살짝 내려앉았습니다. 부리로 덩굴을 집으려는 순간 괴물이 도로 위에 나타났습니다.


"위험해!"

부들 박사가 소리쳤습니다. 구구는 급하게 날개를 치며 날아올랐습니다.


"안 되겠어. 너무 위험해."

까치 부부가 도로 위를 몇 번 가 보았지만 위험하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아무래도 새로 만들어야겠어. 쿨럭쿨럭."

올리 할아버지가 입을 열었습니다.

"그런데 왜 덩굴이 풀렸을까요?"

리초가 고개를 갸웃거렸습니다.

"가만, 풀리지 않은 이쪽 나뭇가지는 누가 묶었지?"

부들 박사가 물었습니다.

"그야 제가 묶었죠."

너구리 뚜루가 말했습니다.

"그렇다면 저쪽은?"

"제가 묶었어요."

구구가 대답했습니다.

"그랬군. 구구는 부리로 묶어야 했으니까 당연히 약하게 묶였던 거야."

"또 저 때문에 이런 일이 일어났군요. 죄송해요. 하지만 정말, 정말 최선을 다해 묶었어요."

구구는 눈물을 참고 있는지 눈망울이 촉촉해져 있었습니다. 


"다시 만들면 되니까 걱정하지 않아도 돼."

부들 박사가 부리로 구구의 깃털을 매만져 주었습니다.

"그렇다면 저쪽 나무에도 강하게 묶어야 풀리지 않겠군요."

족제비 타랑이 말했습니다.

"그래. 문제는 간단해졌군. 쿨럭쿨럭. 누군가가 길을 건너가서 다시 묶어야만 해"

올리 할아버지의 목소리가 힘없이 안으로 잠겨 들었습니다.


"자, 누가 가겠소?"

부들 박사가 바위 위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부들 박사와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고 동물들은 고개를 푹 수그렸습니다.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었지만 선뜻 앞으로 나설 수가 없었습니다. 모두 자기에게 딸린 가족들을 생각했습니다.

"이런 겁쟁이들. 내 이럴 줄 알았다니까. 내가 나무 위로 올라갈 수만 있다면 내가 벌써 달려갔을 거야."

싸리가 거드럼을 피우며 소리쳤습니다.


"누가 가야 할지는 간단해. 우리 중에 누가 나무 위로 올라갈 수 있지?"

싸리 박사는 앞에 앉아 있는 타랑을 쳐다보며 외쳤습니다. 타랑은 얼른 고개를 떨구었습니다. 나무 위로 올라갈 수 있는 동물은 오소리, 족제비, 너구리, 들쥐, 청설모가 있습니다. 덩굴을 묶어야 한다면 힘이 좋아야 합니다 그렇다면 길을 건너 가 덩굴을 묶을 수 있는 동물은 오소리 야리와 족제비 타랑 그리고 너구리 뚜루로 좁혀지는 셈입니다.     


"제가 건너가겠어요."

고요함을 깨고 한참 만에 나온 동물은 오소리 야리였습니다. 올리 할아버지는 대답을 하지 않았습니다.


"우리 숲속 친구들을 위해 뭔가 보람 찬 일을 해야 하지 않겠어요? 아버지. 저를 보내 주세요."

야리는 결심을 굳힌 듯 올리 할아버지를 보며 말했습니다.


"그, 그렇지만 너는 자식도 잃었는데……."

야리마저 죽는다면 올리 할아버지는 딸과 손자를 모두 잃게 되는 것입니다.

"괜찮아요. 아버지. 저는 마음에 준비를 했어요. 반드시 건널 수 있을 거예요."


야리는 할아버지 가슴에 얼굴을 묻었습니다. 그 때였습니다.

"아니에요. 제가 가겠어요. 저를 보내 주세요."

너구리 뚜루가 불쑥 앞으로 나왔습니다. 

"나무를 잘 탄다고 절 칭찬해 주셨죠. 이 산에서 저만큼 나무를 잘 타는 동물은 없을 겁니다."

모두들 깜짝 놀라 뚜루를 쳐다보았습니다.

"제 자식 때문에 오비와 오티가 죽었죠. 무엇으로 그것을 갚을 수 있겠습니까? 오소리숲에 두 아들이 있어요. 만약 무슨 일이 생긴다면 여기에 있는 제 새끼들만 챙겨주시면 될 겁니다. 그러나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반드시 성공해서 건너갈 겁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저는 덩굴을 강하게 묶을 수 있지요."


