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가 취미] 29. 인생책이 뭐냐고 묻는다면?
이제 사회생활을 막 시작한 막내딸과 우연히 저녁 식사를 같이 하게 되었다. 요즘 들어 책맛을 알게 되어 아빠인 나와 종종 책에 대한 얘기를 나누는 책 친구로 발전하고 있다. 얼마나 흐뭇한지 모른다. 이제는 딸이 스스로 자기가 읽을 책을 사기도 한다. 그러다보니 우연치 않게 서로 겹치는 책이 나오기도 한다.
이번에 겹친 책은 이병률의 <누군가를 이토록 사랑한 적>이라는 시집이었다. 얼마 전에 아빠가 이런 시집도 읽어? 하면서 내 책장 앞에서 뒤적거리며 갔었는데, 그걸 잊어버리고 똑같은 시집을 사들고 왔다. 아마 그때는 '시집'이라는 것에 중점을 두고 뇌가 작동했었다면, 이번에는 시집의 제목에 뇌가 반응을 한 것이리라. 어찌 되었건 책을 가지고 다 큰 딸과 얘기한다는 것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즐거움이다.
이런저런 책 얘기를 하다가 딸이 불쑥 묻는다.
"아빠도 인생책이라는 거 있어?"
나는 마치 그 질문을 기다렸다는 듯이 대답한다.
"그럼."
딸이 또 묻는다.
"무슨 책인데?"
"어, 무슨 책이냐면...."
내가 잠깐 뜸을 들이자, 아빠 이제 생각하나보다, 하면서 깔깔 웃는다.
"아냐아냐, 너한테 어떻게 설명해주면 좋을지 생각 좀 하느라 그랬어."
성경 같은 종교 경전을 제외하고, 인생 책을 물어본다면 나는 주저없이 대답한다.
<닥터 노먼 베쑨>과 <노인과 바다> 이 두 권이다.
최근에 <스토너>를 포함시킬지 조금 저울질 하는 중이다.
이 세 권 중에서 딱 한 권만 고르라고 한다면, 단연코 <닥터 노먼 베쑨>이다. 이 세상에 이보다 더 훌륭하고 좋은 책들이 많이 있겠지만, 내가 읽은 책 가운데에서 내가 내 삶의 인생을 이끄는 나침반 같은 책으로서 아무 망설임 없이 나는 이 책을 내 인생책으로 꼽는다.
캐나다인 의사로서 캐나다에서 박사 학위를 가지고 편안한 삶을 살 수 있었지만, 그는 자신의 안락함 대신 인류의 사랑을 선택했다. 인간과 사회를 치료하고자 했던 진정한 의사,라는 네이버의 인물소개란 글이 그를 표현할 수 있는 가장 정확한 글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노먼 베쑨이라는 의사의 삶을 내 인생 나침반으로 삼는 것은, 총알이 빗발치는 전장 바로 앞에다 간이 의료실을 차리고, 후방으로 이송되어 가다 죽는 병사들을 살리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돌보지 않고 수술을 감행한 그의 인류애 때문만은 아니다.
그가 그렇게 자신을 아낌없이 내어놓고 타인을 위한 삶을 살 수 있도록 만든 동인, 그것이 나를 움직였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이 직접 환자가 되어 보고서야 의사와 환자의 입장을 완전히 이해한다. 그리고 그는 결심한다.
"다시는 결코 메스를 들면서 그 어떠한 생명체에 대해서도 단순한 기계적인 유기체로 취급하지 않으리라.
사람이란 육체가 전부가 아니다. 사람이란 꿈을 가진 것이다. 나의 칼은 육체와 동시에 그 꿈을 구하리라."
그의 이 결심은 바로 나를 잡아주는 바로미터다. 내 인생을 빛으로 이끄는 진리와도 같다. 어느 누구도, 어느 인간도, 하찮은 사람은 없다. 모든 사람의 가슴에는 인간이라는 존귀함이 들어있다. 너를 대하는 나의 태도는 곧 나를 스스로 대하는 것과 같다. 내가 소중하고 존귀한 만큼 당신도 소중하고 존귀하기 때문이다.
좋은 책은 사람의 인생을 바꾼다. 인생을 바꿀 뿐만 아니라, 다르게 행동하게 한다. 닥터 노먼 베쑨이 1930년대에 자신의 젊음과 인생을 타인의 삶을 위해 바치게 한 그 동력이 책을 통해 꾸준히 다른 사람들에게 전달되고 있다.
당신의 인생책은 무엇인가? 나를 나답게 해주는 그 세밀한 음성의 책은 무엇인가. 다른 사람에게도 망설임 없이 권할 수 있는 그런 책이 있는가? 내가 지금의 내가 되도록, 나를 만들어준 책 한 권, 서슴없이 당신에게 권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