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미가 독서) 30.에필로그. 비오는 날 책읽기
옛 선현들은 책 읽기에 가장 좋은 때로 겨울, 밤, 비오는 날을 꼽아 독서삼여(讀書三餘)라 했다. 독서삼여는 책을 읽는 데 필요한 세 가지 여가 시간을 말하는데, 옛날에는 전기가 없었기 때문에 밤이 되거나, 겨울이 되거나, 비가 내리면 일을 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 시간이 책을 읽기에 가장 좋은 시간이라고 했다. 즉, 틈이 나면 책 읽기로 휴식을 취했다는 뜻이다.
오늘 서른 번째 글로 지금까지 매주 화요일에 연재해오던 <제 취미는 진짜 독서인데요> 글을 마무리한다. 마침 오늘 비까지 내리니 이보다 책 읽기 더 좋은 때가 어디 있겠는가. 창가에 앉아 추적추적 내리는 비를 바라보며 차 한 잔 마시면서 책을 읽으면 이보다 더한 행복은 없을 것만 같다.
아주 오랜 예전, 호랑이 담배 피던 시절에는 이력서나 신상명세서에 취미와 특기를 적는 곳이 있었고, 이곳에 뭘 적어야 할지 모르던 사람들은 대부분 ‘독서’를 적었다. 그래야 좀 있어 보이는 취미활동을 한다고 생각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하여튼 90퍼센트는 독서를 적었다. 그렇지만, 대부분은 취미활동으로 책을 읽지는 않았다. 취미활동을 한다는 것은 그냥 일 년에 책 한두 권 읽는 수준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보다는 꽤 상당한 노력을 해야 한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다. 그래서 취미란에 <독서>라고 적으려면 이 정도는 해야 합니다. 하는 말을 하기 위해서 연재를 하기 시작했다. 어떤 취미는 장비빨이 있고, 장비를 구입하거나 복장을 갖추는 데 일정한 수준 또는 그 이상의 돈이 필요하다. 활동적이고 많은 장비를 요하는 취미 활동에 비하면 독서는 매우 저렴하게 취미활동을 할 수 있다. 한 권의 책값과 독서모임 때 마실 차 한 잔 값만 있으면 된다.
우리나라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으로 갑자기 독서 열풍이 불고 있다. 독서인으로서 무척 반가운 현상이긴 하지만 한강 작가의 책만 팔리고 읽힌다면 이는 결코 바람직한 현상은 아니다. 한강 작가는 자신의 소설 <바람이 분다, 가라>에서 좋아하는 책에 대하여 이렇게 표현했다.
어디서부터 펼쳐 읽어도 될 만큼 이 책을 잘 안다.
다른 책들과 함께 태연히 책장에 꽂혀 있을 때,
이 책의 좁은 등은 비밀을 나눠 가진 사람의 옆얼굴처럼 묵묵하다.
(한강, 바람이 분다 가라, 17쪽)
어디를 펼쳐 읽어도 모르는 것이 없을 만큼 잘 아는 책, 그 책과는 비밀을 나누어 가진 사람과 같다. 책을 읽고 그 내용을 온전히 받아들일 때 독서인은 책과 책 내용을 서로 공유하는 비밀을 가지는 사이가 되는 것이다. 그 비밀은 서로가 서로를 믿고 앞으로 나아가는 묵묵함이 된다. 말을 하지 않아도 서로를 믿고 앞으로 나아간다.
독서삼난(讀書三難)이라는 말이 있다. 책을 읽게 되면 필연적으로 마주하게 되는 장애물 같은 것이다. 이 삼난을 다 넘어가야 진정한 독서인이 될 수 있다. 그러러면 책의 묵묵함, 그 책을 믿고 앞으로 묵묵히 걸어가는 신뢰가 필요하다.
첫째로 어려운 것은, 책을 모으기는 쉬워도 읽기는 어렵다는 장애물이다. 책은 돈만 있으면 살 수 있다. 주변에 도서관이 많아서 굳이 돈을 들여 사지 않아도 책을 볼 수 있는 여건은 얼마든지 된다. 그러나 책을 꺼내 들고 펼쳐서 눈으로 읽기 시작하는 일은 아침잠 많은 사람이 새벽에 벌떡 일어나 하루 일과를 시작하는 것만큼이나 어렵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이렇게 뭔가 이벤트가 생기고 열풍이 불 때 줄 서서 한강 작가 책을 사서 책장에 꽂아 두지만, 정작 어떻게 읽는지 모른다. 주변에서 난해하다, 어렵다, 하는 소리를 듣고는 겁을 잔뜩 집어 먹는다. 용기 내어 한두 장을 읽다 결국 눈이 침침하네, 역시 수상작가 책은 어렵네 하면서 살포시 밀어둔다. 결국 그 책은 영원히 잠에서 깨어나지 못한다.