"그래요. 할아버지. 뚜루가 건너가는 게 좋을 것 같아요."

부들 박사도 뚜루 편을 들었습니다. 야리는 그럴 필요 없다고 했지만 뚜루도 고집을 꺾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해서 야리 대신 뚜루가 건너가기로 정해졌습니다.


뚜루는 잔뜩 긴장하고 있었습니다.

"걱정하지 말아요. 우리가 기도해 줄 게요."

몸이 아파 누워 있던 리초가 말했습니다. 

"고마워. 네가 앵두를 가져오지 않았으면 우린 신호등을 만들지 못할 뻔 했어."


"지금이에요. 괴물이 보이지 않아요."

끼리 부인이 소리쳤습니다. 씽씽 달리던 괴물들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뚜루는 심호흡을 크게 한 번 하고 도로 위로 올라섰습니다.

"어서 뛰어. 언제 괴물이 달려올지 몰라."

부들 박사가 소리쳤습니다. 뚜루는 건너편을 흘낏 보고는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괴물이 나타났어! 괴물이 나타났다구!"

망을 보고 있던 까치 남편 우리가 소리쳤습니다. 뚜루는 깜짝 놀라 달려오는 괴물을 쳐다보았습니다.


"위험해!"

괴물은 엄청나게 빨랐습니다. 순식간에 뚜루를 덮칠 듯이 달려들었습니다.


"보지 말고 뛰어!"

야리가 소리쳤습니다. 리초는 너무 무서워 눈을 감았습니다.


씽-. 

순식간에 괴물은 뚜루가 있던 곳을 지나갔습니다.

"뚜루야!"

동물들은 일제히 소리를 질렀습니다. 뚜루가 도로 위에 엎드려 있었습니다. 다친 것 같았습니다.


"다시 괴물이 나타났어."

우리와 끼리가 동시에 소리쳤습니다. 


"아, 어떻게 해." 

까루가 발을 동동 굴렀습니다. 뚜루가 힘들게 몸을 일으켰습니다. 한 걸음 옮기다 다시 푹 쓰러졌습니다.


"꼬리에서 피가 나."

구구가 소리쳤습니다. 뚜루가 다시 일어났습니다. 


끙!

뚜루의 힘겹게 일어서는 소리가 이쪽까지 들려왔습니다.


"힘 내!"

"어서 달려!"

동물들은 목이 쉬어라 소리쳤습니다. 괴물이 씽- 하고 지나갔습니다. 약한 먼지가 동물들이 모여 있는 공터로 넘어왔습니다. 뚜루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뚜루가 어디 있지? 괴물한테 끌려갔나?”

까루가 걱정하며 말했습니다.


“저, 여기 있어요.”

뚜루가 건너편 공터에서 고개를 살짝 내밀었습니다.


"와!"

동물들이 함성을 질렀습니다. 까치 부부와 구구가 뚜루에게 날아갔습니다.

"꼬리 부분을 다쳤어. 많이 아픈가 봐."

"저런, 피가 많이 나는 데?"

오소리 야리가 근심 어린 표정을 지었습니다. 

"응, 까치 부부가 나뭇잎으로 상처를 치료해 주고 있어."


"아참. 덩굴을 새로 모아야겠네."

들쥐 까루가 식구들을 데리고 숲 속으로 뛰어갔습니다.     

자주 다니던 곳에서는 덩굴을 구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까루는 가족들을 데리고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깊은 숲 속으로 들어섰습니다. 까루가 멀리 피어 있는 꽃을 발견했습니다. 노란 꽃과 흰꽃이 섞여서 황금빛을 내고 있었습니다. 

"인동초다."

"인동초라구요?"

"응, 저기에 인동초 덩굴이 물푸레나무를 타고 올라가고 있구나."

"아빠, 빨리 가 봐요."

까루 가족들이 쪼르르 인동초 앞으로 달려갔습니다. 들쥐들이 신기한 듯 인동초 꽃을 살펴보았습니다. 

"덩굴 하나에 흰 꽃하고 노란 꽃이 두 개씩 피어 있는 게 보이지? 잘 봐 둬. 나중에 너희들도 덩굴이 필요하면 저 꽃을 찾으면 돼."


