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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부신 날 Jul 16. 2024

(취미가 독서) 17. 밥이냐 책이냐, 그것이 문제로다

[취미가 독서] 17. 밥이냐 책이냐 그것이 문제로다.


"밥이냐 책이냐 그것이 문제로다."


이게 무슨 문제가 되는지 의아해 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하지만 이 문제를 소득과 지출의 경제학의 관점에서 바라보면 조금은 이해가 될 수도 있다. 뭐, 조금 어려운 듯 썼지만, 이번 달에 사서 읽어야 할 책이 너무 많아 식대로 배정한 금액을 위협한다면 당신은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하는 문제로 간단히 설명할 수 있겠다.



에이, 그냥 책 사면 되지, 무슨 고민이에요. 책값이 얼마 한다고.


이렇게 큰 문제 아니라는 듯 넘어가는 사람들이 태반이겠지만, 책을 정말 좋아하는 사람들 가운데에는 이게 생각처럼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니라는 걸 이해할 것이다.



자신이 한 달에 받는 월급이나 가용한 용돈의 범위는 대체 정해져 있다. 책을 많이 사기 위해 연봉을 높이고 이직을 하는 사람은 없겠지만, 어쨌든 현재의 급여는 자신이 짜놓은 일상 생활의 규칙을 충실하게 따르고 있다. 나처럼 퇴직하여 월급이 없는 사람은 더욱 짠돌이가 되어 이 부분에 매우 민감해진다. 모든 지출처가 정해져 있고, 지출하기 위한 나름의 기준과 규칙이 머리속에 차분하게 정돈되어 있다.



그렇지만 책은 이 규칙을 충실히 따라갈 생각이 없다. 어떤 달은 읽고 싶은 신간 도서가 많이 나오지 않아 살 책이 적을 수도 있겠지만, 어떤 달은 "어머, 이건 사야 해" 하는 작가의 신간 도서나, 자신이 좋아하는 장르, 주제의 책이 우수수 쏟아져 나오는 바람에 슬픈 표정으로 한 달을 보낼 수도 있다. 사야 하는 것을 사지 못하는 욕망의 배신은 그 어떤 쓰라림보다 가장 쓰라리다.



물론 자신이 소화할 수 있는 범위에서 이번 달에 사고, 다음 달에 그걸 사면 되지 않겠냐고 말할 수 있겠지만, 이것 역시 쉽지 않다. 다음 달에는 다음 달이 되었을 때 사야 할 책이 정해져 있기 십상이다. 가령 독서모임에 참여하고 있다거나 하면 한 달에 필수적으로 읽어나가야 할 책이 서너 권 이상 된다.  지금 나 같은 경우에도 온라인 독서모임에서 읽어야 할 책이 7권이고, 오프라인 독서모임에서 읽어야 할 책이 2권이다.



이럴 때는 어딘가를 조정해주지 않으면 안 된다. 도서관에 가서 빌려 읽거나 집에 이미 책이 있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은 새로 사서 읽어야 한다. 특히 나는 도서관에서 빌려 읽는 것보다, 내가 마음대로 밑줄을 그을 수 있고, 반납 기한을 지켜야 할 의무가 없다는 사실 때문에 가능하면 사서 읽는 편이다. (형편도 안 되는 주제에 이런 기준을 세운 것 자체가 문제라고 하면 사실 할 말은 없습니다만.)



책값이 야금야금 오르더니 최근에는 성큼성큼 무럭무럭 올라버렸다. 얇은 책도 16,000원 정도하고 조금 두껍다 싶으면 2만원을 훌쩍 넘겨버린다. 동네서점에서 진행하는 '함께 읽기' 7월 도서인 <물질의 세계>는 570여 쪽인데 책값이 29,800원이다. 그날 서점에서 책 두 권 결제했는데 5만원을 훌쩍 넘겼다.



그러니 책과 밥 사이에서 고민을 할 수밖에 없다. 이미 급여의 대부분은 고정지출비로 책정이 되어 있을 것이다. 그러니 손댈 수 있는 가장 만만한 녀석이 식사값이다. 만약 점심 이삼 일을 편의점에서 도시락을 사서 먹으면, 아낀 돈으로 책 한 권은 사거나 책값에 조금이라도 보탤 수 있다.



책과 밥의 고민이 진지해질 때는, 내가 구입하려는 이 책이 얼마나 오래 시장에서 버텨줄 것인가에 대한 판단도 한몫한다. 카트에만 담아 둔 채 다음에, 다음에 하다가 결국 품절되는 바람에 책을 사지 못한 경험을 한두 번 한 게 아니다. 아주 유명한 스테디셀러가 아니라면 대부분 책은 일이 년을 넘기지 못하고 품절된다. 최근에는 초판본  발행부수가 점점 줄어들고 있어 아차 하면 품절될 수가 있다. 물론 중고시장에 나올 수도 있지만 상태가 좋으리란 보장이 없다.



나는 가난한 청년시절, 교통비를 줄여 책을 산 적이 많았다. 버스를 타면 금방 도착하는 거리를 두 시간, 세 시간 걸어갔다. 일주일 동안 그렇게 걷고 책 한 권을 샀다. 지금은 그렇게 하라고 해도 못하겠지만, 정말 그런 적이 있었다. 그때는 서점도 많지 않던 때라 길을 가다 서점이 보이면 무조건 들어갔다. 그리고 가진 돈을 탈탈 털어 읽고 싶은 책을 사버린다. 그러면 빈털털이가 된 나는 배를 쫄쫄 굶으며 두어 시간을 걸어 집으로 갔다. 그래도 견딜 수 있었고 기뻤다. 손에는 책 한 권이 자랑스럽게 들려져 있었으니까.



나이가 꽤 든 이제는 거실을 꽉 채운 책장에 책이 가득하다. 그래도 신간 소식은 늘 나를 설레게 한다. 어떤 책이 나왔을까? 그 설렘은 밥이든 버스든 등가로 대체할 수 있는 충분히 매력적인 요소다. 책에서, 이어령 선생님이 죽음을 앞에 두고도 주문한 책이 어떤 내용일지 설레며 기다렸다는 글를 읽고, 나는 슬며시 웃음을 지었다. 나도 그런 사람이고 싶다. 죽음 앞에서도 책을 기다리는 어린아이 같은 마음.





책이냐 밥이냐, 라는 질문을 받는다면, 언제나  대답은 하나다.


나는 오직 책을 밥으로 삼아 영적인 허기를 채울 것이다.




책이냐, 밥이냐, 그걸 질문이라고 하냐?

당연히 책이지.


그런데 사실 밥은 끼니를 빼먹지 않고 먹으면서도,

책은 여전히 잘 못 사고 있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는데 주변에서는 다르게 판단할 지도 모르겠다.)


책값. 올라도 너무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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