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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딘 Jun 06. 2024

아버지의 맛

투박하고 자극적인 그리고 그리움과 아쉬움

부모님과 독립한 지 오래되었지만 종종 아버지가 만들던 음식이 생각날 때가 있다. 어머니의 음식은 뭐가 먹고 싶어질 즈음이면  으레 "00해 놨다. 시간 날 때 와서 가져가"라는 알람이 오곤 하는데 아버지의 음식은 그런 경우가 일절 없다. 운 좋게 부모님 댁에 들렀을 때 당신이 해 드시고 있다면 같이 맛볼 수 있을 뿐. 아마존 깊은 수풀 속에 살고 있다는 전설의 생명체처럼 맛의 기억에는 선명한데 마주치는 건 점점 어려워진다. 어떻게 만드는지 방법을 물으면 "그냥 뭐 넣고 뭐 넣고 끓이면 돼" 정도의 답만 듣게 된다. 자식을 위해 자세한 레시피를 적어주는 것도 아니고 어머니처럼 직접 만들어서 덜어주시는 것도 아니고.


아버지는 퇴근하고 돌아오시면 집안을 정리하는 어머니 대신 종종 요리를 하셨다. 아버지는 왜 요리를 하셨을까. 살뜰하게 어머니를 챙기는 스타일이어서? 에이 설마 그럴 리가. 차라리 어머니와 입맛이 맞지 않아서라는 게 더 그럴듯하다. 밀가루 요리라면 질식팔색하는 어머니와는 다르게 아버지는 칼국수, 라면, 국수... 대부분의 면요리를 사랑하셨다. 김장을 할 때도 아버지는 간이 약하다고 하고 어머니는 괜찮다고 하는 대화가 반복되곤 했다. 그러니 상대방에게 바라는 게 있지만 얻을 수 없다면 차라리 내가 만들어 먹겠다는 게 아버지의 생각이었을 것이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그런 아버지의 요리에 끌렸다. 아버지가 만든 음식은 투박하고 자극적이다. 특히 아버지의 강된장과 조기찌개는 늘 그립다.


강된장의 강은 맛이 강하다는 뜻일까 강한 사람만이 먹을 수 있는 음식에 붙이는 수식어일까. 아버지는 된장에 큰 멸치를 넣고 청양고추 썰어 넣고 양파나 대파가 있다면 그것도 넣고 물도 좀 넣고 검은색이 될 정도로까지 끓였다. 진한 갈색을 너머 거의 흑갈색이 되어버린 된장은 특유의 쿰쿰함과 찌걱한 질감을 갖고 있었다.


그런 강된장을 한 숟가락 떠서 밥에 슥슥 비벼먹으면 구수한 맛이 올라왔다. 너무 짜고 매운데도 그 안에는 자꾸 당기는 맛이 있었다. 특히 초록색을 가진 채소에 강된장과 밥을 싸 먹으면 일품이었다. 밭에서 따온 청상추나 삶은 호박잎을 밥, 강된장을 함께 먹으면 채소가 가진 싱그러움 입안에 가득 퍼졌다. 짜고 매운 기운을 야채가 훑으면서 지워주는 건지 야채의 식감과 살아있는 맛을 강된장이 더 살려주는 건지, 서로 다른 맛이 입 안에서 뒤엉키는 재미가 있는 음식이었다.


그래서 독립해서 살면서도 입맛이 없거나 마트에서 채소를 보게 되면 어렸을 때 먹던 강된장이 생각난다. 하지만 한 번도 아버지에게 강된장을 만들어달라고 이야기해 본 적이 없다. 너무 먹어보고 싶지만 당신에게 요청하기보다는 내가 만들어서 먹어야겠다는 생각을 먼저 했다. 아버지도 며느리가 먹고 싶은 음식이나 재료는 귀신같이 눈치채고 챙겨주시지만 나의 기호에 대해서는 묵묵부답이고 별 관심이 없어 보였다. 부자 사이에 그런 걸까.


그런데 된장도 있고 쌈장도 있고 다 있는데 왜 강된장이었을까. 혹시 아버지는 어느 날 좀 더 자극적인 맛이 생각날 때 강된장을 만드시지 않았을까. 비슷한 찬과 밥이 지루하게 느껴지던 어느 날 주변에 보이는 보통의 재료를 숭덩숭덩 썰어 넣고 식탁에 찬과 밥을 떠 올릴 때까지 끓이다가 내어놓는 정도로 관심을 덜 주어도 준비할 수 있는 음식. 그러다 보니 맛이 생각나면 아무렇지 않게 만들 수 있지만 반대로 "이게 강된장이다"라고 정의할 수 없을 정도로 상황에 따라 맛이 달라질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별다른 레시피도 알려줄 게 없고 강된장을 만들어서 챙겨주지도 않았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지금 만들어서 먹는다고 해도 그때 내가 먹던 맛이 아닐 가능성이 높을 테니까.


강된장의 비법을 포기하고 조기찌개는 어떻게 끓이는지 아버지에게 물은 적이 있다. "어? 무 넣고 조기 넣고 고춧가루 넣고 끓이면 돼." 생선을 어떻게 해라, 간장을 얼마 소금을 얼마 하라는 말도 없었다. 아무리 자세히 듣고 있어도 채워야 할 빈 공간이 너무 많은 정보였다. 결국 여기저기 찾아보고 기억을 더듬어 재료를 넣고 조기찌개를 만들어보았다. 생선살에서 스며 나오는 담백함과 국물의 감칠맛, 거꾸로 생선살로 스며드는 칼칼함. 예전에 먹던 것과 비슷했다. 하지만 뭔가 비어있었다. 맛은 있지만 너무 깔끔한 맛이었다. 이게 이 맛이 맞았던가? 언젠가 아버지가 지나가며 이야기하신 적이 있다.


"조기찌개는 명절에 남은 음식이랑 같이 넣어서 끓여야 맛있지. 고사리나 동그랑땡이나..."


아버지의 이야기를 들으니 내가 맛보고 싶어 하는 음식의 많은 부분이 기억에서 오는 것이었다는 걸 다시 생각하게 된다. 한 여름 선풍기 앞에 모여 앉아서 쌈에 싸 먹는 강된장, 명절 연휴의 마지막 날이나 잡탕처럼 끓여 먹던 찌개. 아버지가 만든 음식에서 강한 맛은 여전히 기억에 남는다. 그리고 희미하게 사라져 버린 다른 여러 맛들은 이제 상상으로 채운다. 마치 아무 걱정 없이 뛰어놀던 때를 떠올리며 "그때가 좋았지"라고 회상하는 것처럼 다시 재현할 수 없기 때문에 더 절실하게.


맛이 투박하고 자극적일수록 그립고 아쉬워진다. 아버지의 맛은 앞으로도 계속 그럴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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