까루는 나무 위로 올라갔습니다. 덩굴은 나무 위로 꽤 높이 뻗어 있었습니다. 새끼들은 물푸레 나무 아래에서 열심히 덩굴을 갉았습니다. 인동초 덩굴은 질겨서 잘라내는 데 꽤 시간이 걸렸습니다. 까루는 흐뭇하게 내려보다가 고개를 돌렸습니다. 덩굴이 끝나는 곳까지는 한참을 더 올라가야했습니다. 덩굴은 물푸레나무를 몇 겹으로 꼬면서 올라가 풀어내기가 상당히 힘들었습니다.     


쉭- 쉬익.

기분 나쁜 소리가 들려 왔습니다. 까루는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뱀 한 마리가 물푸레나무 아래로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까루는 깜짝 놀라 소리를 질렀습니다.

"얘들아, 뱀이야. 어서 피해."

깜짝 놀란 생쥐들이 허둥지둥 사방으로 흩어졌습니다. 까루는 새끼들이 숨은 것을 확인하자 나무 아래로 내려와 다리를 절룩거리며 아픈 흉내를 내었습니다.


"여기야. 여기로 와."

뱀이 까루를 보자 방향을 바꾸었습니다. 까루는 새끼들로부터 가능하면 먼 곳으로 뱀을 유인했습니다.


쉬이익. 쉬식.

뱀은 혀를 날름거리며 까루를 향해 천천히 다가왔습니다. 


까루는 새끼들이 숨은 곳에서 상당히 떨어진 곳에 이르자 그제야 숨을 헐떡거리며 걸음을 멈추었습니다. 뱀을 피해 살아날 방법은 없었습니다. 새끼들이 살아날 수만 있다면 이런 목숨쯤은 하나도 아깝지 않아! 까루는 그렇게 생각했지만 떨리는 가슴을 가라앉힐 수가 없었습니다. 뱀은 점점 가까이 다가왔습니다. 혀를 날름거리는 소리가 벌써부터 온 몸을 칭칭 감는 것 같습니다. 뱃속의 창자를 슥슥 긁고 지나가는 것 같기도 합니다. 그 때 동물회의 때 결정한 내용이 번개처럼 머리를 스쳤습니다.

"자, 잠깐. 우리 동물들은 서로 잡아먹지 않기로 약속했어."

"쉬시익. 무슨 소리 하는 거야. 나는 지금 배가 고파 죽겠어. 너를 잡아먹을 거야."

"저, 정말이야. 전체 동물회의에서 그렇게 결정했어."

"동물회의라고? 내 알 바 아냐. 나는 어디로든지 갈 수 있어. 그러니 여기 결정을 따를 의무가 없어."

뱀은 입을 커다랗게 벌리고 까루를 한 입에 삼킬 듯 다가왔습니다.


"까악 까악, 저리 꺼져."

갑자기 하늘에서 까치 부부가 내려와 부리로 뱀을 쪼았습니다. 우리와 끼리였습니다. 뱀은 먹잇감을 눈 앞에 두고 갑자기 훼방꾼이 나타나자 화가 난 듯했습니다.


"이건 또 뭐야."

뱀은 까치를 공격하기 시작했습니다. 까루는 얼른 물푸레나무 뒤로 가서 숨었습니다. 


"얘들아. 여기로 모여."

까루는 새끼들을 불러 모았습니다. 사방에 흩어졌던 까루네 가족이 모두 물푸레나무 아래로 모였다. 까치 부부는 부리를 앞세우고 사납게 뱀을 공격했습니다. 새 두 마리가 한꺼번에 공격하자 뱀은 견디지 못하고 결국 멀리 도망가고 말았습니다.


"까루야. 어디 다친 곳은 없니?"

끼리 부인이 물었습니다.

"예. 도와주셔서 무사해요."

까루는 눈물을 글썽거렸습니다. 

"정말 조금만 늦었어도 큰일 날 뻔 했네."

끼리 부인이 주위를 한 바퀴 돌며 다친 들쥐가 없는지 살펴보았습니다.


"올리 할아버지는 정말 지혜로워. 까루네가 덩굴을 구하러 산 속 깊이 갈 것 같다고, 뱀이 많으니까 우리보고 뒤따라 가보라고 하셨거든."

남편 까치인 우리가 말했습니다. 까루네는 인동초 덩굴을 가득 잘라 내었습니다. 뱀은 더 이상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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