그다음 어려운 것은, 책을 보기는 쉬워도 그것을 제대로 잘 읽기는 어렵다는 장애물이다. 그렇다. 책을 읽는 것이 아니라 보는 사람이 많다. 책은 문자로 쓰여진 글과 문장, 문단을 읽고 이해하고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것이다. 그런데 눈으로는 책을 보지만 그 내용을 제대로 이해하는 사람이 드물다. 다른 사람의 독서후기를 읽고는 책을 읽은 척 하기도 하고, 후루룩 물에 밥 말아 먹듯이 페이지만 넘겨보고는 다 읽었다고 스스로를 속이기도 한다. 책은 보는 것이 아니라 읽는 것이다. 읽는다는 것은 책과 하나가 되는 것이다. 책 속 인물과 같은 마음으로 그 사회를 살아내는 것이다. 내 속에 그걸 받아들일 감정의 여유, 지성의 여유, 지식의 여유가 없으면 감당하기 힘들다. 책 읽기는 보는 행위가 아니라 받아들이는 행위다.
마지막으로 가장 어려운 것은, 책을 읽기는 쉬워도 그것을 실천하기가 어렵다는 장애물이다. 독서의 가장 마지막 관문이 바로 실천, 행동이다. 이것은 변화를 기본적으로 요구한다. 내면의 변화가 우선 진행되어야 하고, 내면의 변화가 뇌를 통해 마음의 다짐을 거쳐 행동으로 나타난다. 어떤 사람은 책을 읽고 나면 금세 그 내용을 잊어버린다. 에빙하우스의 망각 곡선을 충실히 따르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독서인들 가운데 좋은 책은 매년 읽는 사람이 많다. 읽어도 금방 잊어버리는 것이 사람이기에 물리적으로 일정한 주기를 가지고 계속 읽음으로써 실천할 발판을 마련하는 것이다.
독서라는 행위가 그저 오락행위, 즐거움, 유희의 하나로만 여겨질 수도 있지만, 많은 책은 우리를 변화시킨다. 그리고 많은 독서인들은 그 변화의 파도에 몸을 맡긴다. 세상이 빠르게 변하고 있다. 인공지능이 거센 파도로 밀려온다. 독서를 취미로 하는 사람들은 그 모든 변화에 가장 빨리 반응한다. 어떤 정보원보다도 빠르게 새로운 세상을 맛본다. 많은 책은 아주 먼 미래의 이야기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그려낸다. 로봇이며 아바타, 메타버스 같은 개념은 작가들이 아주 오래 전, 상상력을 동원해 만들어 놓은 소설 속 이야기에 숨어 있었다. 책을 읽은 선구자들은 오랜 기간 묵묵하게 믿음을 가지고 책 속에 녹여진 상상을 구체적인 현실로 만들어냈다. 이제 우리는 로봇이며 메타버스 같은 말들이 이상하지 않다.
책을 읽고 반드시 실천을 해야 한다면 많은 사람이 책을 읽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한강 작가의 글처럼, 책을 신뢰하고 묵묵하게 비밀을 공유한다면 독자는 변하지 않을 수 없다. 독서는 사람을 변하게 한다. 변화시킨다. 성장하게 한다. 성장시킨다. 성숙하게 한다. 더 어른이 되게 한다. 내면 아이, 쓴뿌리를 벗어버리고, 진짜 자기가 되게 한다.
결국 책을 읽는 우리는, 책 읽기를 통해 진정한 자아를 찾아가는 여행을 하는 것이다. 진짜 자기를 찾아가는 꿈을 꾸는 것이다. 프랑스 철학자 바슐라르의 말처럼, 책은 꿈꾸는 것을 가르쳐주는 진짜 선생이다. 그래서 나는 나처럼 당신도 꿈을 꾸기 원하고, 그 꿈이 실천되고 완성되기 원한다. 책과 비밀을 나누는 비밀독서가가 되길 원한다. 이 비 그치기 전에 주저없이 문을 열고 책 세상으로 들어오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